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누굴 위한 ‘지하철 해고 질주?’

기자 2024. 7. 8.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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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 락스로 화장실 청소를 하다 보면 머리가 어지럽다. 몸에 안 좋을 걸 알지만 편리함과 강력한 세척력 때문에 화학용품을 포기할 수 없다. 요즘 지하철을 타면 머리 위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데 지하철 에어컨은 어떻게 청소할지 궁금하다.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지하철 노동자들은 3년에 한 번씩 200m 길이의 지하철을 통째로 목욕시킨다. 거대한 차량기지에서 지하철 10칸을 하나하나 분리해 크레인으로 들어 옮기고 바퀴, 모터, 에어컨 등 부품을 떼어내 세척하고 정비한다. 부식을 막고 모양을 내기 위해 페인트칠을 하는 도장작업도 필수다.

기계세척과 도장을 위해서 ‘락스’와는 비교가 안 되는 위험한 유기용제를 사용한다. 유기용제는 어떤 물질을 녹일 수 있는 액체인데, 벤젠이나 알코올 등이다. 손톱 매니큐어를 지울 때 아세톤을 사용하는 것처럼 지하철 부품에 묻어 있는 기름때와 오염물질을 세척하거나 도장작업을 위해 벤젠이나 트리클로로에틸렌 등 혼합 유기용제를 사용한다. 흡입하면 현기증, 구역질, 경련 등의 중독증상이 일어나는데 벤젠은 발암물질로 분류되어 2014년부터 사용금지될 정도로 위험한 물질이다. 환기시설과 방독면 등 적절한 안전조치가 없는 일터에서 사용하면 치명적이다.

그러나 유기용제는 휘발성이 강하고 증발 속도가 빨라 눈에 보이지 않는다. 거대한 차량정비기지를 가보면,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된 채 일하는 노동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결국 사달이 났다. 서울지하철에서 차량정비 일을 하는 노동자 8명이 혈액암에 걸렸다. 비슷한 작업을 하는 다른 지역 지하철과 철도노동자에게도 혈액암이 발견되고 있다.

시민이 타는 지하철이 암을 싣고 달리고 있다. 암을 유발하는 유해화학물질이 눈에 보이지 않듯이 지하철에도 암에 걸린 노동자가 보이지 않는다. 만약 스크린도어 광고판에 차량정비기지의 열악한 환경과 쓰러져간 노동자의 얼굴이 붙어 있다면 시민들은 마음 편히 지하철을 이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리튬 배터리를 만드는 화성 아리셀공장에서 23명의 노동자가 화재로 죽었다. 리튬은 배터리에 사용되는 물질인데 휴대폰을 충전할 때마다 죽어간 노동자의 얼굴이 화면에 뜬다면 상품을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생산과정에 대한 무지야말로 산업을 돌리기 위한 필수적 요소일지 모른다. 그래서 광고판에는 죽어간 노동자 대신 아름다운 연예인의 얼굴이 필요하다. 그러나 보이지 않던 산업현장의 위험은 영정과 병든 가족의 얼굴로 우리 앞에 등장한다.

사실 우리는 살아 있는 노동자들을 마주친 적 있다. 시민들은 차도를 막고 마이크를 들고 악다구니를 쓰는 사람들을 종종 마주친다. 차량통행이 불편했던 일부 시민은 ‘빵!’ 신경질적인 경적을 울리고 욕설을 내뱉으며 지나간다. 덕분에 누군가는 혁신의 이름으로 죽음의 공장을 연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경영혁신 추진계획으로 2026년까지 2200여명의 지하철 노동자를 해고할 예정이다. 2023년 이미 외주화 등으로 380명을 감축했다. 일터와 시민의 안전을 챙기는 서울교통공사노조에 대해선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 안전장치를 하나둘 제거하는 조치들이다. 오세훈표 지하철이 노동자 죽음이라는 레일 위로 달리지 않도록, 시민의 감시와 견제가 필요하다.

박정훈 민주노총 공공운수 노조 부위원장

박정훈 민주노총 공공운수 노조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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