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진짜 인문학이여 부활하라
전국에서 ‘인문학 콘서트’, ‘길 위의 인문학’ 강좌가 유행한 것도 몇 년 새 일이다. 인문은 이 시대를 상징하는 상표가 됐다. 대학 사회를 비롯한 학계에서는 인문학이 위기라는데 출판과 강연 시장에서는 인문학이 활황이다.
이제 한국 사회에서 인문학은 ‘적극적 가치’, ‘사는 일에 대한 통찰과 반성’을 뭉뚱그리는 삶의 기술로 통한다. 그 배경은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아마도 반세기 넘게 이어진 경제성장 제일주의에 대한 반발이 꽤 작용했을 것이다. 한 가지 더 보탠다면 한국전쟁 이후 한국 사회 전반을 지배해온 군사문화 우위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런 인문학 열기는 역설적으로 죽어가는 정신에 대한 마지막 배려 같기도 하다. ‘인문적 환상’은 암 환자에게 투여하는 진통제에 비유할 수 있다.
21세기 한국 사회의 성격을 거울처럼 비춰주는 일종의 문화 브랜드가 되어버린 이 시대의 인문학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러 가지다. ‘나는 왜 여기에 이 꼴로 살고 있는가?’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게 인문학이라고 정의 내리는 학자도 있다. ‘보름달은 왜 뜨는가?’처럼 돈 되지 않는 것들만 골라 생각해 보는 일이 인문 정신이란 시적 표현도 나온다. 인간을 억압하는 유용함에서 벗어나 있는, 바로 그 쓸모없음이 인문학이 쓸모 있는 이유라고 역설하는 학설도 빛난다.
이러구러 인문학의 정석은 아쉽게도 현실에서 맥을 추지 못한다. 오히려 이와 정반대 길로 가는 사이비 인문학이 위세를 떨친다. 강연장이나 서점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주로 소모되는 인문학은 뭐에든 접붙였을 때 이윤을 더 진하게 내는 핵심 가치로 이해되고 있다.
국정 기조에도 이런 가짜 인문학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은 아닌가, 고개를 흔들게 되는 요즈음이다. ‘문화 매력 국가’를 지향한다는 윤석열 정부의 문화 정책은 실체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 몇 년 한국 학술출판시장에서 오용된 인문학이 그러했듯, 전략 전술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문화는 민주 시민사회를 병들게 한다.
도정일 문학평론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문화는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이요, ‘정신의 붕어빵을 양산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방부제’다. 미국 시인 게리 스나이더는 “꽃을 배우고, 짐을 가볍게 하라”고 했는데 이 짧은 시 또한 문화의 멋진 정의가 아닐까 싶다. 팔리지 않는 문화는 아무 가치가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현실을 되받아칠 수 있도록 든든하게 받쳐주는 것이야말로 ‘문화 매력 국가’가 담고 있어야 할 덕목이 아닐까.
전 지구를 인간 소멸의 공포에 떨게 했던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인류는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징후와 암시를 받았다.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불안에 떨었던 때가 언제였는지 벌써 잊었다. 아무리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지만 쓰디쓴 고통의 교훈을 그렇게 쉽게 떨쳐버릴 수는 없다.
수천 년 우리 안에 전제돼온 통념이 무너지면서 인류 앞에는 매 순간 이에 대처해야 하는 새로운 상황이 벌어진다. 지구 생태계를 위협하는 기후 위기, 부(富)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세습자본주의 등 머리를 맞대고 풀어나가야 할 난제가 많다. 끊이지 않는 전쟁은 또 어떤가. 이런 문제 풀이에서 진정한 인문학은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최강의 힘이다. 더 늦기 전에 이 나라의 문화 정책 기조가 진짜 인문학의 모습으로 바로 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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