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질 희생되더라도 납치 막아라’···이스라엘군, 하마스 공격 당시 ‘한니발 지침’ 발동 논란

선명수 기자 2024. 7. 8.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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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 탱크가 가자지구 남부에 배치돼 있다. AFP연합뉴스

이스라엘군이 지난해 10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 당시 2016년 폐지된 ‘한니발 지침(Hannibal Directive)’을 발동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가 보도했다. 이는 이스라엘에서 수십년간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군사 지침으로, 인질의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자국군이 적군의 포로가 되는 것을 막으라는 일종의 교전 수칙이다.

7일(현지시간) 하레츠는 군 내부 문서와 복수의 군인 증언 등을 토대로 지난해 10월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군 시설 최소 3곳에서 한니발 지침이 발동됐으며, 이로 인해 이스라엘 군인은 물론 민간인 역시 심각한 위험에 노출됐다고 보도했다.

한니발 지침은 인질이 다치거나 죽을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최대한의 무력을 사용해 자국군이 적의 포로가 되는 것을 막으라는 군사 명령이다. 1986년 이스라엘 병사 2명이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에 납치되는 일이 벌어지자 당시 북부사령관이었던 요시 팔레드 장군이 자국군의 사기 저하를 우려해 “우리 병사가 총에 맞고 다치더라도 반드시 구출하라”고 명령한 것이 시작이 됐다.

이후 이 지침은 수십년간 세월이 흐르면서 변질됐고, 납치를 막는다는 명분 아래 병사들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납치 저지 작전뿐만 아니라 인질 구출 작전에 있어서도 인질 안전이 뒤로 밀리게 됐다.

2008~2009년 가자지구 전쟁 당시에는 이스라엘 최정예 부대 골라니 여단 사령관이 부하들에게 ‘적에게 끌려갈 위험에 처한다면 차라리 수류탄을 터뜨려 자폭하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지침의 적용 기준과 범위를 두고 논란이 커지면서 이스라엘 국방부는 2016년 이 지침을 공식적으로 폐지했으나, 전방에선 비공식적으로 이 지침이 적용되고 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해 하마스 공격 당시 폐기된 한니발 지침 발동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하레츠에 따르면 하마스 공격이 시작된 지 5시간 정도 흐른 오전 11시22분 “단 한 대의 차량도 가자지구로 돌아갈 수 없다”는 명령이 군 통신망을 통해 내려왔는데, 복수의 군인들은 인질들을 태운 차량을 폭파시켜서라도 납치를 막으란 명령이었다고 설명했다.

같은 날 오전 7시18분 에레즈 국경검문소에서 납치 소식이 전해지자 사단 본부에선 “에레즈의 한니발”이라는 작전 명령과 함께 지크(공격용 무인기) 발동 명령이 떨어졌다. 역시 하마스가 침투한 라임 군기지와 나할 오즈 기지에서도 한니발 지침이 내려졌으나 이곳에서 이스라엘군 38명 등 53명이 살해되고 7명이 하마스에 납치됐다.

하레츠는 한니발 지침 발동으로 이스라엘 군인뿐만 아니라 민간인도 자국군의 총격에 노출됐으며, 실제 베에리 키부츠의 한 주택에서 하마스에 억류된 인질 14명 가운데 13명이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사망했다고 전했다. 당시 지휘관은 인질들이 억류된 주택에 포탄 발사를 명령했다. 이스라엘군은 해당 사건을 조사 중이다. 지난달 유엔은 이스라엘군이 하마스 공격을 막는 과정에서 최소 12명 이상의 자국민을 사살했다는 잠정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스라엘군은 지난해 12월 가자지구에서 인질 구출 작전을 벌일 당시에도 백기를 들고 구조를 요청하는 자국민 인질 3명을 적군으로 오인 사살해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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