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 카메라에 ‘볼하트’ 요구까지…야구장 팬덤 문화는 왜,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스경X기획]

김하진 기자 2024. 7. 8.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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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이재현. 삼성 라이온즈 제공



최근 몇년 동안 야구계에서 달라진 팬들의 풍경들이 있다.

지난 2월초 프로야구 선수들이 일제히 다음 시즌을 위해 스프링캠프로 떠나던 날이었다.

다수의 팬들도 이날 공항을 종종 찾는다. 자신이 사인을 받고 싶은 선수에게 요청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속을 마친 선수들은 사인에 응해주거나 함께 ‘셀카’를 찍어준다.

그런데 올해 풍경은 달랐다. 여성 팬들이 선수들에게 동물의 귀 모양을 한 머리띠를 씌운다던가 아이돌 가수가 하는 포즈인 ‘볼하트’를 요청해 그 모습을 찍었다. 선수들은 쑥스러워하면서도 팬들의 요청에 응한다.

선수들을 부르는 호칭들도 달라졌다. 야구장을 찾은 여성 팬들이 선수를 부를 때 이름 끝에 ‘선수’라고 부르기보다는 이름을 부른다. 가령 삼성 좌완 이승현을 부를 때 “이승현 선수”라고 부르기보다는 “승현아”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른바 ‘대포’라고 불리는 큼지막한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여성팬들의 수도 급격히 늘어났다. 관중석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가 나올 때면 카메라 렌즈가 그 쪽으로 향한다. 이미 자신들끼리는 얼굴이 익었는지 관중석에서도 서로 인사를 하며 안부를 묻는다. 사진을 찍고 나서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가 잠시 뛰지 않는 순간에는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롯데 윤동희. 롯데 자이언츠 제공



이전에도 야구계에는 여성 팬들의 비중이 적지 않았다. 그전에는 사진을 찍거나 사인을 받는 선에서 그쳤다면 이번에는 좀 더 적극적인 모습들이 많이 보인다. 팬 문화도 많이 바꿔놓았다.

한 야구계 관계자는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이같은 문화의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했다.

전세계를 흔든 코로나19 팬데믹은 많은 것을 바꾸어놓았다. 지금은 거리두기가 완화되어 일상 생활이 완전히 회복되었지만 이 과정에서 야구판에 아이돌 팬들이 유입되었다. 아이돌 가수들은 공연이나 방송 녹화날 등 제한된 장소와 시간에서 만날 수 있는 반면 야구 선수들은 야구장에 가면 자주 접할 수 있다. 아이돌 팬들 중 일부가 야구판으로 눈을 돌리면서 팬 문화도 가져온 것이다. 선수의 이름을 “OO야”라고 부른다던가 유행하는 포즈를 취해달라는 요청은 기존 아이돌 판에서 팬들이 했던 문화였다.

이런 팬들이 많이 늘어난 팀들은 젊은 선수가 팀 전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삼성, 롯데 등이다.

삼성은 이른바 ‘굴비즈’라고 불리는 이재현, 김지찬, 김현준 등이 활약하면서 젊은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실제로 야구장을 찾는 팬들의 비율도 여성이 더 많다. 지난해 라이온즈파크를 찾는 팬들이 구매한 티켓 중 29만9663장은 여성이 예매한 것이었다. 남성은 28만5104장을 예매했다. 올시즌 전반기에도 비슷한 양상이 이어진다. 여성이 28만1276매를 구입했고 남성이 구입한 건 25만5471장이었다.

롯데도 마찬가지다. 윤동희, 나승엽, 고승민, 김민석, 손성빈 등 젊은 선수들이 팀 전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그라운드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중이다.

지난해 롯데가 고객 분석을 한 현황에 따르면 KBO리그 고객층이 40대 남성에서 20대 여성으로 바뀌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롯데 여성팬 비율은 65%로 리그 2위였다. 1위는 키움(73.2%)였다.

이들이 마냥 선수들의 외형적인 모습만 보고 쫓아다니는 건 아니다. 오프라인은 물론 온라인 상에서도 여성팬들은 심도 있게 경기 분석을 내놓는다. X(옛 트위터)에서도 실시간 의견 교류가 이어진다.

현재 한화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김경문 감독은 신생팀 NC의 사령탑으로 있던 시절 “여성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여성팬의 남자친구 뿐만이 아니라 남편, 아들 모든 가족까지 팬들로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제9구단으로 창단된 NC는 프로야구팀으로서 성적은 냈지만 팬 몰이가 항상 걱정이었다.

여성팬의 팬심을 사로잡는 마케팅을 했던 팀의 ‘원조’격으로는 두산이 있다. 여성팬들을 위한 ‘퀸스데이’를 진행했고 핑크색 유니폼을 제작하는 등 여성 팬 몰이에 나섰다.

최근에는 각 구단들이 여심을 사로잡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키움은 이화여대, 숙명여대, 성신여대, 서울여대, 배화여대 등 여대 특강을 진행해 여대생 팬들을 유티하려는 노력을 했다. 야구장에서도 해당 여대의 날을 만드는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과거 프로야구는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일부 여성팬들은 외모에만 집중해 스포츠에 입문한다는 시선을 받았지만 이제 여성이 프로야구 흥행 몰이는 물론 팬 문화까지 주도하고 있다.

롯데 김민석. 롯데 자이언츠 제공



김하진 기자 h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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