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지급보장’ 가로막는 관료들…국회는 개의치 말고 입법화해야 [왜냐면]
김정목 | 한국노총 정책부장
여기 전 국민의 노후를 보호하기 위한 연금 제도가 있다. 이 제도의 짧은 역사 대부분은 급여 삭감 일변도의 개혁이었다. 보수 경제지의 왜곡 보도가 더해지며 이 제도는 국민의 신뢰를 충분히 받지 못했다. 그래서 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 국가 지급보장을 법률로 규정하자는 취지의 개혁안이 매번 등장한다. 하지만 관료들이 이를 주도적으로 가로막고 있다.
바로 국민연금에 대한 이야기이다. 국민연금에 대한 국가지급보장을 법으로 명문화하자는 내용은 그동안 연금개혁에 항상 언급되는 중요한 사항 중 하나로 다루어졌다. ‘기금 고갈론’이라는 조작된 공포에서 시민을 보호하고자 그동안 노동시민사회 진영에서 입법화를 강조해왔던 부분이다. 내기만 하고 받지는 못할 것이라는 근원적 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중요한 개혁 지점은 없으며, 지급보장 명문화는 이어질 연금개혁의 신뢰 기반이 될 것이라 판단하고 주장해 온 것이다. 십수년간 국회에서도 관련된 법안 발의가 계속되었다.
하지만 주요 연금개혁 국면마다 지급보장 명문화는 무산되었다. 무산을 주도한 주범 중 하나는 바로 정부 관료다. 지난 제4차, 5차 재정계산의 연금개혁 과정에서 보건복지부, 기획재정부는 국가 지급보장을 반대해왔다.
복지부는 국가 지급보장을 섣불리 하게 되면 연금개혁을 더 이상 하지 않을 정치적 위험이 존재한다며, 모든 것을 패키지로 묶어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는 시민을, 시민의 정치를 무시하는 태도이다. 연금개혁은 계속적으로 관리하고 연속적으로 개혁해야 할 국가적 사안이다. 국가지급이 보장되었으니 국민연금을 개혁하지 말자고 말하는 시민은 어디에도 없다.
연금뿐만 아니라 어떤 제도이든 문제가 생기면 더 나은 대안을 마련하여 개혁하는 것이 정부가,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런 정치를 기대하기 위해 시민들이 선거를 반복하며 입법권력과 행정권력을 구성하는 지금의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묶어 한번에 완전무결한 개혁을 하자는 주장은 오히려 지금까지 연금개혁을 본질적으로 방해하는 기제로 작동되어왔다. 이제는 자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기재부 등 경제 관료집단은 미적립 부채가 늘어나 국가 신인도가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이미 수년 전부터 전문가들 사이에서 틀린 사실로 판명된 주장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미적립 부채에 대한 개념은 국내외에서 전문가 간에 합의되어 인정된 개념으로 활용된 바가 없다. 경제 관료들의 이러한 시각은 결국 그들 스스로 학습을 게을리하고, 시장 이데올로기에 점령된 사상 속에 정책 행위를 하고 있다고 실토하는 것과 다름없다.
관료들이 이처럼 국민연금에 대한 국가 지급보장을 가로막는 행위는 그야말로 국민의 ‘노후불안’이라는 불길을 끄려 노력하지는 못할망정, 장작을 더 얹는 것과 다름없다. 지난 21대 국회 연금개혁특위의 공론화 과정에 참여한 500여명의 시민이 국민연금 국가 지급보장에 대해 92.1%로 찬성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사실상 국민에 대한 관료의 반란이다. 국민연금에 대한 정치적, 사회적 신뢰 제고가 토대가 되어 계속적 연금개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애써 무시하는 이들의 행위는 이번 기회에 반드시 시정해야 한다.
결국 22대 국회가 결자해지해야 한다.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개혁조치 및 입법화에 소극적으로 임하는 것은, 공론화 과정에서 시민들이 내린 결론을 짓밟는 것이라는 점을 각 정당과 정치인들이 기억해야 할 것이다. 직접 선출되지 않은 관료들의 행정이 법률 개정에 영향을 미쳐 궁극적으로는 입법권을 온전히 행사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연금은 국가가 운영하는 제도로 가입을 사회적으로 관리하는 사회보험이다. 이 제도의 지속가능성은 궁극적으로 국가의 책임인 것이다. 시급한 제도개혁을 가로막는 특수한 국민신뢰의 문제가 있다면 이것부터 해결해야 한다. 22대 국회는 연내에 경색 국면을 해결하고, 국민연금 국가 지급보장부터 우선적으로 입법 처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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