〈하이재킹〉에는 ‘할리우드 비슷한 영화’ 그 이상이 있다 [듀나의 영화로운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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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충무로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영화 상당수는 '옛날에 내가 텔레비전이나 극장에서 보았던 할리우드 영화와 비슷한 무언가'다.
공항 직원들의 일상을 다루다가 비상착륙으로 끝나는 사실적인 영화로 시작했지만 속편들이 나오면서 바닷속에 침몰한 비행기를 끄집어내거나 콩코드기가 전투기와 접전을 벌이는 등 점점 어처구니없어지는 시리즈였는데 그래도 많이들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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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김성한
출연:하정우, 여진구, 성동일

최근 충무로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영화 상당수는 ‘옛날에 내가 텔레비전이나 극장에서 보았던 할리우드 영화와 비슷한 무언가’다. 여기서 ‘나’는 대충 40~50대 한국 남성으로 잡으면 되겠다. 그러면 그 영화들이 뭐였는지 그려진다.
김성한 감독의 〈하이재킹〉을 보면 당연히 떠오르는 할리우드 영화,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영화 시리즈가 있다. 아서 헤일리의 베스트셀러를 기반으로 한 〈에어포트〉 시리즈다. 공항 직원들의 일상을 다루다가 비상착륙으로 끝나는 사실적인 영화로 시작했지만 속편들이 나오면서 바닷속에 침몰한 비행기를 끄집어내거나 콩코드기가 전투기와 접전을 벌이는 등 점점 어처구니없어지는 시리즈였는데 그래도 많이들 좋아했다. 이 영화를 수입하지 않은 소련에서는 〈에어 크루〉라는 ‘짝퉁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 영화도 그 동네에서는 상당한 인기를 끌었으며 얼마 전에는 리메이크도 나왔다.
이미 몇 년 전 한재림 감독이 〈비상선언〉이라는 〈에어포트〉류 영화를 만들었는데 반응이 영 별로였다. 사실 이런 ‘옛날 할리우드 영화스러운 충무로 영화’가 일정 수준 이상의 성취를 이루긴 어렵다. 일단 목표 지점이 낮기 때문이다. 옛날에 봤던 영화에 대한 향수만으로는 재미있거나 좋은 영화를 만들기가 어렵기도 하다. 그 이상이 필요하다.
〈하이재킹〉에서 가져온 ‘그 이상’은 역사다. 이 영화는 두 개의 실화에 기반을 둔다. 하나는 1969년에 일어난 대한항공 YS-11기 납북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1971년에 일어난 대한항공 F27기 납북 미수 사건이다. 영화의 대부분을 이루는 사건은 후자다. 영화는 사제폭탄으로 조종사를 협박해 북한으로 가려는 승객과 이에 맞서는 조종사와 승무원의 대립을 그린다. 영화는 두 이야기 모두를 허구화시켜 연결한다. 예를 들어 F27기의 부조종사가 북한으로 넘어가려는 YS-11기를 막으려다 포기한 전투기 조종사였다는 식이다. 아마 액션 상당 부분은 영화적 재미를 위해 지어냈거나 과장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들은 많다(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46회에서도 이 사건을 다루고 있다).
확실히 〈하이재킹〉에는 〈비상선언〉에 없었던 여분의 재미가 있다. 우리가 잘 몰랐거나 알았더라도 잊은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풍부한 자료와 적절한 허풍을 통해 전달하는 이야기꾼의 미덕이 살아 있다. 아직 좌석 예약제가 없어서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비행기까지 전력질주를 할 수밖에 없었던 1970년대 승객들을 묘사한 장면이 주는 소소한 재미와, 1970년대 냉전시대를 살았던 당시 사람들의 삶의 조건과 사고방식이 어땠는지를 보여주며 이끌어내는 역사적 사유가 있다. 이는 단순한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당시를 살고 당시의 사고방식을 체화한 사람들이 여전히 우리의 일부이며 우리의 역사에 현재형으로 개입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듀나 (영화평론가·SF 소설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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