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니 국장 안 하지"…신성통상 주주들, 오너 일가와 지분싸움 왜?

안하늘 2024. 7. 8.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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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업 이후 회사 의무 커지자 자진상폐
주주들 "공개매수가 너무 헐값" 공동대응
상폐 조건 95% 막으려 5% 지분 확보 나서
"공개매수 가격, 외부 평가받아야" 지적
신성통상의 의류 브랜드 '탑텐' 매장. 신성통상 제공

40대 A씨는 2020년 한일 무역분쟁 당시 '반일 테마주'로 주목을 받은 신성통상에 투자했다. 실적이 건실해 꼭 반일 테마가 아니더라도 주가가 꾸준히 오를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매출과 영업이익은 지속 성장했지만 주가는 2021년 고점인 4,480원을 찍고 지속 하향하더니 결국 1,800원까지 빠졌다. '물타기'를 하면서 평균단가를 3,500원까지 낮췄음에도 35% 이상 손해를 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회사는 최근 자진 상장폐지 하겠다며 주당 2,300원에 공개매수를 선언했다. A씨는 "내실 있는 회사 주가는 언젠가 오를 거라 믿으며 기다렸다가 뒤통수를 맞았다"며 "이래서 국내 주식에 투자하면 바보라는 말이 있나보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 추진 이후 공시 의무 확대 등 부담이 커지자 신성통상처럼 자진 상장폐지를 하겠다는 기업이 늘고 있다. 자진 상폐 과정에서 공개매수가격을 둘러싸고 대주주와 개인 투자자 사이 갈등도 확대되고 있다.

8일 금융감독원 정보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쌍용씨앤이(C&E), 락앤락, 커넥트웨이브 등 올 상반기 공개매수를 통한 자진상폐에 나선 기업만 7개다. 지난해 자진상폐를 한 기업은 4개, 2022년에는 3개에 그쳤다.


"당장 폐업하고 자산 나눠도 3100원…공개매수가 너무 낮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신성통상의 1·2대 주주인 가나안(지분율 41.8%)과 에이션패션(17.66%)은 상장폐지를 목적으로 지난달 21일부터 이달 22일까지 공개매수를 추진 중이다. 이들이 제시한 공개매수가는 주당 2,300원이다. 가나안과 에이션패션은 사실상 염태순 신성통상 회장의 가족 기업이다. 오너 일가가 보유한 신성통상 지분은 총 77.98%에 달한다. 자진 상폐를 하기 위해선 최대주주가 지분 95%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

공개매수 소식이 발표되자 신성통상 개인 주주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대주주가 헐값에 주식을 사간다는 이유다. 3월 기준 신성통상의 주당 순자산 가치(BPS)는 3,136원으로 공개매수가를 크게 웃돈다. BPS는 기업이 보유한 순자산을 총발행주식수로 나눈 수치로, 당장 기업의 활동을 중단하고 남은 재산을 모든 주주에게 나눠줄 경우 한 주당 얼마씩 돌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한 개인투자자는 "2020년 대비 지난해 매출은 50%, 영업이익은 250%가 올랐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주가는 3년간 우하향했다"며 "공개매수를 계획하고 회사가 의도적으로 주가 하락을 방치한 것이란 의심까지 하고 있다"고 말했다. 230명 이상 모인 신성통장 개인투자자 단체카톡방에서는 '오히려 주식을 사들여야 한다'며 대주주와 맞서고 있다. 이들은 4%가량의 주식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다. 신성통상뿐 아니라 커넥트웨이브 소액주주 역시 MBK파트너스의 상장폐지 시도에 대항하기 위해 5% 이상의 지분을 확보하고 법무법인을 선임했다.


배당 확대 요구하자 자진 상폐로 맞대응?

그래픽=강준구 기자

신성통상을 비롯한 기업들이 자진 상폐에 나선 배경에 밸류업 프로그램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회사는 2012년 이후 10년간 무배당 기조를 이어가다 투자자들의 거센 반발에 지난해 주당 50원(72억 원 규모)의 배당금을 지급했는데,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에 따른 배당 확대에 대주주가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신성통상 측은 "상장사에 대한 제약이 심하고 공시할 것도 늘어나면서 차라리 상장폐지가 낫겠다는 판단을 했다"고 밝혔다.

앞으로 자진 상폐 기업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공개매수 가격을 합리적으로 정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개매수 가격 산정 방법은 자본시장법 등에 명백히 규정돼 있지 않아 기업들은 이사회를 열어 최근 1~3개월 주가에 일정 수준을 할증하는 식으로 결정하고 있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공개매수 가격을 정할 때 현재의 주가만 보고 판단할 게 아니라 독립된 제3의 기관이 미래의 현금 흐름을 파악해 적정가격을 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대주주 이익을 위해 이사회가 자진 상폐를 결정하는 것인데, 개인 주주의 이익까지 고려하도록 상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안하늘 기자 ahn70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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