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공연 앞둔 ‘더 마치’…그들이 극단을 만든 이유

박용필 기자 2024. 7. 8.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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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를 향한 갈망…애타는 갈증
물 한 모금이라도 주고 싶었죠”
지난 4일 서울 성북구의 한 연습실에서 ‘더 마치 컴퍼니’의 단원 김성기씨, 안혜원씨, 이승하씨와 그의 자녀, 그리고 최병광 대표(왼쪽부터)가 “혼을 담은 공연을 선보이겠다”고 말하고 있다. 박용필 기자
오디션의 높은 벽 ‘양극화’ 초래
최병광 대표, 오랜 고민 끝 창단
지망생·노배우 등 100여명 함께
유명 음향·무대 감독 재능 기부
배우 홍지민·정영주씨 등 동참

“아직 날개를 펼쳐볼 기회가 없으셨던 배우의 꿈을 가지고 계신 분들….”

뮤지컬 배우 지망생 안혜원씨(26)를 뮤지컬 <더 마치>로 이끈 문구다. 지난 4일 경향신문과 만난 안씨는 “연극과를 졸업하고 오디션에 지원해봤지만 매번 서류 통과도 힘들었던 저를 가리키는 말 같았다”며 “출연료는 바라지도 않았다. 무대에 설 기회 그 자체가 가장 큰 보상”이라고 했다.

<더 마치>가 오는 15일 첫 공연을 앞두고 있다. 극단 ‘더 마치 컴퍼니’의 창단을 기념하는 공연이다. ‘더 마치 컴퍼니’는 안씨처럼 무대를 간절히 원하지만 설 기회가 없는 이들에게 무대를 마련해주고자 지난 4월 창립됐다.

극단 대표 최병광씨(51)는 “오디션 응시 자격으로 최소 2번 이상의 대작 출연 경험을 요구하는 곳이 적지 않다”며 “그러나 오디션 볼 기회도 없는 지망생들이 대작을 2번이나 출연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영향력 있는 교수나 유명 배우가 키우는 학생들,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인 배우들에게만 기회가 돌아가요. 유명 연예인이나 최정상급 배우의 몸값은 회당 1000만원이 훌쩍 넘지만, 앙상블(무대 뒤편에서 율동·합창을 하는 배우)들은 하루 7만~8만원에 불과하고요.”

그는 이 같은 “양극화”가 극단 설립의 이유라고 했다. “10여년 전부터 이런 생각을 해오다 지난해 말 한 후배가 자기도 힘을 보태겠다고 해 함께창단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업계에서 손꼽히는 음향, 무대, 미술 감독들이 아무 대가 없이 재능 기부를 하겠다고 나섰다. 홍지민, 정영주 배우 등 뮤지컬계를 대표하는 유명 배우들도 최소한의 대가만 받거나 출연료 없이 공연에 함께해주기로 했다. “그들 모두 이대로 가다간 공연계의 저변이 망가지고, 세대교체도 어려워질 거라는 점에 동의하고 공감했어요.”

극단엔 100여명이 모였다. 안씨 같은 지망생뿐 아니라 결혼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 배우, 나이가 들어 이제는 불러주는 곳이 없는 베테랑 노년 배우 등도 있다.

성악을 전공한 배우 이승하씨(39)는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다 2016년 결혼을 했다. “청첩장을 돌린 뒤 출연이나 오디션 제의가 뚝 끊겼어요. 업계에 소문이 쫙 난 거죠, ‘결혼한다’고. 저랑 같이 연극을 시작했던 친구들도 현재 대학로에 거의 남아 있지 않아요. 어리고 예쁜 친구들로 이른바 ‘물갈이’됐죠.”

발산할 길 없는 열정은 오히려 독이 됐다. “노래하는 게 너무 좋아요. 그런데 말 못하는 아이하고만 있다 보니 우울증이 왔어요. 제작자로선 더 싸고 어린 친구들을 쓰고 싶겠죠. 전 돈을 덜 받아도 좋아요. 무대에 설 수만 있다면요.”

2005년 <맨 오브 라만차> 한국 초연 당시 주인공이었던 베테랑 배우 김성기씨(59)도 이번 공연에 함께한다.

서울시예술단, 서울시뮤지컬단 등을 거치며 유수의 작품에서 주요 배역을 도맡던 그였지만 2014년 등산하다 허리를 다친 뒤 사정이 달라졌다. “다치고 나서 오디션을 3번 떨어졌습니다. 그 뒤로는 기회조차 없었어요. 기도했습니다. 몸은 구겨져도 좋으니 소리는 돌려주시라고요.”

그는 공연 연습에 참여하면서 소리를 차츰 되찾아가고 있다. “10년간 재활을 위해 좋다는 치료는 다 받았어요. 그래도 펴지지 않던 등이 요 몇개월 사이 많이 펴졌어요. 제게 노래는 생명 그 자체예요.”

최씨는 매년 적어도 1~2회 정도는 이 같은 자리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다. “손해를 보더라도 할 수 있는 데까진 해볼 생각입니다. ‘공연계의 미래’ 같은 거창한 목표 때문만은 아니에요. 무대에 대한 목마름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물 한 모금이라도 주고 싶습니다.”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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