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차량 돌진 사고에 “나이 탓”…고개 드는 ‘노인 혐오’
운수업 종사자들 “생계 놓나”…‘고령 운전자’ 표현도 편견
비상제동장치 장착 등 차량·도로 안전 근본 해법 논의 필요
서울에서 10년 넘게 택시 운전을 하고 있는 김승목씨(69·가명)는 최근 딸에게서 “친구들이 나이 많은 사람이 택시 운전하는 걸 보면 불안하대”라는 말을 들었다. 딸은 뒤이어 “속상해. 아빠, 언제 퇴직할 거야?”라고 물었다고 한다. 김씨는 8일 기자와 만나 “주말 내내 라디오에서 고령 운전이다 뭐다 얘기가 많더라”며 “사고라도 나면 괜히 엮여서 욕먹을까봐 걱정되더라”고 한숨을 쉬었다.
지난 1일 16명의 사상자를 낸 서울 시청역 인근 차량 돌진 교통사고의 가해 운전자 차모씨가 68세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고령 운전자에 대한 곱지 않은 말들이 나오고 있다. 고령 운전 위험성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일각에서 고령 운전자를 싸잡아 ‘예비 가해자’인 것처럼 취급하는 양상까지 나타나고 있어 우려가 제기된다.
공교롭게도 시청역 교통사고 이후 일주일간 65세 이상 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가 연달아 일어나고 언론에 보도되면서 시민 걱정은 더 커졌다.
지난 3일 서울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실 앞, 6일 서울역 인근 인도, 7일 용산구 이촌동에서 발생한 차량 돌진·추돌 사고 가해 운전자는 모두 70~80대였다. 그러자 일각에서는 고령 운전자 적성검사 강화나 70세 이상 운전면허 반납 등 고령 운전자를 타깃으로 한 교통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전문가들은 각 교통사고의 정확한 원인 분석 없이 운전자 나이로만 사건을 규정짓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라고 말한다. 한상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시청역 인근 사고가 페달 오인으로 인한 것이라면, 가속페달을 밟았는데도 브레이크를 밟았다고 믿게 되는 오류는 나이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이가 들면 착각을 한다” “늙은이들 면허 박탈해달라”는 등 온라인 게시물·댓글에서 엿보이는 ‘노인 혐오’가 번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개개인의 신체능력을 고려하지 않는 ‘고령 운전자’라는 표현이 편견을 만드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이날 만난 택시기사 등 운수업계 운전자들은 속상한 마음을 내비쳤다. 노동력 부족 등으로 고령 운전자가 상당수인 운수업계 상황에서 고령 운전자를 제한하면 인력난이 가중되는 데다 운수업 종사자의 생계 수단을 박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47년 차 모범택시 기사 배장한씨(68)는 “신체적으로 이상이 없는지 자격유지검사도 다 받는데, 나이 들었다고 운전을 관두라는 건 너무한 얘기”라고 했다. 20년 차 택시기사 장모씨(70)도 “젊은 사람들이 사고 냈을 땐 ‘청년 운전자 사고’라고 안 하지 않나. 원인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며 “우리나라가 노인에게 너무 박한 것 같다”고 했다.
가해 운전자의 개인적 특성으로 사건의 초점을 좁히기보단 ‘차량’과 ‘도로’가 안전해질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게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전방에 있는 차량이나 사람을 감지해 자동 제동하는 비상자동제동장치(AEBS) 장착을 장려하는 게 대표적이다.
한 교수는 “고령 운전자 사고 빈도를 줄이려면 이러한 보조 장치들을 더 적극적으로 달 수 있도록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고령 운전자’가 아닌 신체·인지 능력의 현저한 저하로 사고 위험이 높은 ‘고위험 운전군’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전지현·김송이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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