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를 버릴까, 디지털을 버릴까 [뉴스룸에서]
박현철 | 서비스총괄
바보 같은 질문입니다. 종이를 버릴 수도 디지털을 버릴 수도 없는 시대니까요. 질문을 이렇게 바꿔보겠습니다. “콘텐츠 생산자가 디지털에 대응하면서 동시에 신문도 제작하는 게 가능한가?” 불가능하진 않겠으나 쉽지 않겠죠. 자원이 한정적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콘텐츠 생산자는 크게 보면 언론사 전체겠지만, 작게 보면 사회부, 경제부, 문화부 같은 뉴스룸국(편집국)의 한 부서, 한 팀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한정된 인력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종이신문)에 적절히 배분하는 문제는 디지털이란 화두가 주어진 이래 언론사의 오랜 과제였습니다.
초기엔 당번을 정해 디지털 기사를 쓰기도 하고, 디지털 기사만 쓰는 팀이나 부서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적당히 신문도 잘 만들고 적당히 디지털 대응도 잘하면 되겠지 정도 수준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숙제’라는 걸 깨닫기 시작합니다. 조직 탓일 수도 사람 탓일 수도 있겠지만, 디지털과 종이신문의 ‘치명적’인 특성이 이 숙제의 난도를 최상급으로 올려놓았습니다.
우선 모두가 잘 아는 종이신문의 엄청난 흡입력 때문입니다. 한번 인쇄하면 되돌릴 수 없는 종이신문의 ‘마력’(누군가에겐 매력이겠죠)은 마감시간으로 기사를 빨아들입니다. 텅 빈 내일치 종이신문을 채워야 한다는 부담은 그 외 다른 모든 과제를 후순위로 미루게 하는 마력을 지녔습니다. 종이신문 만드는 이들에게,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인 디지털 기사는 채우지 못하면 큰일 나는 지면 기사보다 우선순위가 될 수 없습니다. 내일치 지면 기사를 확보하고 나면 모레치 기사를 또 준비해야 합니다. 모레치 지면을 위해, 작성이 끝난 기사의 디지털 배포를 미루는 일이 여전히 가능한 이유입니다. 오늘 내보낼 디지털 기사는 모레치 지면 기사보다 우선순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흡입력만 따지고 보면 디지털 역시 만만하지 않습니다. 종이신문이 기사를 끌어들인다면 디지털 시장은 노동력을 무한정으로 요구합니다. 종이신문에 싣는 기사는 개수가 정해져 있습니다. 마감시간이 있는 덕분에 오늘 하루의 일이 끝나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다음날 신문이 나올 때까진 준비하고 고민하고 보충할 시간도 존재합니다. 디지털은 어떤가요? 사건사고가 터져 기사 수요가 폭증할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잠잠한’ 평소에도, 아무리 많이 써도 쓰지 못했거나 쓰지 않은 기사가 존재합니다. 채워지지 않고 채울 수도 없는데, 이걸 채우려 하는 순간 다시 부족함을 느끼게 되는 구조입니다.
신문도 디지털도 적당히 대응하면 될 거라는 생각은 종이신문과 디지털의 이런 특성들 때문에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편집국 안에서 신문과 디지털을 분리하기 시작합니다. 구체적으론 부서나 팀이 짊어지는 부담을 2종류에서 1종류로 줄이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종이신문 제작을 전담하는 조직을 만들어 취재 부서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몇년 전 한겨레도 비슷한 시도를 했었습니다. 기사를 쓰는 기자와 부서는 일단 디지털에 기사를 내보냅니다. 그리고 ‘신문 에디터’를 만들어서 그 에디터들이 각 부서가 일과 중에 디지털로 배포한 기사들로 신문을 제작하게 한 것입니다. 시스템의 작은 변화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기대가 컸었는지 ‘신문 에디터’는 운영상 여러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로 없던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게 약 2년 전입니다. 다시 ‘신문도 잘 만들고 디지털 대응도 잘해보자’며 달려왔는데, “이전보다 구성원도 많고 기사도 많이 쓰는데 사람은 부족하고 다루지 못하는 기사는 더 늘어난 것 같다”고 느끼는 건 저 혼자만은 아닌 듯합니다.
디지털 시대에 뉴스를 생산하는 기업엔 다음 세가지 과제가 주어집니다. 기사를 ①빨리 쓰거나 ②많이 쓰거나 ③잘 쓰거나. ①과 ②는 오늘 당장 측정이 가능합니다. ③은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쉽지 않습니다.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자고 하면 “그럼 ③(기사의 품질)은 누가 책임질 거냐?”는 이유를 대며 거부하기도 합니다. 품질에 대한 기준이 다를 뿐, 디지털 기사에도 ③이 중요한데 말이죠. 앞서 얘기했듯 ①과 ②는 디지털 기사에서만 가능한데, 또 잘하려고 하면 끝이 없습니다. ①~③에 어떤 목표와 전략으로 임해야 할지 다시 답을 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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