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사 충실의무 확대, 밸류다운 부를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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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업들이 비상 경영에 나서고 있다.
글로벌 경영 환경 변화에 시시각각 대응해야 하는 기업으로서는 그만큼 경쟁력이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는 경영 판단의 지연과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 증가로 당초 기대했던 기업 밸류업이 아니라 기업 밸류다운, 그리고 주식가치의 동반 하락으로 연결될 개연성이 더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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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업들이 비상 경영에 나서고 있다. 총성 없는 글로벌 경쟁에서 백병전을 벌인다는 각오로 고삐를 다잡아 쥐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기업인들이 경영에만 매진해야 하는 시점이다.
그러나 최근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회사뿐만 아니라 주주까지 포함시키자는 상법 개정 논의로 인해 기업들의 고민이 더해지는 걱정스러운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국내 기업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행위가 아닌가 하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상법 개정 논의의 출발점은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기업가치를 밸류업(value-up)하고,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문제를 해소하자는 것이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은 정말 한국 증시 저평가 문제를 해소할 요술 방망이일까? 지난 수십 년간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순환출자 금지, 일감 몰아주기 금지 등 대주주에 대한 견제 장치를 수도 없이 도입해온 것을 보아왔다. 상법 개정안에 찬성하는 측의 주장대로라면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는 진즉에 해소됐어야 함이 마땅하다.
상법 개정 논의에 앞서 그 정책의 효과성 검증이 반드시 선행될 필요가 있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확대될 경우 어떠한 현상이 초래될까? 오히려 기업가치를 밸류다운(value-down)시켜 주가를 떨어뜨리지는 않을까?
정책이 시행될 경우 기업 입장에서 가장 명확하게 예상되는 부작용은 신속한 경영 판단의 어려움과 국내외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 증가다. 일반 주주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포함될 경우 이사는 다양한 주주의 이해관계를 고려할 수밖에 없고 인수·합병(M&A), 시설투자 등 중요한 경영 의사결정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 글로벌 경영 환경 변화에 시시각각 대응해야 하는 기업으로서는 그만큼 경쟁력이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데이터 리서치 기관 딜리전트(Diligent)에 따르면 작년에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에 공격을 당한 기업 수는 분석 대상 국가 23개국 중 한국이 미국과 일본에 이은 글로벌 3위다. 공격을 받은 기업 수는 2019년 8개사에 불과했으나, 2023년 77개사로 9.6배 급증했다. 상법 개정은 이들 행동주의 펀드에 아주 달콤하고 고마운 선물이 될 것이다. 통상 행동주의 펀드들은 시세 차익을 목적으로 하므로 이들이 손 털고 나올 때 일반 주주들은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결국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는 경영 판단의 지연과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 증가로 당초 기대했던 기업 밸류업이 아니라 기업 밸류다운, 그리고 주식가치의 동반 하락으로 연결될 개연성이 더 높다.
지금 기업들은 '나아가지 못하면 죽는다'는 일념으로 경제 살리기에 매진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기업부채가 크게 늘어난 데다 고환율·고금리로 이자 부담은 급증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확산, 불안한 환율, 반도체 경쟁 심화, 지정학적 리스크 등 곳곳이 지뢰밭이다. 기업들의 경기전망(BSI)이 2022년 4월 이후 28개월 동안 어두운 이유다.
경제정책은 일단 시행이 되고 나면 가계나 기업 등 다수의 경제주체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므로 실증적·과학적으로 그 효과를 입증하기 어려운 '탁상공론'식 정책은 논의 자체를 지양해야 한다. 논의가 확산되면 담론이 되고 담론은 결국 바람직하지 못한 정책의 수립과 실행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창범 한국경제인협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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