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주' 구교환 "동물적인 연기를 하진 않아요, 전략이요? 되게 쉬운데…" [MD인터뷰](종합)
"저도 현상 같은 시간을 통과했어요"
[마이데일리 = 강다윤 기자] "저도 현상 같은 시간을 통과했어요. 모든 분들이 그렇다고 생각해요. 시스템 안에 갇혀 있을 때도 있었고, 벗어나는 게 두려운 일도 있었고. 저는 현상과 다른 인물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건 선생님들도 그렇지 않나요? 저도 그래요. 그래서 규남을 더 응원하게 돼요."
구교환은 최근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마이데일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영화 '탈주'(감독 이종필) 개봉을 앞두고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탈주'는 철책 반대편의, 내일이 있는 삶을 꿈꾸는 북한군 병사 규남(이제훈)과 그를 막아야 하는 보위부 장교 현상(구교환)의 목숨을 건 탈주와 추격전을 그린 작품.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시리즈 '박하경 여행기'로 공감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 이종필 감독의 신작이다.
구교환은 극 중 규남의 탈주를 막기 위해 추격하는 정보기관인 북한 보위부 장교 현상 역을 맡았다. 현상은 러시아에서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현재는 유능한 장교의 삶을 살고 있는 인물이다.
이날 구교환은 가장 먼저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되게 많다. 첫 번째는 이종필 감독님과 이제훈 배우의 참여다. 두 번째는 리현상의 얼굴이 시작과 엔딩이 달랐다. 왜 이 인물의 얼굴이 바뀔 것인지, 그리고 이 얼굴을 한 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이유였다"며 '탈주'를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시작과 끝이 다른 현상의 얼굴을 위해, 큰 그림을 그리고 설계를 탄탄히 해야 했을 터다. 그러나 구교환 "그냥 가면을 벗는다는 개념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엔딩에 도착했을 때 그냥 탁 그 책을 보고 있는 마지막 얼굴이 현상의 진짜 얼굴이 아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어떻게 보면 현상에게도 해피엔딩일 수도 있겠다, 마냥 비극은 아닐 수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영화에서 처음 얼굴은 엄청 타이트하잖아요. 고개도 막 치켜들고 있고. 엔딩의 얼굴은, 그건 제가 어떤 의도를 갖고 '이런 표정을 지어야지' 한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냥 커튼과 그 책과 그리고 그 풀어헤쳐져 있는, 타이는 안 메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셔츠도 풀어져있고. 그렇게 되면 그 표정이 나와요."
규남은 자신의 꿈과 자유, 행복을 찾아 탈주한다. 현상은 어린 시절 알고 지냈던 규남을 한 번 보호해 줬지만 진짜 탈주가 시작되자 자신의 '오늘'을 지키기 위해 기를 쓰고 추격한다. 그러나 구교환이 생각하기에 현상의 꿈과 행복 역시 규남만큼이나 강력했다. 그리고 현상의 꿈은 굉장히 심플했다. 피아노를 치고 싶어 하는 것. 그뿐이었다.
구교환은 "현상은 자신이 돌파할 수 없다고, 그렇게 믿으려고 계속 주입시킨다. 동료한테 '지금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라'하고 이야기하지 않나. 그건 사실 자기한테 하는 말이다. 누군가에게 던지는 대사 같지만"이라며 "규남에게는 '지상 낙원일 것 같냐'라고 한다. 항상 자기를 부정하고, 본인이 갖고 싶어 하면서. 현상의 대사에는 많은 힌트가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짚었다.
피아노를 치고 싶어 하는 현상이라면 지금의 '소좌 리현상'은 원하지 않는 삶일 것이다. 그러나 현상은 처세도 군인으로서의 실력도 뛰어난 인물이다. 이와 관련 궁금증을 드러내자 구교환은 "다 리듬감에 기반을 두는 행위다. 액션신에서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고, 두드러질 필요도 없지만 메트로놈이 움직이듯 똑딱똑딱하면서 저격을 하고 있다"며 "청력이 발전한 것도 거의 메트로놈처럼 듣고 있다. 모든 현상의 능력치, 그 베이스는 음악이라는 영화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역시 현상은 다르다. 그간의 콘텐츠에서 북한군 간부는 촌스럽고 경직된 스테레오 타입으로 표현됐다. 하지만 현상은 세련된 제복핏을 자랑하고 '미제' 물품을 사용하며 보습까지 신경 쓰는 등 메트로섹슈얼하다. 이런 현상이 북한이라는 특수한 환경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증을 자아낼 수밖에 없다.
"현상의, 그런 모습은 숨어 있다고도 생각을 해봤어요. 잘 넘긴 포마드 헤어, 계속 보습을 하고 있고, 립밤까지. 불안에서 나오는 행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현상의 외향과 말씀하시는 섹시코드는 의상 분장팀과 감독님의 힘이에요. 그렇게 입혀놓으면 그렇게 나오거든요. 하하하. 모두 다 콘티 기반의 동작들이에요."
인터뷰 내내 구교환은 '혼자', '내가', '나만이' 해낸 것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원래 쌓여있던 것'이었고 '대본에 있었던 것'이며 '스태프의 노력'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는 "절대 혼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영화가 진짜 팀플레이라고 생각하고, 그걸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나는 그냥 내 일을 하고 조명 감독님은 조명 감독님의 일을, 촬영 감독님은 촬영 감독님의 일을 한다. 그게 다 합쳐져서 싱크가 딱 맞는 순간 어떤 에너지가 발산된다. 그냥 각자 자기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교환은 "연기는 초능력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우연 같은 일은 일어난다. 예를 들어 갑자기 광명이 바뀐다던가. 그런데 나는 프로덕션을 잘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라며 "영화는 약속을 잘 지켜야 되는 거다. 프레이밍 안에서 움직이는 거기 때문에. 영화에서의 초능력은, 그게 기반이 됐을 때 멋진 우연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구교환은 "나는 동물적인 연기를 하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 어디까지 전략을 세우냐는 물음에는 "되게 쉬운데, 장면 앞뒤를 계속 생각한다. 왜냐하면 영화는 순서대로 찍지 않는다. 계속 가변적으로 운영된다. 엔딩신을 먼저 찍었으면 나도 이 장면에 대한 감상이 있다. 책을 보고 커튼 앞에 있으면 '앞에는 더 강력해야겠다'라는 식으로"라며 "동물적이라기보다는 그 신을 연기하고 다음 장면에 제가 해야 해야 될 것들을, 감정들을 계속 생각한다"고 답했다.
'하하하'라고 적지만 구교환은 때로 '흐흐흐'하고 웃었다. '히히'나 '헤헤'가 더 어울리는 웃음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그조차도, 말 한마디와 사소한 손짓 하나도 독특하고 개성 있다 느껴졌다. 어딘가 범상치 않으며 확고한 세계가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었다. 그런 구교환이기에 "조금만 있다 말씀드리겠다"며 고민 끝에 밝힌 '구교환의 꿈'이 더욱 와닿았다.
"그런데 이거, 너무 피식 웃을 꿈이라서. 이야기 안 할래요. 아니 아니, 강아지가 너무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이게 제 꿈이에요. 지금 13살 됐네요. 강아지가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요. 괜찮아요? 좋은 꿈이에요? 강아지가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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