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본선 200승 덕수고 정윤진 감독, 30년 지도자 인생 반추 (인터뷰)

김현희 2024. 7. 8.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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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치 포함 지도자 생활만 30년, 감독 17년 만에 우승 17회 달성
- 전국 본선에서만 200승. 현재 덕수고 본선 17연승 행진
전국 본선 200승째를 기록한 직후 만난 정윤진 감독. 11-1의 스코어로 감독 200승을 일궈냈다.

(MHN스포츠 목동, 김현희 기자) "본선에서만 200승이라니, 감독으로서 치렀던 2007년부터 시작해서 주마등처럼 한 경기 한 경기가 떠오르는 것 같다."

7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제79회 청룡기 쟁탈 전국 고교야구 선수권대회에서 상당히 의미 있는 기록이 나왔다. 덕수고가 서울 동산고에 11-1로 8회 콜드게임 승리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단순 1승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이는 정윤진 감독의 전국 본선 200번째 승리이기도 했다. 2007년 봉황대기부터 모교 지휘봉을 잡은 이후 무려 17년 만에 거둔 대기록이었다. 주말리그와 지방대회까지 합치면 345번째 승리이기도 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와 대한체육회 공인 대회를 기준으로 전국 본선 200승과 통산 300승 이상을 동시에 기록한 이는 정윤진 감독이 유일하다.

2007년 봉황대기 1회전을 부전승으로 마친 덕수고는 춘천고와의 2회전을 11-0으로 승리했다. 그리고 이는 정 감독의 감독 통산 첫 승의 순간이기도 했다. 당시 승리 투수였던 이상우는 현재 소래고 투수코치로 재직중일 만큼 많은 시간이 흘렀다.

2007년 봉황대기는 충암고의 홍상삼(前 두산-KIA)이 MVP로 명성을 떨쳤던 대회로 아직도 SNS에서 해당 영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 가운데 초보 감독 정윤진은 결승까지 올라 충암고를 상대했다. 당시를 떠올린 정윤진 감독은 "성영훈(前 두산)을 비롯하여 외야수 전동수(개명 후 전민수, NC코치)와 내야수 정재윤까지 청소년 대표팀으로 차출되어 저학년 위주로 경기를 펼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결승까지 오르니, 욕심이 나더라. 데뷔전을 우승으로 장식했다면 좋았을텐데, 오히려 그러지 못했던 것이 내 자신을 반성하게 만드는 계기로 만들게 됐다."라며 지휘봉을 잡았을 때를 떠올렸다. 그러나 이 경험은 향후 17번의 전국대회 우승으로 가는 첫 걸음이기도 했다.

코치 시절에도 그러했지만, 사령탑으로 오른 이후 정 감독은 철저하게 학교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감독도 선수들과 한 몸이 되어야만이 좋은 성적으로 이어지고, 감독이 먼저 솔선수범해야 선수들도 따라온다는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23세부터 모교 코치로 일하면서 본인의 젊음과 야구를 바꾼 셈이었다. 이를 20년 가까이 반복했다. 그래서 혹자는 "정 감독님은 야구와 결혼한 사람"이라는 이야기까지 할 정도였다. 실제로 정 감독은 결혼 전까지 학교 숙소에서 먹고 자는 일이 다반사였다.

공수교대 이후 투수들을 점검하는 정윤진 감독

그러한 과정 속에서도 끊임없이 배웠다. 마침 덕수고 인근에 한양대학교가 있어 대학원에 진학, 선수 지도로 바쁜 와중에 석사학위를 따기도 했다. 이는 감독도 공부하고 있음을 몸소 보여 줘야 선수들도 끊임없이 노력할 수 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정호를 비롯하여 이서준 등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 입학생들을 자주 배출하는 것도 '야구를 통하여 공부를 할 수 있는 선수 육성'이라는 정윤진 감독의 교육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이렇게 본인의 노력에 인색하지 않던 정윤진 감독은 '아이러니하게도' 승패에 전혀 연연하지 않는다. 되려 경기 내용에 더 집중한다. 7개의 실책으로 승리한 콜드게임에 기뻐하기보다 0-1로 패한 경기를 더욱 칭찬하는 것이 정윤진 감독이다. 그래서 정 감독은 "덕수답게 야구해서 지는 것을 두고 감독이 뭐라 하는 경우는 전혀 없다. 오히려 그럴 때는 칭찬을 해야 한다. 하지만, 사소한 것에 대한 실수를 밥 먹듯이 하다가 크게 이기는 경우에는 가볍게 넘기지 않는다. 덕수 야구의 전통도 바로 이 기본을 중시하는 데에서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라며 17년간의 감독 생활, 30년 간의 지도자 생활에 대한 지도 철학을 허심탄회하게 밝히기도 했다.

서울 동산고와의 청룡기 1회전에서 투수 교체 여부를 묻는 질문에 김태형은 끝까지 던져보겠다고 했다. 이에 화답하듯, 김태형은 정윤진 감독 본선 200승 무대의 승리투수로 기록됐다.

이제 덕수고는 지난해 전국체육대회(고등부) 우승을 시작으로 청룡기 1회전 승리까지 전국 본선 무대 17연승 행진을 이어오고 있다. 이 부문 신기록은 1971년 남우식을 앞세워 전국 4대 대회(황금사자기, 청룡기, 봉황대기, 대통령배)를 모두 석권했던 경북고의 18연승이다. 2승만 더 하면 덕수고가 이 부문 기록을 경신하게 되며, 4강전에 진출하면 전무후무한 20연승 기록을 이어가게 된다. 이에 대해 정윤진 감독은 "1971년 경북고와 2024년도의 덕수고가 맞붙는다 해도 충분히 우리가 이길 수 있다고 본다. (정)현우도, (김)태형이도 있고, 1번부터 9번까지 피해 갈 타선이 없다. 결코 당시 경북고 전력에 밀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자신감있는 모습을 보였다.

전 세계를 놓고 보아도 학생야구 지도자가 한 학교애서 100승 이상 거두는 일은 상당히 드물다. 일본 고시엔도 그렇고, 대만의 경우 의외로 고교 야구 역사가 짧아 10년 이상 지도자 생활을 하는 이도 많이 없다. 특히, 국내의 경우 우수한 고교/대학 지도자들이 프로의 부름을 받아 퓨쳐스리그나 1군 필드 코치를 뛰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정윤진 감독은 프로에서의 부름도 한사코 고사하고 30년간 한결같이 모교에서 생활했다. 

더 놀라운 것은 아직 50대 초반에 불과한 정윤진 감독의 질주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그는 여전히 청룡기 32강전 하나만 보고 그라운드에 서 있다.

 

사진=MHN스포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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