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공백 장기화에 고육지책···"불이익 없이 돌아올 마지막 기회"

박효정 기자 2024. 7. 8.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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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복귀 마지막 카드 꺼낸 정부
면죄부 논란 불구 복귀 유도
"기계적 법 집행" 원칙 뒤집어
정작 전공의들은 "더 버티자"
상급병원 전문의 중심 체제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을 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
[서울경제]

정부가 의료 현장을 떠나 약 5개월간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을 철회하는 등 전공의 복귀를 위한 마지막 카드를 꺼냈다. 복귀한 전공의와의 형평성 문제 등을 들어 결정을 미뤄왔으나 ‘면죄부’ 논란에도 불구하고 9월 전공의 모집 공고를 앞두고 최종 결정을 내렸다. 의료 공백을 막고 올 9월 전공의 모집 때 가능한 한 많은 전공의의 복귀를 유도하기 위해 불가피한 결단을 내렸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이번 대책에도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으면 현재 의료 시스템으로 의료개혁을 지속해 나간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정부는 상급병원을 전문의 중심 병원 체제로 개편하고 있다”며 “9월이 전공의들이 불이익을 입지 않고 의료 현장에 복귀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8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모든 전공의에 대해 앞으로도 행정처분을 하지 않을 계획”이라며 “다만 행정명령은 법에 따라 정당하게 이뤄진 조치인 만큼 취소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의료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들에 대한 면죄부는 정부가 이번 의사 집단행동 사태에서 줄곧 강조해온 ‘엄정 대응’ 원칙을 뒤집는 조치다. 정부는 그동안 의대 정원 증원 등 의료 개혁이 의료계 반발로 좌절된 사례를 들어 “(과거처럼) 사후 구제, 선처 없이 굉장히 기계적으로 법을 집행할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정부는 사태 초기 이탈 전공의들에게 ‘3개월 의사면허 정지’를 골자로 하는 행정처분 사전통지서를 발송하기도 했다.

현장에 남아 있던 전공의들과 이탈 후 복귀한 전공의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조 장관은 “지난달 행정명령 철회에도 불구하고 복귀 또는 사직하는 전공의가 많지 않아서 의료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결단을 내린 것”이라며 “전공의들이 주 80시간에 이르는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고생을 한 점, 아직 수련생 신분이라는 점, 정부가 구축하려는 필수의료를 책임질 젊은 의사라는 점 등을 고려해 정부가 비판을 각오하고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면죄부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부 입장에서는 의료 공백 장기화를 막기 위해 결단이 불가피했다는 의미다. 특히 의정 간 양보 없는 대치가 이어지며 환자들의 고통이 극심해졌다.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한국환자단체연합회·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등이 4일 개최한 ‘의사 집단휴진 철회 및 재발 방지법 제정 환자촉구대회’에는 주최 측 추산 400여 명이 모여 어려움을 호소했다. 전공의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메운 대학병원 교수들이 체력적 한계에 부딪히며 진료 축소에 나서기도 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는 의료기관 파행운영의 피해가 고스란히 간호사 등 타 직역에게 전가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부의 결단에 의료계의 평가는 엇갈린다. 대한내과학회 수련이사를 맡고 있는 김대중 아주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정부가 미복귀 전공의를 처벌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것 자체는 복귀하건, 사직을 하건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긍정 평가했다. 올 9월 현장에 복귀하는 전공의가 많지는 않겠지만 내년 3월 복귀를 고민하는 전공의들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조치라는 의견이다. 그는 이어 “수련 환경 개선과 전문의 중심 병원 전환 등 정부가 약속한 의료 개혁을 이루려면 확실한 재원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전공의들은 심드렁한 반응이다. 애초 정부가 정당하지 않은 명령을 내린 만큼 행정처분이 이뤄지지 않는 건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내 수련병원 현장에서는 전공의들이 50%라도 돌아오면 다행이라는 말도 나온다. 류옥하다 전 대전성모병원 인턴은 “(의대) 증원에 대한 과학적 재검토를 하지 않는 이상 사직한 전공의들이 돌아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일단 정부에 대한 신뢰가 너무 낮고 오히려 더 버텨보자는 얘기도 나올 정도”라고 전했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정부가 이번에 전공의들을 위해 사실상 ‘마지막 카드’를 꺼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더라도 전문의 비중을 늘리고 진료지원(PA) 간호사를 확대해 ‘전문의 중심 병원’을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수차례 밝혔기 때문이다. 조 장관은 “전공의 분들의 과중한 근로에 의존하지 않고도 ‘지속 가능한 진료 체계’를 마련할 것”이라며 “병원들이 각 기능에 맞게 구조를 바꾸면서도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관련 수가와 제도적 지원책을 마련해 시행하고 하반기 중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시범 사업을 시행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에도 속도를 내기로 했다. 전공의 근무시간을 줄이는 전공의법은 2026년 시행될 예정이지만 36시간의 연속 근무시간 상한을 24~30시간으로 줄이는 시범 사업으로 근무시간을 단계적으로 단축한다. 전공의 지도를 담당하는 ‘교육 담당 지도 전문의’ 등 교수 요원을 지정·확대하고 전공의가 상급종합병원뿐 아니라 공공·1차의료, 의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도록 ‘네트워크 수련 체계’도 도입한다. 연내 전공의 수련 종합 계획을 세우고 교육 인프라 확충 등에 대한 국가 지원도 강화하기로 했다.

박효정 기자 jpark@sedaily.com안경진 의료전문기자 realglass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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