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지기의 배신이 불러온 비극 [그해 오늘]

홍수현 2024. 7. 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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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9일, 자신의 여자친구를 성폭행한 30년 지기를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A(36)씨에게 대전지법 형사11부(김용찬 부장판사)는 징역 20년을 선고하고,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10년을 명령했다.

A씨는 2020년 3월 3일 오후 1시께 대전 서구 한 모텔에서 동갑내기 친구 B(36)씨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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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이 술 마시다 친구가 여자친구 성폭행
범행 인정하는 듯하다 법적 대응에 분노 폭발
사적 제재로 결국 살인, 시체 손괴까지
시신 일부 여자친구 집 앞 걸어놓기도
"여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한 것에 대한 복수심"

[이데일리 홍수현 기자] 2020년 7월 9일, 자신의 여자친구를 성폭행한 30년 지기를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A(36)씨에게 대전지법 형사11부(김용찬 부장판사)는 징역 20년을 선고하고,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10년을 명령했다.

(사진=게티 이미지)
A씨는 2020년 3월 3일 오후 1시께 대전 서구 한 모텔에서 동갑내기 친구 B(36)씨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숨진 B씨도, A씨와 그 여자친구의 삶도 모두 망가뜨린 비극은 지난해 9월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날 시작됐다.

2019년 9월 22일. A씨는 둘도 없는 친구 B씨에게 여자친구를 소개해주고 함께 술자리를 가졌다. A씨와 B씨는 5살 때부터 같은 동네에 살면서 유치원부터 초·중·고등학교까지 함께 동고동락한 각별한 사이였다.

여자친구의 집에 모인 이들은 늦게까지 함께 술을 마시다 잠들었다. 잠에서 깬 A씨는 “B가 나를 성폭행했다”는 여자친구의 믿기지 않는 말을 들었다.

분노한 A씨는 곧바로 B씨를 추궁했고, 눈앞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B씨를 경찰에 넘겼다. 이때만해도 A씨는 B씨가 절차대로 죗값을 치르길 바랐다.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혐의를 부인하는 B씨의 모습이 A씨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B씨가 불구속 수사를 받는다는 사실도 A씨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수차례 구속을 탄원했고, 엄벌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게시했지만 여자친구가 자살을 시도하는 등 상황은 갈수록 악화됐다.

분노는 점차 커졌고, B씨가 준강간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변호사를 선임했다는 소식에 A씨는 결국 B씨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A씨는 범행 하루 전날인 3월 2일 대전 서구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B씨와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자신의 여자친구에 대한 준강간 혐의를 인정하느냐, 여자친구에게 사과하라는 등의 대화를 나누다 술을 더 마시면서 얘기를 하자며 모텔로 가 미리 준비한 흉기로 B씨를 30회 이상 찔러 살해했다.

(사진=게티 이미지)
A씨는 이에 그치지 않고 엽기 행각을 벌였다. 숨진 B씨의 신체 일부를 훼손한 후 여자친구 집 주차장 근처에서 자살을 시도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여자친구가 ‘이별’을 요구한 것에 대한 복수심이었다. 여자친구는 사건이 벌어진 뒤 A씨에게 이별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A씨는 “헤어질 수 없다”며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협박을 했다.

“헤어지면 B씨를 죽이고, 나도 죽겠다.”

심지어 칼을 들고 여자친구를 협박해 벌금형으로 처벌받기도 했다. 이런 집착은 점점 심해졌고, A씨가 살인을 저지르기 하루 전.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음성메시지를 남겼다.

“널 놓아주겠다. B씨를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

그리고 실제 이 말대로 했다.

재판부는 “미리 흉기를 준비해 모텔로 이동한 점이나 피해자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는 등의 메시지를 다른 사람에게 보낸 것으로 미뤄 계획성이 인정된다”며 “법의학 감정 등 증거를 토대로 피해자가 숨진 이후 사체를 손괴했다는 공소사실도 유죄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2심 재판부는 A씨의 죄를 더 중하게 봤다. 1심 재판부가 A씨의 살인에 B씨의 준강간 사건을 어느 정도 귀책 사유로 인정한 반면 항소심은 사망한 피해자에게 범죄(살인)의 귀책 사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항소심에서는 1심보다 높은 징역 25년형이 선고됐다.

A씨는 사건을 대법원으로 가져갔지만, 대법원의 판단도 2심과 같았다.

홍수현 (soo00@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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