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이 된 정은지, 이건 저주일까 기회일까('낮과 밤이 다른 그녀')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4. 7. 8.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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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과 밤이 다른 그녀’에 숨겨진 실종자들과 그들을 찾는 사람들

[엔터미디어=정덕현] 사실 이 설정은 아슬아슬한 면이 있다. 20대 취준생인 이미진(정은지)이 낮만 되면 50대 임순(이정은)으로 변신(?)하는 판타지 설정이 그렇다. 그건 자칫 외모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담기기 쉽고(그것도 여성), 나아가 나이에 대한 차별적 시선 또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밤이 되면 젊은 이미진으로 돌아가고 아침이 되면 나이 든 임순이 되는 상황을 양분해, 젊은 이미진은 좋고 나이든 임순은 별로라는 식의 시선이 들어가면 그건 보기 불편한 판타지가 되어 버린다.

하지만 JTBC 토일드라마 <낮과 밤이 다른 그녀>는 이미진 입장에서는 하루 아침에 50대 노년이 된 그 상황을 '저주'로 받아들이지만, 드라마는 그렇다고 임순으로 대변되는 노년의 삶을 부정적으로만 그리지는 않는다. 서한지청에 시니어 인턴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저마다의 개성이 뚜렷하다. 서말태(최무인)는 정년퇴직한 경찰로 모든 일에 여전히 그 경험을 끌어다 남다른 추리력을 발휘하고, 나옥희(배해선)는 백철규(정재성) 전직 병원장과의 로맨스를 꿈꾼다. 금광석(김재록)은 매사에 투덜대기는 하지만 어딘가 숨겨진 사연이 있는 인물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나이 먹는 것을 그저 '저주'로 그리지 않는 건, 이미진의 부모들인 임청(정영주)과 이학찬(정석용)에 대한 따뜻한 시선에서 느껴진다. 임청은 뭐든 퍼주는 걸 좋아하고 자식 잘되길 바라는 엄마로 여장부 같은 인물이고, 이학찬은 깊은 속을 잘 드러내지 않은 채 남모르게 아내와 딸을 챙기기도 하는 인물이다. 두 사람의 따뜻한 모습은 이미진으로 대변되는 취준생 청춘들에게 넉넉한 비빌 언덕 같은 든든함을 준다. 심지어 이미진의 입장에서는 50대의 몸을 공유하게 된 저주받은 상황일 지라도.

물론 간간이 주변 이야기로 펼쳐지는 사건들 속에서 외모를 코미디로 활용하려는 몇몇 장면들이 눈에 띠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건 의도했다기보다는 코미디의 클리셰를 깊게 생각하지 않은 채 활용하면서 생겨난 옥의 티로 보인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건 근본적으로 낮과 밤에 따라 변신하는 판타지를 가져온 이 작품의 의도가 그걸 통해 만들어내는 코미디만큼 진짜 다른 목적이 있다고 느껴져서다.

하필 이미진이 임순이라는 실종된 이모의 이름을 쓰고 또 누군가 그를 알아보고 똑같이 생겼다고 말하는 대목이 그렇다. <낮과 밤이 다른 그녀>에서 난데없이 한 고양이의 등장과 함께 이미진이 임순으로 변신하게 되는 건, 그저 웃기기 위한 설정이 아니라 갑자기 사라진 자들에 대한 남은 자들의 그리움 같은 간절한 마음이 숨겨져 있다. 그리고 이건 어쩌면 이 작품이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를 굳이 가져와 풀어내려는 진짜 메시지라고 보인다.

알고 보면 여기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이 사라졌거나 죽은 이들에 대한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계지웅(최진혁)은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을 지금껏 수사하는 중이고, 이미진의 가족은 사라진 임순을 죽지 않고 어딘가에서 살고 있다고 믿으며 살아가고 있다. 서말태도 자신이 경찰로 있던 시절 목격자 진술을 받으러 갔다가 변을 당한 계지웅의 엄마를 기억하고 있고, 시니어 인턴으로 뽑혔지만 갑자기 연락이 두절된 고나흔(최범호)를 찾기 위해 딸은 서한지청 앞에서 아버지를 찾아달라고 호소한다.

결국 이미진이 임순이 된 건, 갑자기 생겨난 저주가 아니라 사라진 자들을 역시 사라졌던 임순의 몸을 빌어서라도 그 진실을 파헤치겠다는 염원이 담긴 판타지 설정이다. 물론 여기에는 엄마의 사건을 수사하는 계지웅의 간절한 마음도 겹쳐진다. 변신 모티브를 활용한 로맨틱 코미디의 달달하고 웃기는 서사 속에 범죄 스릴러라는 이질적인 요소를 더해 넣은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물론 외모를 활용한 코미디의 클리셰들이 아슬아슬한 불편한 지점들을 만들어내기는 하지만, 20대 취준생과 50대 시니어 인턴을 오가는 판타지를 통해 세대 소통의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무엇보다 사라진 자들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이들의 숨겨진 상처가 주는 무게감과 메시지가 계속 드라마를 보게 만든다. 과연 이미진은 이 갑작스런 변신이 그저 '저주'가 아니라 무언가를 새롭게 느끼고 알 수 있게 되는 '기회'로 만들 수 있을까. 드라마가 판타지와 코미디 뒤로 숨겨놓은 서사가 못내 궁금하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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