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으로 불린 페미니스트의 자서전 ‘레드 엠마’ [플랫]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으로 불리며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아나키즘과 페미니즘 운동에 영감을 주었던 러시아 출신 미국 활동가 엠마 골드만(1869~1940)의 자서전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출간됐다.
<레드 엠마 1·2>(북튜브)는 1931년 출간된 <Living My Life>를 완역한 것이다. ‘대중 연설에서 최초로 동성애를 옹호한 인물’ ‘최초로 구속된 여성 정치범’ ‘자유연애주의자’ 등 다양한 수식어를 지닌 골드만의 파란만장한 생애가 1권 840쪽, 2권 792쪽이라는 두툼한 분량으로 담겼다. 국내에선 미국 작가 캔데이스 포크가 쓴 평전 <엠마 골드만>과 골드만이 쓴 아나키즘 관련서 <저주받은 아나키즘>이 출간된 적은 있으나, 그가 직접 쓴 자서전이 번역된 것은 처음이다.
골드만은 1869년 제정 러시아의 코브노(현 리투아니아 카우나스)에서 태어나 1885년 이복언니와 함께 미국으로 간다.
재봉사로 일하던 골드만은 시카고 헤이마켓 사건을 계기로 아나키즘에 헌신하기로 마음먹는다. 1886년 5월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하며 헤이마켓 광장에서 시위를 벌이던 노동자들은 때마침 일어난 폭탄 테러의 범인으로 지목돼 이듬해 11월 교수형에 처해졌다. 골드만은 처형 소식을 접하고 “너무 끔찍한 나머지 눈물마저 말라 버렸다”면서도 “높은 이상, 불타는 신념, 나의 순교한 동지들을 기억하며 내 한 몸을 바치겠다는 의지”를 갖게 됐다고 말한다.
골드만은 1889년 뉴욕시에서 평생의 연인이자 동지가 될 알렉산더 버크만과 미국 아나키즘 운동을 대표하는 활동가 요한 모스트를 만나면서 활동가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골드만은 노동자들의 폭동을 선동했다는 혐의로 1893년 교도소에 수감됐다. 미국에서 여성이 정치범으로 수감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이후 1차 세계대전 중에는 징병제 반대 운동을 벌이다 또 한 차례 수감됐다. 석방 후에는 혁명 직후의 러시아로 추방돼 볼셰비키들이 아나키스트들을 숙청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골드만의 공적 삶은 혁명과 운동, 연설과 투쟁으로 점철됐지만, 그의 생애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자유로운 사랑과 예술에 대한 열정이었다.
1960~1970년대 서구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선 “내가 춤출 수 없다면 그것은 나의 혁명이 아니다”라는 문구가 유행했다. 흔히 골드만의 말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작 <레드 엠마>에서는 그 문구를 찾을 수 없다. 대신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아름다운 이상과 아나키즘, 관습으로부터의 해방과 자유를 위한 대의가 삶의 기쁨을 내던져야 하는 일이라고는 믿지 않았다. 나는 우리의 대의가 내가 수녀가 되는 것을 원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또 우리 운동이 수도원이 되어서도 안 되지 않냐고 주장했다. 만약 대의가 그런 거라면 내게 대의 따위는 필요 없었다.”
▼ 정원식 기자 bachwsik@khan.kr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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