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내조 後…여의도 진앙 된 김건희 여사 ‘문자 정치’
‘명품백 수수’ 관련 목사와 나눈 문자는 檢 수사선상
반복되는 ‘문자 논란’에 與일각서도 ‘제2부속실 필요’
(시사저널=박성의 기자)
"남편이 대통령이 돼도 아내 역할에만 충실하겠습니다."
2021년 12월26일 김건희 여사는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에서 "부디 노여움을 거둬달라"며 이같이 약속했다. 대선을 3개월가량 앞두고 '허위 이력' 논란 등 배우자 리스크가 불거지자 '조용한 내조'를 다짐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대선 후보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부인은 가족에 불과하다"며 김 여사에게 공적인 역할을 맡기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그로부터 2년6개월 여, 윤 대통령 내외의 공언과 달리 김 여사의 이름이 연일 '정치 1면'을 도배하고 있다. 김 여사가 총선 국면에서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보낸 문자 수 통이 전당대회를 앞두고 공개되면서다. 한동훈 후보가 해당 문자를 '패싱'했다는 의혹이 당 내홍의 진앙이 된 가운데, 문자의 시발점이 된 '명품백 수수 논란' 사건의 수사 향배에도 정치권 관심이 집중된다.
"여사 패싱" "당무 개입"…문자 두고 진실게임
한 후보와 여권의 반응을 종합하면 '김 여사가 1월19일 한 후보에게 텔레그램을 통해 문자메지시지를 전송'한 것은 사실로 파악된다. 김 여사를 둘러싼 '명품백 수수 논란'이 정치권 화두로 부상했을 때다. 한 후보는 해당 문자에 답하지 않았다. 이후 1월21일, 이관섭 당시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한 후보에게 사실상 사퇴 요구를 하며 제1차 '윤·한 갈등'이 불거진다. 이후에도 김 여사는 수차례에 걸쳐 한 후보에게 문자를 보냈으나 답을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까지는 팩트(fact)다. 그러나 △김 여사가 '사과' 의향을 밝혔는지 △그럼에도 한 후보가 김 여사의 의중을 '무시'한 것인지 △비대위원장에게 직통으로 보낸 여사의 메시지가 '적절'했는지 등을 두고 한 후보와 친윤(親윤석열)계는 연일 '진실게임'을 벌이고 있다. 한 후보는 김 여사 측이 사실상 사과할 의향이 없었고, 있었다 해도 당 대표와 직통으로 연락하는 것은 부적절했다는 입장이다. 반면 다른 당권 후보들과 친윤계는 김 여사가 사과 의향을 명백히 밝혔고, 총선 국면이기에 당연히 당 대표와 상의할 수 있는 안건이었다고 맞서고 있다.
한 후보는 지난 5일 KBS에서 "공개된 문자 내용이 사실과 다르며 실제로는 (김 여사가) 사과하기 어려운 이런저런 사정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취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또 한 후보는 문자에 답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대통령실이 사과에 부정적인) 상황에서 영부인이 제게 개인 문자를 보낸다면 답하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원희룡 후보는 7일 SNS를 통해 "한동훈 후보가 김건희 여사 문자 논란을 전당대회 개입으로 몰아가고 있는 건 매우 위험한 주장이다"며 자칫 당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문자를 공개하거나, (한 후보가) 사과하고 끝내자"고 요구했다.
해당 논란을 두고 당내, 원내외 정치인들 간 의견도 엇갈리는 양상이다.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에 출연해 "여사가 보낸 문자가 임금님의 교서는 아니지 않느냐"며 "당무 개입이라고 본다"고 친윤계와 대통령실을 직격했다. 반면 국민의힘 전 당 대표였던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같은 날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한 후보를 겨냥해 "당 대표에게 있어 사적인 관계나 인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이끄는 당이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라며 "김건희 여사가 자발적으로 (사과)하겠다고 했으면 냉큼 하게 했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계속되는 '여사 논란'…'제2부속실' 살아날까
김 여사를 둘러싼 논란이 발화하자 대통령실은 당혹감을 드러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7일 '문자 읽씹' 논란과 관련해 "국민의힘 전당대회 선거 과정에서 일체의 개입과 간여를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특히 전당대회 과정에서 각 후보나 운동원들이 대통령실을 선거에 끌어들이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기울여 주십사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했다.
다만 일각에선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김 여사의 직‧간접적인 정치 행위가 '대통령실의 리스크'가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취재에 따르면, 김 여사는 대선 정국 전후로 현역 의원뿐 아니라 원외 정치‧경제 전문가들과 텔레그램을 통해 수시로 소통했다는 후문이 들린다. 일각에선 김 여사가 문자메시지를 보낸 당사자가 과연 '한동훈'에 국한되느냐는 공개적인 의심도 제기된다.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8일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김 여사 문자 논란과 관련해 "김 여사의 '패턴'이 보이는 것"이라며 "과연 김 여사가 이전 당 대표 또는 장관들에게 (개인적으로 문자를) 안했다고 볼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도 같은 날 SBS 《김태현의 정치쇼》와의 인터뷰에서 "김건희 여사가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게도 문자를 많이 보냈지만 장관들한테도 많이 보냈다는 설이 나오고 보도가 있다"면서 "그것이 밝혀지면 국정농단으로 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후보와의 문자 논란 외에도 김 여사는 '또 다른 문자'로도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른 상황이다. 김 여사는 '명품가방 수수 의혹'과 관련해 가방을 건넨 최재영씨와 나눈 카카오톡 메시지를 최근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 여사를 보좌하는 대통령실 관계자들을 잇달아 조사한 검찰은 김 여사와 최씨가 제출한 대화 내용을 대조하면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검찰은 대화 내역을 분석한 다음 김 여사에 대한 조사 여부와 방식, 시점을 검토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사 관련 논란이 계속되면서 윤석열 정부 들어 사라졌던 '제2부속실' 부활의 필요성도 언급된다. 현재 한 후보를 비롯해 나경원‧원희룡‧윤상현 후보 모두가 찬성 입장을 밝혔다. 제2부속실이 설치되면 김 여사의 일정·메시지·의상·수행 등은 공식적·제도적으로 관리된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김 여사가) 정식적인 보좌진을 두고 대통령에 준해서 중요한 일정 정도는 브리핑하고 공유해야 한다"며 "제2부속실 없이 활동하니 국민들에게 의구심만 증폭시키고 정쟁만 부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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