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어떤 무기도 도덕적 문제를 해결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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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는 1922년 그리스-튀르키예 전쟁, 노르망디 상륙전 등 2차대전에도 종군기자 겸 준(準)민병대원으로 참전했다.
'무기여.'에서 "나는 (전쟁을 치장하는) 성스러움이나 영광, 희생 등의 단어가 항상 부끄러웠다.() 그 추상적인 단어들은 구체적인 마을 이름과 도로, 강, 연대의 규모와 날짜에 대면 오히려 외설스럽게 느껴졌다"고 썼던 그는 원자폭탄의 가공할 위력이 인류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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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헤밍웨이는 1922년 그리스-튀르키예 전쟁, 노르망디 상륙전 등 2차대전에도 종군기자 겸 준(準)민병대원으로 참전했다. 그의 호주머니 속 동전지갑에는 용기라 여겼던 불사(不死)의 환상을 깨 준 1918년 포탄 파편들이 늘 담겨 있었다. ‘전장의 사람들(Men at War)’이란 글에서 그는 “다른 이들이 해낸 일이라면 나도 해낼 수 있고, 그러기 위한 최선의 길은 지레 걱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했다. 그 파편들은 존 F. 케네디 대통령도서관의 헤밍웨이 기록보관소 한편에 지금도 전시돼 있다.
1918년 부상 직후 헤밍웨이는 밀라노로 후송돼 6개월간 치료를 받았고, 거기서 미국적십자사 간호사와 짧은 연애를 했다. 그 이야기가 훗날 ‘무기여 잘 있거라’의 모티브가 됐다. 2차대전 발발 당시 쿠바에 살던 헤밍웨이는 직접 배를 몰고 카리브해에 나가 독일 U보트 순찰을 하고, 현지 군부대와 정보당국에 알렸다. 노르망디 상륙전 직전 유럽으로 건너가, 오마하 해변 상륙전에 민간인 특파원 신분으로 동참했고 소규모 비정규군과 함께 파리 진격전에도 가담했다.
그는 전후 쿠바로 되돌아갔고, 1947년 6월 현지 대사관에서 전시 종군기자 공로로 동성무공훈장을 받았다. ‘무기여….’에서 “나는 (전쟁을 치장하는) 성스러움이나 영광, 희생 등의 단어가 항상 부끄러웠다.(…) 그 추상적인 단어들은 구체적인 마을 이름과 도로, 강, 연대의 규모와 날짜에 대면 오히려 외설스럽게 느껴졌다”고 썼던 그는 원자폭탄의 가공할 위력이 인류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1951년 6월 뉴욕타임스의 한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어떤 무기도 도덕적 문제를 해결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무기는 해결책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정의로운 해결책을 보장하지는 않는다”고 썼다. 그는 1952년 소설 ‘노인과 바다’로 54년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59년 쿠바 혁명 직후 아이다호로 이주해 61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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