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대표는 한동훈"…진중권의 지원사격, 득일까 독일까 [정치 인사이드]
한동훈 때리는 원희룡·홍준표에 말폭탄
'당심' 당락 가르는 선거, 진중권 효과는
'진보 논객'으로 불리는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가 국민의힘 당권 전쟁터 한복판으로 들어섰다. 진 교수는 한동훈 후보를 공격하는 원희룡 후보나 홍준표 대구시장을 향해 원색적인 비판을 서슴지 않으면서 '한동훈 대세론'도 공공연하게 언급하고 있다. '당심'이 당락을 가르는 보수 정당 전당대회에서 진보 인사인 진 교수의 지원사격이 한 후보에게 득이 될지, 독이 될지 주목된다.
8일 정치권에 따르면 진 교수는 지난 6월 중순께부터 '어대한'(어차피 대표는 한동훈)이라는 여권 기류를 공개적으로 언급해오고 있다. 그는 지난 유튜브에서 "지지층이 한동훈 출마를 열망하고 있는 것", "'한동훈밖에 없다'는 판단이 내려진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달 19일에는 이철규 의원이 자신이 한 후보의 정무 조언 그룹에 속해 있다는 언론 보도를 고리로 한 후보를 비판한 것을 두고 "'어차피 대표는 한동훈'이라고 하지만, 쉽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후 잠잠하던 진 교수가 본격적으로 전당대회에 참전한 건, 한 후보가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명품 가방 논란에 대한 김건희 여사의 사과 의사를 담은 문자를 무시했다는 의혹에 휩싸이면서부터다. 진 교수는 김 여사의 문자 내용을 공개한 배후에는 이철규 의원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후보의 낙선을 위해 원 후보 측에 문자 내용이 전달된 것이라는 의심이다. 그러면서 연일 원 후보의 성을 빼고 이름만 부르거나 원색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고 있다.
진 교수는 한 후보를 비토하고 있는 홍준표 대구시장에 대해서도 날을 세웠다. 진 교수는 홍 시장이 자신을 '얼치기 좌파'라고 비난하면서 한 후보에게 정무적인 조언을 했을 것이라고 주장하자 "아무 관계도 없는 나를 자꾸 걸고넘어지는 것은 한동훈을 좌파 프레임에 가둬놓기 위해서 내가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라며 "홍 시장 지난 대선 때는 나한테 자기 방송에 출연해달라고 간청해서 내가 돈도 안 받고 시간 내서 출연해줬는데 이제 와서 저렇게 배신을 때린다. 사람이 그러면 못 쓴다"고 반격했다.
진 교수의 강도 높은 발언은 연일 화제가 됐다. 구글 검색량 추이를 나타내는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진 교수가 페이스북에서 국민의힘 전당대회 관련 사안을 언급한 7월 6~8일 평균 관심도에서 진 교수가 다른 당권주자인 윤상현 후보를 앞선 흐름이 포착됐다. 가장 검색량이 많을 때를 100으로 두고 상대적인 추이를 나타내는 이 지표에서 진 교수는 77, 윤 후보는 47이었다.
하지만 이번 전당대회가 보수 정당인 국민의힘의 행사인 만큼, 당외 인사인 진 교수의 참전을 바라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정치권에서는 진보 논객인 진 교수의 지원사격이 한 후보에게 결과적으로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는 상황이다. 국민의힘을 오래 지지한 당원들에게는 진 교수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한편, 진 교수가 내는 메시지의 합리성이나 진 교수를 통해 중도 확장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은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익명을 요청한 한 여권 관계자는 "정의당 국회의원 후보 후원회장을 하셨던 분이 남의 당 전당대회에서 분탕질을 해서 되겠나 생각한다. 당원들이 부글부글 분노하면서 '너희 당으로 돌아가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며 "과연 진 교수가 자유 우파 정당의 가치나 철학을 공유하고 있는 건지, 그저 한 후보의 철학이나 가치만 공유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장예찬 전 청년최고위원은 "정통 보수의 기반이 탄탄한 상태에서 중도나 좌파 인사들이 더해지는 건 득이 될 수 있겠지만, 지금 한 후보 주변에는 정통 보수 인사는 보이지 않고 유독 좌파나 진보 성향 인물들만 눈에 띈다. 이 부분은 약점이 될 수 있다"며 "지금 한 후보에게 확고한 보수 정체성이 없는데, 진 교수나 김경율 회계사 같은 분들만 두각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왜 보수는 안 보이고 진보들만 있느냐'고 당원들께서 생각하실 수 있다"고 했다.
김대식 국민의힘 의원은 "진 교수가 평론가로서 논평은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다른 당의 전당대회에 개입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본다"고 했다.
반면 국민의힘 초선 의원은 "진 교수가 지난 대선을 거치면서 때때로 정부·여당에 우호적인 발언을 많이 했기 때문에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 당원들에게 '진보 논객'으로 인식이 많이 안 되는 것 같다"며 "지금 김 여사의 문자가 추가로 공개되면 한 후보에게 불리할 수도 있는 상황으로 보이는데도, 진 교수 같은 빅 스피커가 한 후보에게 유리한 전선을 만들어 주고 있다. 진 교수의 참전이 해가 될 것 같지 않다"고 했다.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진 교수가 한 후보에게 상당히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2021년 전당대회를 상기해보면 당원들이 민심을 쫓는 전략적 선택을 했기 때문에 이준석 대표가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이라며 "많은 사람이 진 교수를 진보라고 얘기하지만, 누구보다 중도성과 합리성이 강한 사람이다. 현재 실체는 알 수 없지만, 전당대회에 영향을 주려는 조직적인 움직임이 있는데, 이는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기 때문에 차단돼야 한다는 게 합리적이다. 그런 차원에서 진 교수의 이야기는 긍정적일 것으로 본다"고 했다.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득과 실이 공존하게 될 것으로 본다. 확장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득이 될 것이고, 진 교수가 과거 보수 우파에 상처를 주는 발언이 많이 있었다면, 지금 많은 당원께서 언짢을 수 있다는 부분은 실이 될 것"이라면서도 "총선에서 참패한 직후인 우리 당이 민주당이 만들어 놓은 진보, 보수 프레임에 갇혀서 진보 영역을 소홀히 하거나 확장하지 않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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