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삼성전자 첫 파업

오창민 기자 2024. 7. 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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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노조 경영’은 삼성의 흑역사였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노조를 설립할 수 없다”던 그룹 창업자 이병철의 유훈을 지키기 위해 삼성은 무리수와 꼼수를 쓰고, 불법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노조 설립 기미가 보이면 주동자를 감시하고 회유·협박했다. 어용·유령 노조를 만들어 먼저 설립 신고를 하는 수법도 불사했다. 공무원 매수는 기본이었다. 노조 때문에 발생하는 비용보다 노조 설립을 막기 위한 비용이 더 많이 든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은 2020년 5월6일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재판을 받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준법 경영’ 선언을 하면서 막을 내렸다. 이 회장은 “노사관계 법령을 철저히 준수하고 노동 3권을 확실히 보장하겠다”고 했다.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이 8일 파업에 돌입했다. 1969년 창사 이래 처음이다. 장맛비가 쏟아지는 날씨에도 4000여명의 노동자가 화성사업장 정문 주차타워 앞 5차선 도로를 가득 메웠다. 지난 1월부터 사측과 교섭을 벌여온 전삼노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 중지 결정, 조합원 찬반투표 등을 거쳐 쟁의권을 확보했다. 지난 5월29일 파업을 선언하고, 지난달 7일에는 첫 연가 투쟁을 벌였다. 전삼노는 조합원에 대한 높은 임금 인상률 적용, 유급휴가 약속 이행, 초과이익성과급(OPI) 기준 개선, 파업으로 발생하는 임금 손실에 대한 보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삼성 노동자들의 파업이 다소 생경하지만, 파업 때마다 고장난 녹음기처럼 반복돼온 비판은 이번에도 등장했다. 전 세계가 반도체 전쟁 중인데 전삼노가 한국 경제를 ‘볼모’로 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비판이다. 그러나 국가 경제, 시민 불편 운운하는 볼모 타령은 지겹다. 파업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다. 경제적 손실과 불편은 당연한 전제다. 가난하고 어려운 노동자가 많은데 고액 연봉자가 파업해도 되느냐는 상투적인 훈계도 나온다. 노동자들을 이간질해서 파업을 무력화하려는 의도다. 중요한 것은 노사 간 신뢰다. 삼성전자보다 작고 여유가 없는 회사들도 노동자들과 임금 협상을 잘만 해왔다. 삼성전자의 첫 파업이 원만하게 해결되기 바란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8일 경기도 화성시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정문 앞에서 열린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오창민 논설위원 risk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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