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 최저임금 급등과 키오스크 전성시대

조귀동 경제칼럼니스트 2024. 7. 9.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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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7월이면 최저임금 협상
노사 대립 속 정부의 자의적 결정
볼수록 개혁 실패 사회 축소판
인건비 리스크에 기계만 는다
지난 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8차 전원회의에 사용자위원측이 지난 7차 전원회의 구분적용 표결과정에 항의하며 불참한 가운데 류기섭 근로자위원이 발언하고 있다./뉴스1

“매장에서 주문받는 키오스크는 매출액에서 일정 비율로 떼가는데, 아르바이트생을 쓰면 매달 급여가 나갑니다. 게다가 최저임금이 또 뛰면... 비용이 비슷해도 리스크를 생각하면 기계가 더 낫습니다.”

지난 2017년 최저임금이 16.4% 인상된 뒤 달라진 것이 있다. 소상공인들이 인건비를 어떻게 아낄지 공공연히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월급쟁이들에게는 생래적으로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는 주제들인데 최저임금 상승이 전국 단위의 하투(夏鬪‧여름에 많이 실시되는 임금 단체 협상)가 되어버리니 거리낌이 없어졌다. 키오스크 같은 기계 사용도 적극적으로 권장됐다. 최저임금 수준도 문제지만, 당장 내년도 인상률이 몇 퍼센트일지 알 수 없는 상황을 피해야 한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올해도 어김없이 최저임금위원회는 파행으로 운영됐다. 민주노총이 추천한 근로자위원은 위원회 활동을 방해하기 위해 의사봉을 뺏고 투표용지를 찢는 상식 밖의 행동을 해 노동계 내부에서까지 비판을 받았다. 경영계는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는 산업별‧지역별 차등 적용 요구를 내걸었다. 무리한 요구와 행동이 오가다 보니 정작 본협상은 법정 심의 기한인 6월 말을 훌쩍 넘긴 어제(8일) 시작됐다.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노사 양쪽 모두 ‘벼랑 끝 전술’을 고집하는 건 잃을 게 없기 때문이다. 협상이 결렬됐을 때 뒤따를 파업이나 직장 폐쇄 위험이 없다. 정부가 선임한 공익위원이 막판에 캐스팅보트를 행사해 적당한 수준으로 인상 폭을 결정하는 게 일반적이다.

노사 극한 대립 속에서 사실상 그때그때 정부가 자의적으로 판단해 결정한다면 정책 실패는 필연적이다. 정부의 합리성과 별개로 ‘내 편’에는 관대하고 ‘상대편’은 어떻게든 잘못한 것처럼 만들어야 하는 정치의 속성 때문이다. 2017년 당시 최저임금 인상 폭에 대해 청와대 핵심 정책 결정 담당자들은 이 정도 수준일지 전혀 예상치 못했다고 한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저도 솔직히 놀랐다”고 말한 것은 유체 이탈 화법이나 책임 회피가 아니었다. 노동계의 ‘최저임금 1만원’ 주장이 실현됐을 때 부작용에 대해서 청와대나 여당이 누구도 주의 깊게 살피지 않고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니, 공익위원들이 근로자위원 편을 들면서 정책 참사가 시작됐다.

제도 개혁도 언감생심이다. 노사 모두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 정부라면 사용자, 국민의힘 정부라면 근로자 측을 상대로 설득력 있는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 주도 성장을 추진하면서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약자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처럼 굴었지만 최저임금 인상률은 박근혜 정부가 연평균 7.4%, 금융 위기를 겪었던 이명박 정부도 연평균 5.2%였다. 문재인 정부 5년간 인상률은 7.2%다. 윤석열 정부는 산업별‧지역별 차등 적용 방안을 도입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제도 개선 계획을 구체적으로 내놓고 있지 않다. 일본이나 독일 사례를 보면 차등 적용을 위해서는 광역지방자치단체에 결정 권한을 상당 부분 이양하거나, 산업별 노사 합의를 통해 정부 고시와 별도로 자체 기준을 만들게 해야 한다. 민주당 강세인 수도권 지자체에 권한 이양도 싫고, 노동계를 끌어들이기도 싫으니 입으로만 개혁을 외치는 것이다.

최저임금에 대해 소상공인들이 불만을 가지는 건 높은 인상률만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주는 사안임에도 기업에서 임금 단체 협상을 하듯 기 싸움이 이어지다 막판에 가서야 몇 퍼센트 올리기로 했다고 합의하는 방식이 불확실성을 높인다는 데 있다. 리스크가 높은 상황을 마냥 감내할 경영자는 없다. 소상공인들이 매년 7월 키오스크를 쳐다보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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