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동의 사소한 물음들]이게 나라냐고, 다시 외칠 수밖에 없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며칠 동안 부들부들 떨린다. 참담하다. 지난 7월4일이었다. ‘용호성’이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으로 임명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누구인가? 박근혜 대통령 집권 초인 2013년 3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 내 문화체육비서관실 선임행정관으로 재직하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주도한 인물이다.
그는 2013년 국립극단에서 공연 예정이던 <개구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미화하고, 좌파 문화예술인이 연출을 맡고 있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려 공연 자체를 무산시킨 당시 사건에 관여했음이 밝혀져 있다. 2014년엔 영화 <변호인>을 파리 한국영화제 출품 작품에서 배제토록 지시했다. 같은 해 3월경엔 대통령비서실장 김기춘, 교문수석 모철민, 문체비서관 김소영 등으로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책임심의위원 후보자 총 19명이 좌파 성향이니 위촉을 배제해야 한다는 지시를 받아 문체부 담당 사무관에게 여러 수단을 강구해 배제 대상자를 책임심의위원에서 제외할 것을 지시한 사실도 밝혀졌다. 2015년 국립국악원 기획운영단장으로 파견돼서는 국악원의 정기공연 프로그램인 ‘금요공감’의 공연작으로 예정된 <소월산천>의 연출이 당시 국정원 및 청와대의 블랙리스트 대상이라는 이유로 공연 2주 전 공연을 변경 혹은 취소하도록 지시했음도 드러났다.
그가 청와대에 파견 근무하던 시절, 청와대 문화체육비서관실은 청와대 비서실과 국정원과 문체부(산하기관 포함)를 두루 아울러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관장한 최대 몸통기관이었다. 이 모든 게 추측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 용호성 역시 2017년 김기춘 재판 과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 이행 및 협조 사실을 시인했다. 2018년엔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의 권고안에 따라 당시 문체부 장관이 검찰에 공식 수사 의뢰를 했던 핵심 피의자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 다음날인 2022년 3월10일 불기소 처분되었을 뿐이다.
블랙리스트 주도자의 화려한 복귀
지난 시기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은 밝혀진 바대로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자신들의 정권에 비판적이거나 정치적 견해가 다를 수 있다는 자의적 기준에 따라 ‘이들을 서서히 고사시켜 나가겠다’는 치밀한 계획하에 자행한 희대의 국가폭력, 공작정치의 전형이다. 특정 문화예술인 1만여명을 사찰, 검열, 차별, 배제함으로써 민주주의 원리를 파괴하고 헌법에 명시된 예술표현의 자유와 문화예술인의 권리를 침해한 국가적 범죄행위이자 위헌적이고 위법, 부당한 범죄 행위에 다름 아니다. 이를 위해 국가와 정부가 권력을 부당하게 사유화하거나 남용해 공적 제도와 공적 기관을 통해 문화예술인을 차별하고 그 결과 예술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문화향유권을 침해한 헌정 유린의 사건이었다.
그런 용호성이 문체부 제1차관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건 나라가 아니다. 이건 국가도 정부도 아니다. 유인촌 장관 역시 이명박 정권 당시 문체부 장관과 대통령 문화특보로 그 시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의 정점에 있었던 자이다. 둘의 공통점이라면 그런 막중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 시절 진상조사가 어떤 조사권이나 기소권 등도 없이 한시적으로 진행되면서 진상규명과 처벌을 피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또한 이런 미진한 진상조사로 분명한 조사에 따른 단죄나 처벌 등을 받은 적이 없음을 근거로 어떤 사회적·윤리적 소명의식도 없이 오리발을 내밀고 있는 배은망덕한 자들이라는 것이다.
2016년 11월4일. 이건 나라가 아니라고, 이건 정부가 아니라고, 나아가 이런 대통령은 자격이 없다고, 문화예술인들은 광화문으로 나아갔다. 그곳에 박근혜 퇴진과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문화예술인 캠핑촌을 비정규 노동자들과 함께 꾸리고 박근혜가 탄핵되던 그날까지 광장을 지켰다. 그런데 유인촌 장관에 이어 용호성 제1차관이라니.
특별법 통한 온전한 진상조사 필요
문화예술인들은 이런 국가적 재난을 우려해 6년여 동안 줄기차게 특별법 제정을 요구해 왔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역시 약속을 지키지 않은 책임이 있다. 다행히 근래 국회에서 조국혁신당과 민주당 의원들이 이런 계속되는 국가적 참사를 끊기 위해 지난 블랙리스트 사건의 온전한 진상조사를 위한 특별법 제정 운동에 다시 나서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임계점을 넘어 문화예술인들을 향해 전면전을 선포한 이때.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며칠째 부들부들 떨린다.
송경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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