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들이여, 야구를 보라···1000만관중 노리는 프로야구의 소년시대[스경x기획]
1994년 프로야구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오빠부대’가 등장했다. 그 시절 대학스포츠를 중심으로 인기 절정을 누리던 농구, 배구에서나 볼 수 있던 소녀팬들이 야구장에 급증했다.
LG 신인 트리오가 데뷔했던 시즌이다. 각자 다른 개성의 외모에 야구 실력까지 겸해 당장 주전으로 뛰었던 신인 류지현-김재현-서용빈이 데뷔하면서 ‘팬덤’의 규모가 달라졌다. ‘아저씨’들의 주고객이던 야구장에 교복 입은 여학생부터 여대생들까지 나타났다. 그 전년도에 처음으로 400만 관중 시대를 열었던 프로야구는 1995년 500만 관중 시대로 돌입했다.
프로스포츠는 스타와 함께 성장한다. 종목 자체에 흥미 없던 ‘초보 팬’을 흡수하는 데 있어 가장 빠른 통로는 역시 스타의 발견이다. 프로야구에 오빠부대가 등장한 지 30년 만에, 다시 소녀들이 야구장으로 모여들고 있다. 젊은 스타들이 대거 등장한 KBO리그는 1000만관중 시대까지 넘본다.
KBO리그는 전반기에 418경기를 치른 동안 605만7323명의 관중을 모았다. 사상 최초로 전반기에 600만 관중을 돌파했다. 이미 116경기가 매진돼 2015년(68경기)의 역대 한 시즌 최다 매진 기록을 완전히 넘어섰다. 누구 하나 가을야구를 포기 못하겠다는 역대급 순위 경쟁 시즌이기도 하지만, 현장에서는 젊은 스타들의 등장으로 여성 팬들이 대거 증가된 것을 매우 큰 동기로 보고 있다.
잠실구장 두 팀을 제외하면 전반기에 가장 많은 관중을 동원한 구단은 KIA(69만2744명)와 삼성(69만2048명)이다. KIA는 현재 리그 판도를 뒤흔드는 김도영의 ‘슈퍼파워’를, 삼성은 이재현, 김영웅 등 새로 등장한 훈남 타자들의 파워가 호재다.
김도영은 젊은 여성 팬들은 물론 중년층과 노년층 남성들에게까지 ‘우리 도영이’로 불리며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 ‘제2의 이종범’이라 불리는 MZ세대 김도영의 똘똘한 모습이 아들 같고 손주 같아 해태 시절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평가다.
삼성은 여성팬들을 본격적으로 유입한 출발점으로 평가받는다. 한 구단 마케팅 관계자는 “작년부터 라이온즈파크에 가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을 정도로 젊은 여성팬들이 정말 많았다. 여성 팬층 유입은 대구가 최고인 듯하다”고 했다. 이재현, 김영웅, 김현준, 김지찬 등 늘 붙어다녀 ‘삼성 굴비즈’라 불리는 2000년대생 또래 타자들이 중심에 있다. 구자욱과 원태인이 가열시킨 삼성의 인기몰이에 이들이 불을 붙였다.
선수들의 인기 척도 상징이 유니폼 판매량이다. 10개 구단 모두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에서 20대 초반의 신흥 스타들에게로 그 판매 1순위가 넘어가고 있다.
이미 지난해부터 구단별로 김도영, 이재현, 김주원(NC), 문동주(한화) 등 20대 초반 막내들이 전면에 나서 있다. KIA의 유니폼 판매는 현재 김도영이 압도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김도영-나성범-양현종 순인데 KIA는 “김도영의 점유율이 지난해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고 전했다.
<10개 구단 유니폼 마킹 1위 선수>
두산의 경우 지난해 포수 양의지가 4년 만에 돌아와 인기를 싹쓸이 한 뒤 올해는 고졸신인 김택연이 유니폼을 다 팔아치우고 있다. 두산은 전년도 동기간 대비 판매량이 154% 증가했다고 밝혔다. 톱스타 이대호가 은퇴한 뒤 롯데는 ‘아이들’이 인기를 독차지 한다. 지난해에는 고졸 신인 외야수 김민석이, 올해는 3년차 외야수 윤동희의 유니폼이 가장 많이 팔렸다. 올해 흥행 돌풍의 중심 한화도 올해는 12년 만에 복귀한 류현진의 이름이 가장 많이 등장했지만 지난해는 문동주가 1위였다. 지난해 이재현이 1위였던 삼성은 올해는 구자욱의 유니폼이 가장 많이 팔렸다. 올해 전반기 2위는 김영웅인데 삼성은 “6월로만 한정하면 김영웅 유니폼이 가장 많이 나갔다”고 전했다.
2000년대 초반 태생에 최근 2~3년 사이 입단한 이들 선수 대부분은 지난해 첫 태극마크를 달았다. 한국 야구는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기점으로 국가대표팀을 완전히 세대교체했다. 국제종합대회에서 성과를 이루면서 당시 선발된 선수들은 기존 야구팬 외에도 얼굴을 알릴 수 있었다. 그 뒤 11월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을 마치면서 KBO 관계자는 “젊은 팬들이 일본까지도 굉장히 많이 왔었다. 일본의 대회 관계자들이 ‘한국은 이렇냐’고 선수들 인기에 놀랄 정도였다”고 전하기도 했다. 당시 선수단이 귀국할 때는 인천공항에 수백 명의 팬들이 나와 아이돌 귀국장 같은 풍경을 연출했다. 대부분이 여성 팬이었다.
KBO리그는 젊어지고 있다. 리그의 톱클래스를 오래 지킨 1980년대 후반 태생 선수들이 여전히 중심을 잡아주면서 젊은 스타들이 속속 등장한다. 온라인 문화가 발달해 여론에 민감한 시대, 논란의 포인트를 오히려 캐릭터로 만들고 즐길 줄 아는 황성빈(롯데) 같은 선수도 나온다. 멀끔한 외모에 야구까지 잘 하는 스타성 넘치는 2000년대 태생 선수들의 움직임은 야구 인기를 되살리고 있다. 지난해, 5년 만에 다시 800만 관중 시대를 연 KBO리그는 이제 최초의 1000만 시대까지도 노리고 있다. 지금까지의 페이스라면 충분하다.
김은진 기자 muldero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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