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학생인권조례와 교권 붕괴

기자 2024. 7. 8. 20:5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18년 9월 서울행정법원은 서울 소재 기독교학교 교장 등이 제기한 ‘서울시학생인권조례 무효확인 청구소송’을 각하 처분했다. 학생인권조례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구체화해 열거한 것으로 헌법적 원칙을 선언한 것”이라는 게 판결요지였다. 2019년 12월 헌법재판소도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제3조 제1항 등 위헌확인’ 재판에서 “(학생인권)조례 제5조 제3항으로 달성되는 공익이 매우 중대한 반면, 제한되는 표현은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표현으로 그 보호가치가 매우 낮으므로 법익 간 균형이 인정된다”고 헌법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서울시의회는 2024년 4월 학생인권조례를 폐지 의결한 데 이어, 서울시교육감의 재의요구에도 불구하고 6월25일 최종 폐지했다. 사법부 판결에 반할 뿐 아니라, 헌법적 가치를 능멸하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집요하게 주장해온 이들은 ‘교권 수호’와 ‘동성애 반대’를 명분으로 내세운다. ‘동성애 반대’야 이미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있고, 유엔의 인권 관련 조약기구에서 수다하게 지적되었으니 재론할 것도 없겠다. 그런데 ‘교권 수호’ 문제는 당사자인 교사는 물론, 적지 않은 이들이 개념상 혼란을 겪고 있는 듯하다. 개념이 뒤엉키면 생각과 말과 행위가 뒤엉키기 마련이다.

도대체 ‘교권(敎權)’이란 무엇인가. ‘교사의 권력’인가, ‘교사의 권한’인가. 시민권 체제에서는 누구나 권리의 주체인데, 공무를 수행하는 국가행위자의 권리는 ‘통치수단으로서의 법(Rule by Law)’에 의해 권력(權力)이 되기도 하고, ‘권력통제로서의 법(Rule of Law)’에 의해 권한(權限)이 되기도 한다. 공교육에서 교사는 국가의 행위자로서, 주권자의 권력을 제한적으로 위임받아 주권자의 교육권 실현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교권은 두말할 것도 없이 교사의 권한인 것이다. 이 권한이 제대로 행사될 때 사회적 공신력이 확보되면서 권위(權威)가 생성되고 부여된다. 교사의 권한행사에 사회적 믿음과 존경이라는 권위가 더해져 교권의 실체를 이루는 것이다. 법으로 교사의 권력을 강화하면, 즉 교사의 권한이 권력으로 대체되면 교사의 권위는 당연히 실종된다. 권력은 스스로 권위를 내세우지만 그런 권위는 누구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권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은 뭘까.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한 곳일수록 교육현장의 갈등이 적다는 관련 연구결과를 감안하면, 적어도 학생인권은 아니다. 나는 교육현장이 ‘시장 논리’에 포획된 것이야말로 교권 붕괴의 진앙이라고 본다. 공교육체계가 무너지고 학교가 시장화될수록 교육은 상품으로 거래되고, 우수상품은 SKY대학 진학률로 가늠된다. 교사는 교육상품을 판매하는 서비스 제공자에 불과하고 학생과 보호자는 구매자가 된다. 시장에선 구매자인 고객이 갑이고 서비스 제공자는 을이다. 교사는 학생과 보호자로부터 “네 월급 누가 주는데 어디 내 앞에서 따따부따거리냐”라는 폭언을 들어도 그저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성과평가제와 교원평가제로 경쟁에도 내몰린다. 우수교원이 되려면 진학률, 수능점수 따위의 합당한 ‘실적’을 올려야만 하고, 결국 이런 교사가 좋은 교사로 평가되어 살아남는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기본법이 정한 ‘홍익인간 구현’이나 ‘민주시민 양성’이 자리할 리 만무하고, 설혹 교권이 존재한다면 그게 이상한 것이다. 그런데 교권 수호를 위해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한단다. 그야말로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는 꼴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 사회는 변화를 겪고 있다. ‘과거의 것은 갔는데 미래의 것이 아직 오지 않아’ 큰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이 혼란이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성장통’인지, 아니면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의 징후’인지 가늠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혼란의 중심에 ‘인간의 존엄’이 있다는 사실이다. ‘워라밸’이니, ‘저녁이 있는 삶’이니 하는 시대어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학생인권조례는 이런 시대정신의 상징이자 의지적 표현이다. 특히 헌법적 가치가 유린되고 사법부의 판단조차 다반사로 무시되는 상황에선 학생인권조례나 학생인권법과 같은 인권규범이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 세계인권선언이 언급한 대로 “인권에 대한 무시와 경멸은 인류의 양심을 짓밟는 야만적 행위의 결과”이기에, “인권이 법의 지배에 의해 보호됨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제 학생인권조례를 지키는 일은 학생인권만이 아니라 교권, 나아가 인권보장을 위한 대한민국 헌법수호 투쟁이 되었다.

김형완 (사)인권정책연구소 소장

김형완 (사)인권정책연구소 소장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