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경제 항산항심] 기계고객: 기계가 쇼핑을 한다고
스마트폰이 울린다. “한여름에 입을 반바지가 없음. 확인 버튼을 누르면 쇼핑을 시작합니다.” 옷장 속 AI가 보내온 메시지다. 이미 내 취향과 기호를 학습했다. 계절과 트렌드까지 반영해 쇼핑몰을 샅샅이 뒤진다. 다음 날 내 맘에 쏙 드는 반바지가 도착한다. 가격 비교는 물론, 배송 속도, 판매자 평판까지 종합 분석한 결과다. 옷뿐만 아니다. 구매할 수 있는, 구매해야 하는 모든 품목을 이렇게 쇼핑한다.
무거운 카트를 밀며 원하는 제품을 찾아 헤매 다닐 필요가 없다. 깨알 같은 상품평을 눈 아프도록 찾아 읽으며 고민할 이유도 없다. AI가 나 대신 쇼핑을 해준다. 기계가 고객이 되는 거다. 이름하여 ‘기계고객’이다.
기계고객은 사람을 대신해 구매 결정을 내리고 거래를 수행하는 인공지능 에이전트다. 냉장고 속 계란과 우유가 얼마 안 남았다고? 걱정할 것 없다. AI가 냉장고 내부 식자재를 모니터링하고 유통기한을 분석한다. 과거 구매 내역과 현재 필요에 따라 자동으로 식료품을 주문한다. AI 기반 투자 플랫폼은 이미 일상이다. 사전 설정된 위험 허용 범위와 재무 목표에 따라 자동으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조정한다. 공장의 AI가 재고 수준을 모니터링하고 생산 데이터를 분석해 자재를 주문하는 것 역시 기계고객의 사례다.
기계고객은 인간의 개입 정도에 따라 세 단계로 나뉜다. ‘경계형 고객’은 인간이 정해준 규칙에 따라 구매를 수행한다. ‘적응형 고객’은 소비자 선호도를 학습하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구매 결정을 내린다. ‘자율형 고객’은 높은 재량권을 가지고 독립적으로 거래를 수행한다.
데이터 기반 패턴 분석으로 내 취향과 상황을 반영해 방대한 상품 데이터를 분석해 최적의 가격과 품질을 찾아 나 대신 구매하는 기계고객들. 그들끼리 정보를 교환하며 집단지성을 발휘하는 것도 가능할 터. 이 정도면 단순한 기술 발전이 아니다. 비즈니스 패러다임의 대전환이다.
기계고객의 등장은 기업들에게 새로운 과제다. 전통적인 브랜드 전략과 감성 마케팅이 먹히지 않아서다. 기계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구매 결정을 내린다. 수많은 제품 리뷰와 성능 데이터를 분석해 최적의 제품을 찾아낸다.
기업들의 브랜드 전략 변화는 필연적이다. 먼저, 데이터 최적화다. 기계고객은 제품의 실용적 가치를 기준으로 구매 결정을 내린다. 제품 정보와 리뷰, 성능 데이터 등 우리 브랜드의 가치를 제대로 알리려면 기계고객에게 주파수를 맞추어야 한다. 기계고객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과정은 기계고객의 언어로 정보를 번역하는 작업이다. 기계고객의 알고리즘에 최적화된 형태로 정보를 가공하는 작업이다. 기존 브랜딩 작업과 같을 리 없다. 데이터 기반 브랜딩이다.
둘째, 로열티 프로그램의 재설계다. 인간은 감정과 경험, 심리적 만족을 중시한다. 보상 프로그램도 여기에 초점을 맞춘다. 예컨대, VIP 회원 전용 라운지 이용권이나 유명 셰프와 함께하는 요리 클래스 초대권 같은 거다. 반면, 기계고객은 실질적인 혜택과 가격 경쟁력을 중시한다. 할인과 쿠폰, 즉각적인 보상이 더 큰 매력으로 작용한다. 특정 제품의 할인 코드나 구매 즉시 적용되는 리베이트 프로그램 같은 거다.
셋째, 다양한 시스템과의 원활한 상호작용이다. 기계고객의 선택을 받으려면 그들의 쇼핑 리스트에 우리 제품과 서비스가 올라가야 한다. 기계고객과의 접점 확보가 필수다. 기계고객과의 상호작용을 위한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하고 데이터 분석 역량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 API와 같은 프로그램 인터페이스를 통해 자사 제품이 여러 플랫폼과 쉽게 연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빅테크 플랫폼과의 연계는 필수다.
기계고객이 인간 고객 수를 넘어서는 건 시간문제다. 머지않은 미래, 기계고객이 시장의 주류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기계고객의 마음, 아니 기계고객의 알고리즘을 사로잡기 위한 기업 간 경쟁이 이미 치열하다. 기계고객의 구매 여정을 분석하고 이에 맞는 새로운 마케팅 전략을 수립해야 할 때다. 기계고객 시대, AI의 선택을 받을 이는 누구인가? 기계고객은 오늘도 쇼핑 중이다. 그리고 진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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