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1964년 민권법을 다시 생각한다

기자 2024. 7. 8.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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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2일, 미국 정부와 사회는 민권법 제정 60주년을 기념했다. 인종, 피부색, 종교, 성별, 출신 국가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 1964년 민권법은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입법이다. 2019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영화의 제목 ‘그린 북’은 인종차별이 혹독했던 남부에서 흑인들이 그나마 이용할 수 있었던 숙박시설 등을 정리해 놓은 책을 말한다. 민권법 시행에 따라 노예해방 선언 후 10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공중이용시설의 인종분리가 철폐된다.

민권법에 대하여는 사회 변화를 시도할 때 쉽게 들을 수 있는 전형적인 반대 논리가 등장했다. 시기상조다, 목적이 옳다 해도 일률적 강제는 부적절하다 등등. 하지만 민권법의 역사는 차별 금지처럼 헌법적·사회적 정당성이 있고 다수의 공감을 얻은 문제의 경우 일각에서 반대 흐름이 있더라도 정책이나 입법으로 변화를 선도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사회 변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비로소 세상이 변화한다’는 논리로 민권법 제정을 포기했다면 아직도 미국 남부에서 흑인과 백인은 다른 화장실을 쓰고 있을 것이다. 법과 제도의 진보는 모두의 동의나 생각의 변화에 선행할 수 있다.

민권법은 당연히 격렬한 정치적 반대에 부딪혔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민권법 제정을 약속하고 1963년 6월 법안을 발의했지만 바로 다음해 대선에서 남부의 지지를 잃을 것을 우려했고, 의회에서도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1963년 11월 케네디 암살에 따라 민권법의 동력이 상실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부통령 린든 B 존슨이 민권법 제정을 완수했다. 그는 대통령직을 승계한 직후 ‘민권법 제정이 케네디 정치의 승계’라고 선언한 다음, 후퇴하지 않고 민권법을 밀어붙였다. 민권법에 반대하는 남부 출신 의원들은 무려 72일 동안 필리버스터를 이어갔다. 하지만 존슨은 미국 역사상 상·하원 의원, 부통령, 대통령을 모두 역임한 단 4명 중의 하나였고, 의회가 돌아가는 방식을 속속들이 꿰고 있었다. 그가 발휘한 정치력으로 민권법은 결국 의회를 통과했고, 존슨 대통령은 1964년 7월2일 민권법에 서명했다.

지금의 정치 상황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지만 공화당은 원래 ‘에이브러햄 링컨의 정당’이다. 남부는 남북전쟁에서 자신들을 굴복시킨 북부의 공화당을 용서하지 않았고, 이후 남부는 민주당의 텃밭이 된다. 민권법 제정 당시 남부 출신 상원의원은 단 1명을 제외하고 모두 민주당 소속이었다. 민권법이 제정되자 남부의 민주당 의원들은 대거 공화당으로 당적을 옮겼고, 이에 따라 백인 유권자의 지지 또한 이동하여 남부는 공화당의 아성으로 변모한다. 반대로 민주당은 동·서부 연안 도시지역 유권자와 흑인 등 소수인종을 지지층으로 삼게 된다.

민권법 제정에 따른 민주·공화 양당의 지지세력 교체는 정치사상 가장 극적인 유권자 연합의 재정렬이다. 노회한 정치인 존슨은 정확하게 이런 결과를 알고, 아니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민권법 제정에 정치력을 쏟아부었다.

민권법의 대표적 성과는 인종분리 철폐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연방대법원은 2020년 보스톡 대 클레이턴 카운티 판결에서 ‘성별’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민권법 조항을 근거로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직장 내 차별이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의 다수의견은 진보 대법관이 아니라 법원은 엄격하게 법률 문언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보수파 닐 고서치 대법관이 집필했다. 1960년대에 성소수자를 염두에 두고 민권법이 제정되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일단 차별 금지라는 방어막이 구축되면 그 대상은 원래 의도했던 소수자에 한정되지도 않고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도 작동한다는 점을 민권법의 역사는 보여준다.

많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가 작동하지 않고 기존 정치세력이 포퓰리즘에 밀려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치권력이 현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별 이슈에 국한된 해법을 제시하거나 특정 유권자 그룹의 고충에 일일이 반응한다고 사람들이 민주주의와 정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지는 않을 것 같다. 사회와 정치의 구도를 바꿀 새로운 디자인을 모색하고 시도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1964년 민권법의 역사를 떠올리는 것은, 그저 60주년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 진보와 소수자 보호를 향한 위대한 신념, 이를 현실에 구현하는 가차 없는 정치력, 그것이 가져올 영향을 계산하고 감수하는 정치적 결단이 조화를 이룬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기억하고 기념할 만한 업적이지만, 그렇다고 재현할 수 없는 유일한 사례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유정훈 변호사

유정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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