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학생인권조례 폐지 논란…‘13년 조례’ 운명 시의회로
“교권 추락 원인” vs “조례 탓 아냐”…“학생들 의견 빠져”
(시사저널=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교권 추락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광주시 학생인권조례 존폐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광주시의회가 최근 학생인권조례 폐지 주민조례 청구안을 받아들이고 입법 절차에 들어가면서다. 이로써 광주 학생인권조례는 제정 13년 만에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됐다. 충남·서울에서 발달한 학생인권조례 폐지 전선이 광주까지 남하(南下)한 셈이다.
학생인권 vs 교권 놓고 힘 대결…고개 드는 '절충론'
지난해 불 붙었다가 잠시 소강 상태에 빠졌던 논란이 최근 시의회의 해당 조례 상임위에 상정을 계기로 공방이 치열해지고 있는 양상이다. 학생인권조례로 인해 교권이 침해돼 이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과 광주시가 '민주 인권도시'를 표방하고 있고, 교육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는 만큼 폐지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그러나 광주시의회 문턱을 넘을지는 불투명하다. 폐지 여부를 두고 양 측 주장이 팽팽하지만 교권 침해와 학생인권 간 상관관계가 희박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에 절충론이 점차 고개를 들고 있다. 지역 교육계와 정치권에선 기본적으로 학생 인권조례를 존중하되 교권과 균형을 이루도록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데에 대체적인 공감대가 형성된 분위기다.
광주시의회는 지난달 27일 일부 시민들의 폐지 청구를 받아들여 소관 상임위원회인 교육문화위원회에 상정했다. 조례 폐지안에는 1만388명이 서명했고 이 가운데 8207명이 유효 청구인으로 인정돼 일단 요건은 충족했다. 이에 따라 오는 11일 새롭게 구성되는 후반기 교육문화위원회에서 해당 안을 다루게 된다.
청구인 "교권 추락·학력 수준 하락 주범"
청구인들은 학생인권조례가 교사의 권한 축소로 교권 침해의 원인이 되며 조례가 만들어진 후 학력이 떨어졌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청구취지에서 "인권조례가 학생의 인권과 권리만 강조하다보니 교사가 학생들을 통제할 수 없게 됐고 최근 5년간 광주에서만 교권 침해 사례가 291건이나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인권조례 제정 이전 전국 1, 2위를 자랑하던 '실력 광주'가 이젠 전국 최하위 수준으로 떨어진 점을 들어 조례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이 조례로 인해 학생들의 성정체성 혼란이 야기된다는 점도 반대 이유로 꼽고 있다. 동성애, 선전환 등에 대한 반대를 금지하고, 보건적 유해성(에이즈전파 경로)에 대한 과학적 사실 교육을 금지함으로써 교사와 학생의 표현의 자유와 건강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부모가 자녀의 동성애, 성전환을 반대하면 인권침해가 되는 반면 학부모의 양육권 존중 조항은 없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김미경 광주학생인권조례 폐지 범시민연대 대표는 "동성애 성전환 등에 대한 반대 이유나 보건 의학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조차도 차별 금지 조항에 들어가 있다"고 말했다.
교육단체 "인권도시 광주 폐지 안 돼"
이에 맞서 교육단체들은 강경한 폐지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광주YMCA, 광주YWCA, 광주교육연구소, 광주대안교육협의회 등으로 구성된 광주교육시민연대(교육연대)는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은 교육기본법, 초·중등교육법과 배치되는 위법사항으로 주민 조례에 관한 법률에 따라 각하돼야 한다"며 "또 헌법, 국제인권조약에 따른 교육 기본권과 정신을 훼손하는 등 명백한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교육연대는 "서울시의회에서도 조례 폐지안이 수리·발의됐지만 이후 집행 정지 결정을 받은 바 있다. 이는 조례 폐지로 발생하게 될 혼란과 기본권 침해의 심각성을 사법부도 인정했기 때문"이라며 "학생인권조례가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는 교육계의 의견을 외면한 채 폐지안을 수리한 광주시의회에 유감을 표하며 무효 소송 등 법적 대응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교육시민단체는 교권과 학생인권은 대립되는 관계가 아니라 상호보완적 성격임이 확인됐다고 주장한다. 교권침해와 학생인권의 상관관계를 찾기 힘들다는 게 주된 이유다. 2017~2021년까지 5년간 시도별 교육활동 침해 현황을 분석한 결과 학생인권조례 유무와 교육활동 침해 사례의 상관관계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는 것이다.
실제 교육부 통계로 보면 광주의 경우 조례가 제정된 2012년 487건이던 교권침해가 2013년엔 253건, 2014년 136건, 2015년 92건으로 감소 추이를 보였다. 2016년 163건으로 훌쩍 늘었지만 이후 다시 감소세로 돌아서는 등 조례와의 관련성을 찾기 힘들다는 분석이다.
학생인권조례 실시 지역에서 적극적 학생인권이 일정 수준만큼 증가할 때 학생들의 교권 존중 정도가 증가하는 경향이 확인된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결과도 조례 폐지나 개정 반대 목소리를 뒷받침한다.
교육계 "상충관계 아냐…폐지보다 수정·보완"
광주시교육청을 비롯한 교육계와 시민단체들도 조례 폐지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다. 현행 학생인권조례를 존중하되 교권과 균형을 이루도록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정선 광주시교육감은 최근 열린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학생의 인권과 교권은 서로 상충하는 개념이 아니다"며 "다만, 특정 구성원의 권한이 강화되거나 책임이 약화한 부분이 있다면 보완돼야지 어느 하나가 폐지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학생인권과 교권은 대립관계가 아닌 만큼 폐지보다는 교권을 추가하면 된다는 의미로 읽혔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광주지부 백성동 대변인은 "학생인권 조례 폐지에 기본적으로 반대한다. 무조건 폐지보다는 현시대에 맞춰 수정·보완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학생인권조례를 악용해 교사들의 정당한 교육활동을 방해하는 사례도 있는 만큼 학생 인권이 교권과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역 교육계 한 인사는 "학생인권조례 폐지는 과거로 돌아가는 것과 똑 같다"며 "교권을 추가하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인권과 교권은 함께 발전해야 할 상생의 관계다"며 "학생·교사 모두의 인권을 존중하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조례에 문제가 있으면 개정, 보완하면 된다"고 말했다.
양 측의 입장이 맞선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학생들의 의견이 빠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진 계기가 일부 교사의 체벌과 강압적인 분위기를 경험한 학생들 때문이었고 지금도 여전하다는 점에서다.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침해의 주요 원인은 아니라는 판단도 나왔다. 법원과 헌법재판소는 "학생인권조례 폐지 청구 주장은 법률적, 교육적, 사회적으로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고 봤다. 국가인권위도 "학생인권조례가 추구하는 학생인권 보호와 학교 현장이 요구하는 교권 보장은 대립 관계에 있지 않다"고 했다.
2010년 경기도에서 처음 제정된 뒤 17개 시·도 중 광주(2011년), 서울, 전북, 충남, 인천, 제주 등 지역에서 잇따라 제정됐다. 소위 진보 교육감들이 주도했다. 당시 체벌 금지, 강제 야간 자율학습 및 보충수업 금지, 두발 규제 금지 등 관행을 깨는 정책들이 시행돼 교육계의 파장을 일으켰다. 학생이 성별, 종교, 나이,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게 골자다.
세부적으로는 △성별과 종교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정규교과 이외의 교육활동의 자유 △소지품검사 금지, 휴대폰 사용 자유 등 사생활 자유 보장 △양심과 종교의 자유 보장 △집회와 학생 표현의 자유 보장 △소수 학생의 권리 보장 △학생인권옹호관, 학생인권교육센터 설치 등 학생 인권침해 구제를 보장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하지만 교육계에선 조례가 학생 인권 보호를 일방적으로 강조해 교사의 교육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해왔다. 조례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 사생활 보장 등이 학생들의 일탈 행위를 부추기고 교사가 이를 바로잡을 권한을 약화시킨다는 지적이다. 특히 교계에서는 조례안이 다양한 성적지향을 옹호하는 인권 개념을 추종한다는 점에서 지속적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지난해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으로 교권 침해 논란이 확산하자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조례가 학생의 권리만 강조해 교권 침해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4월 충남도의회가 주민 청구로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했지만 법원이 충남도교육청의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해 본안 소송까지 학생인권조례가 한시적으로 효력을 얻은 상태다. 서울시의회 역시 6월 25일 조례를 폐지했지만 서울시교육청은 대법원에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하고 집행정지를 신청할 방침이다.
지자체의 학생인권조례 폐지 움직임에 국회에서는 조례보다 상위인 법률로 학생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학생 인권 보장을 위한 특별법'이 지난달 20일 야당 주도로 발의됐다.
교육부는 지난해 11월 현행 학생인권조례의 대체안으로 만든 '학교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 예시안'을 공개했다. 지방자치단체의 조례 개정을 유도하는 취지다. 예시안은 학생·교원·학부모의 권리와 책임을 균등하게 명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다만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 학생의 기본권 관련 내용이 빠져 개정 과정이 진행될 경우 논란이 예상된다. 이에 지자체가 예시안대로 조례를 개정할지는 미지수다.
지역 정서상 폐지 어려울 듯…개정 수위 '관심'
이에 광주시의회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새로 선임되는 후반기 교육문화위원들의 입장이 주요 변수다. 조례 가결·부결이 결정되기 때문에 위원들 각자의 생각이 심의의 요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조례안이 상임위를 거쳐 본회의 통과까지 이뤄지면 전국에서 3번째로 폐지된다.
하지만 지역 정서상 폐지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광주의 경우 민주·인권도시라는 상징성과 서울, 충남 등 다른 지역과 달리 민주당이 주류여서 조례 폐지가 가시화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또 이정선 광주시교육감 비롯한 전교조 등 교원단체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도 이 같은 주장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들은 학생들의 인권과 교권은 서로 상충하는 개념이 아니라며 폐지에 강경한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교권 침해 등 학교 현장의 어려움이 학생인권조례 탓만은 아니며 학생인권조례와 교권 보장은 대립의 관계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학생인권조례 자체를 폐기하려는 움직임은 학생들의 권리와 안전을 약화할 수 있다고 주장에 동조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다. 따라서 현 학생인권 조례를 존중하며 어느 선에서 학생 인권과 교권의 균형점을 찾을지 등 개정 수위에 더욱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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