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 꿈 위해 자퇴합니다"…서울대 이공계 1학년 자퇴생 매년 증가

이채린 기자 2024. 7. 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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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정문.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서울대 1학년 자퇴생 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의대 광풍' 때문이라는 분석이 대부분이지만 과학자를 꿈꾸는 일부 1학년들도 서울대를 자퇴하고 미국, 영국 등 해외대에 재입학하고 있는 것이다. 이공계 기피, 의대 증원 등이 주요 원인으로 거론되지만 정작 해외로 떠나는 이들은 서울대의 지원에 대한 아쉬움을 언급했다. 

6월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 서울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체 서울대 1학년 자퇴생 수가 2019년 97명에서 지난해 290명으로 훌쩍 늘었다. 전체 자퇴생 중 1학년 비율은 50.3%에서 79.2%로 급증했다. 1학년 자퇴생 중 공과대, 농업생명과학대, 자연과학대 인원도 2019년 63명, 2021년 141명, 지난해 162명으로 늘었다. 

서울대 재학생 중 자퇴를 결정하고 미국 유학길에 오를 예정이거나 이미 자퇴하고 해외 대학을 재학중인 학생들을 최근 만나 사정을 들어봤다. 저마다 이유는 다르지만 국내 최고 대학으로 여겨지는 서울대가 전세계 대학과의 경쟁에서 밀려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계적인 과학자로 성장하는 데 서울대의 지원이 부족하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서울대 자연과학대에 재학 중인 1학년 A씨는 서울대에 입학해 수업을 듣던 3월 미국의 한 명문대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았다. 높은 학비와 익숙한 한국을 떠나는 것이 부담돼 한 달간 서울대에 재학할지, 해외로 떠날지 고민했다. 결국 A군은 과학자로 성장하는 데 서울대의 학사 지원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판단에 서울대 자퇴를 결정했다. 

과학자를 꿈꾸는 서울대 이공계 1학년들은 서울대를 자퇴하는 이유로 학부생이 연구할 기회가 적다는 점을 꼽았다. 이번 학기를 끝으로 서울대를 자퇴하는 B씨는 "학부 때 연구실 연구 경험이 많으면 석사 과정을 이수하지 않아도 해외에서 박사 학위를 따는 데 무리가 없어 미국 명문대의 경우 1학년 1학기부터 연구 기회를 가질 것을 적극 권장한다"고 말했다.

B씨는 또 "서울대에서 같은 과 1학년 50여 명 중 연구실에서 연구하는 학생은 1명이었을 정도로 연구 기회를 따기 쉽지 않다"며 "간혹 연구실에서 일하고 싶다는 학부생을 번거로워 하는 교수님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미국 이공계 명문대 사정은 좀 다르다. 캘리포니아공과대(칼텍)는 홈페이지에 '연구는 우리의 정체성이다. 칼텍에 입학하면 첫날부터 과학자로 대우받는다'면서 '학부생의 90% 이상이 연구기관 연구에 참여한다'고 홍보하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도 별도의 '학부생 연구 프로그램(UROP)' 홈페이지를 운영하며 연구기관과 학부생을 연결하는 프로그램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MIT에서 자연과학계열 전공을 한 C씨는 "학부생 때 쓴 논문이 좋은 평가를 받아 미국 대학교 석박사통합과정에 진학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서울대의 복수전공 이수요건이 까다롭다는 점도 지적됐다. 미국 대학교 진학을 위해 자퇴하는 또 다른 1학년 D씨는 "진학을 앞둔 대학교의 경우 복수전공 이수학점이 상대적으로 낮고 대학과목 선이수제를 통해 고등학교 수업 학점을 반영하거나 진학 후 학생이 일정한 수준의 시험을 치르게 함으로써 과목을 빠르게 이수하도록 돕는다"면서 "서울대는 이같은 제도가 없고 1개의 복수전공을 하려면 이수학점이 많아 졸업이 1년 이상 걸린다"고 말했다.   

자퇴를 앞둔 1학년 E씨는 "서울대에서 학부생 수준에서 최신 학계 트렌드를 파악하거나 전공을 심화해서 공부할 기회가 적을 것이라 판단했다"면서 "초끈이론, 초대칭장론 등으로 해외 명문대에서 세부적으로 열리는 과목이 서울대에서는 고급장이론이라는 하나의 과목으로 합쳐져 있다"고 했다. 학문적으로 지도를 받을 교수와 만날 기회가 적은 점도 한몫 했다. 서울대는 2021년 기준 교수 대 학생 비율이 13.32대 1, 칼텍은 약 3대 1이다. 

한 대학 교수는 "과학자를 직업으로 삼고 싶은 학생들은 학부 시절 역량을 빨리 쌓아 학계에 진출하고 싶을 것"이라며 "이들의 욕구는 당연한 것이며 한국에서도 충분히 세계적인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는 신뢰를 줄 수 있게 서울대가 발전해 나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채린 기자 rini11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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