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의 포스트잇] [31] 위로 과잉사회
우리 사회를 잘 반영하는 표현이 있다면, 그건 ‘우울증 사회’가 아닐까 싶다. 이 주제를 실제로 받아들이게 된 건 최근 다른 사안으로 취재차 만났던 이들과의 대화 속에서 우연히 확인하게 된 사실 때문이다.
요점은 이렇다. 우울증으로 삶의 장애를 겪고 있다고 스스로 여겨 정신과에 가서 상담하고 약도 처방받는 사람들, 특히 젊은 사회인들이 우리 예상보다 깜짝 놀랄 만큼 많다는 것. 객관적으로 결코 열악한 환경과 조건에 처해 있지 않은 경우에도 그렇고 화이트칼라일수록 양상이 더 심한 거 같았다.
정신과 의사라든가 정신과 병원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예컨대 요즘 TV와 유튜브 등 온갖 매체 안에는 ‘한국인의’ 우울증을 치료한다는 ‘한국인의’ 콘텐츠가 차고 넘치며 급속도로 늘어가는 추세다. 우울증 개선을 테마로 한 오프라인 프로그램들 역시 다양한 모습들로 알게 모르게 성업 중이다. 미국에서는 감기 치료처럼 정신과 출입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소리를 무슨 별나라 얘기마냥 듣던 내 20대 시절이 어렴풋한데 어느덧 대한민국도 선진국(?) 반열에 올라 그렇게 된 건가 싶기도 하다.
이를 각 잡고 파헤치려면 원인은 복잡하고 현실은 난해할 것이겠지만, 내가 지금 짧게 하려는 얘기는 결이 한참 다르다. 앞서 취재차 만났던 이들과의 대화 중에 불쑥 이런 말을 들었다. “‘우울증 신드롬’에는 역효과도 있다. 직장이나 소속 분야에서 미숙하거나 나쁜 일을 해서 충고와 질책을 받게 되면 반성하고 고쳐서 발전하는 게 아니라, 곧바로 정신과 의사를 비롯한 ‘상담자’를 찾아간다. 그리고 이런 처방을 받는다. ‘미움받을 용기를 가져라. 모두를 사랑할 필요 없고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수는 없다.’ 이제 다시 제 일상으로 돌아간다. 계속 미운 짓을 한다. 이 노릇이 무한 반복된다.”
이 얘길 듣고 그 자리의 사람들 전부가 웃음이 빵 터졌다. 웃음 그 이상의 의미가 없기를 바라지만 행여나 ‘0.1g의 진실’이라도 녹아들어가 있는 얘기라면 이 얘기의 진정성이 부디 전달되기 바라는 마음은,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모든 분들이 적절한 ‘의학적’ 도움을 받아 속히 치유되기를 기도하는 마음과 같을 것이다. ‘한 번쯤 생각해볼 가치’는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위로 장사꾼들’이 창궐하더니 ‘힐링 상업주의’가 시대를 풍미하고 있다. ‘돈 많이 버는 법’이라는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으면 돈 많이 버는 것은 그 책을 쓴 사람뿐인 것처럼 ‘행복 전도사’들은 불행한 사람들이 많아야 행복해진다. 정치적 위선자들만큼이나 위로자들이 많은 요상한 나라. 위로자들이 많은데 세상은 왜 이 지경일까?
철학이 태도를 교정해 몸과 마음이 강해지는 것은 혼자 찾고 혼자 성취해야 남에게 거저 나눠줄 수 있는 빛이 된다. 행복이 아니라 불행을 이해해야 어둠 속에서도 허깨비 같은 행복 대신, ‘안 불행해질 수 있는’ 것처럼. 악마는 친절한 말 속에 울긋불긋한 알을 낳는다. 우울의 덫은 꽃 모양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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