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행정처분 철회' 결단에 전공의 '심드렁'·환자들 "환영"
'엄정대응' 원칙 뒤집은 고육지책…'면죄부', '의사불패' 논란 불가피
전공의들 "방향 긍정적이나, 복귀 영향 적을 듯"…환자단체들은 "복귀해달라"
(서울=연합뉴스) 김병규 성서호 김잔디 오진송 권지현 기자 = 정부가 복귀 전공의뿐 아니라 복귀하지 않는 전공의들에 대해서도 면허정지 행정명령을 철회하는 결정을 내렸다.
의료공백이 다섯 달 가까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전공의들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을 무릅쓰고 결단한 것이지만, 전공의들을 비롯한 의료계는 복귀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며 심드렁한 반응을 보인다.
반면 환자단체들은 정부의 조치에 환영을 표하며 전공의들의 복귀와 의료공백 해소로 이어질까 기대하고 있다.
미복귀 전공의도 행정처분 안하기로…"의료공백 최소화 위해 결단"
정부는 8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다섯 달째 이어지는 의료 공백 상황을 고려해 전체 전공의를 대상으로 행정처분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동안 스스로 원칙으로 삼은 사직 전공의에 대한 '기계적 처분' 방침을 뒤집는 것으로, 정부는 행정처분 '중단'이나 '취소'가 아닌 '철회'라는 점을 강조했다.
행정절차법에 따르면 취소는 위법 또는 부당한 처분에 대해 내려진다. 정부는 지난달 4일 복귀 전공의에 대해 행정처분을 '중단'하겠다고 해 다시 위법행위를 하면 행정처분 절차가 시작될 수 있음울 시사했는데, 이날은 향후 처분 가능성이 없는 '철회'라는 표현을 썼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전공의들이 향후 행정처분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거 같다"며 "모든 전공의에 대해 향후에도 행정처분을 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명확히 했다.
전공의들의 집단 이탈을 위법 행위로 보고 엄정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뒤집은 것으로, 조 장관은 "필수의료를 책임질 젊은 의사라는 점을 감안해 정부가 비판을 각오하고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탈자와 미이탈자 사이의) 형평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지난달 행정명령 철회에도 불구하고 복귀 또는 사직하는 전공의가 많지 않아서 의료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이날 발표한 조치는 전공의들에게 '면죄부'를 주면서, 의사들은 불법 집단행동을 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의사불패' 신화를 재현했다는 점에서 비판이 불가피해 보인다.
정부는 그동안 의대 증원 등 의료개혁이 의료계의 반발로 좌절된 사례를 들면서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 "악습을 끊겠다"는 등의 표현으로 엄정대응을 강조해왔다.
정부는 이와 함께 각 수련병원에 9월 전공의 모집을 앞두고 이달 15일까지 전공의 사직 처리를 완료해 결원을 확정해달라고 요청했다.
특히 사직 후 9월 전공의 모집에 응시하면 특례를 적용받도록 하겠다고도 밝혔다. 이에 따라 사직 후 9월 전공의 모집에 응시하는 경우 '1년 내 동일과목·연차로 응시'를 제한하는 지침을 예외적으로 적용하지 않을 계획이다.
오는 22일부터는 9월 하반기 전공의 모집 일정이 시작된다.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로 불리는 필수의료 과목에만 한정하던 예년과는 달리, 결원이 생긴 모든 과목을 대상으로 모집이 이뤄질 예정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이달 5일 현재 전체 211개 수련병원 레지던트 사직률은 0.6%(1만506명 중 63명)에 그쳤다.
전공의 "사직서나 수리해라"…환자단체 "전공의들 협상장 나와라"
정부가 비판을 감수하고 모든 전공의의 행정처분을 철회하는 유화책을 내놨지만, 정작 전공의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전공의들은 당초 정부가 정당하지 않은 명령을 내렸으므로 행정처분이 이뤄지지 않는 게 '당연한' 수순이라며 복귀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봤다. 다만 행정처분 중단이 아닌 '철회'한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레지던트 3년차로 수련했던 전공의 A씨는 연합뉴스에 "(행정처분 철회 등은) 대화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생각된다"며 "충분함과는 별개로 긍정적인 방향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전공의 복귀를 위한 최소한의 행정적인 기반을 닦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신호라고 해석되나, 여전히 대화 시작을 위한 필요조건일 뿐이지 화해를 위한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며 "의사를 악마화하는 과정 등에 대한 정부의 사과 없이는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의 '빅5' 대형병원에서 수련하다 사직서를 제출한 B씨는 정부 조치에 대해 "전공의들 반응은 대부분 심드렁한 편"이라고 분위기를 전하며 "애초에 정부가 정당하지 않은 명령을 했으니 그걸 안 한다고 한들 우리한테 크게 와닿는 건 없다. 우리가 바라는 건 정부의 사과"라고 했다.
서울의 한 수련병원 관계자 E씨는 "정부가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보여준 만큼 전공의들이 빨리 돌아오길 바라지만, 현재로서는 바람일 뿐"이라며 "현장에서는 50% 돌아오면 다행이라는 분위기인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예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의대 교수들 사이에서도 정부 결정이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비판적인 시각이 많았다.
서울 빅5 병원 C 교수는 "복귀 여부와 무관하게 전공의에게 행정처분을 하지 않겠다는 복지부 입장은 진일보한 것"이라면서도 "무리한 의대 증원과 전문가들과 상의 없이 복지부 마음대로 내놓은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에 대한 근본적 대책이 없기 때문에 전공의들은 복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환자단체들은 환영의 입장을 보이며 "전공의들이 조속히 협상 테이블에 앉아 정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입장문을 내고 "정부가 전공의 복귀 유인 조치를 발표한 것은 고육지책"이라며 "정부의 전공의 처우에 관한 제안을 적극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 단체의 김성주 대표는 "현실적으로 내년도 1천500명 증원 백지화는 불가능한 얘기이기 때문에 전공의들이 일단은 협상 테이블에 앉아서 이번 (의대) 모집 요강을 제외한 나머지를 갖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인영 한국췌장암환우회 회장도 "이 정도면 정부가 해줄 것은 다 해준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며 "환자들은 정말 한계에다 참담한 상황이라, 이번 조치가 받아들여져서 전공의들이 돌아온다면 우리는 환영"이라고 했다.
한편으로는 행정처분 면제 결정이 '면죄부'를 줌으로써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을 정당화하고 또 다른 불씨를 남겨 놓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한 환자단체 관계자는 "환자들은 5개월 동안이나 치료를 못 받았고 병원은 매일 적자를 보고 있다"며 "적어도 이번 사태의 주동자에게는 '면죄부'를 주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주동자들을 처분하지 않으면 형평성 문제가 발생하고, 다음 정부 때 또 집단행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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