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임성근 불송치…"'허리 아래까지' 대대장 지시가 사고 원인"
경찰이 8일 해병대 채수근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대대장의 지시가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임성근 전 해병대 제1사단장에 대해선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경북경찰청 형사기동대는 이날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결과 언론 브리핑을 열고 해병대 제1사단 포병7여단장 등 현장 지휘관 6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업무상 과실치사와 직권남용 의혹을 받던 임성근 전 해병대 제1사단장은 불송치를 결정했다.
경찰은 채 상병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최모 포11대대장(중령)의 잘못된 지시라고 판단했다. 최 대대장은 당시 연대장 없이 호우 복구에 투입됐던 해병대 포병 연대의 선임 대대장으로, 포병여단과 상급부대(7여단) 간 소통을 담당했다. 경찰은 최 대대장이 '수중이 아닌 수변에서, 장화 높이까지 들어갈 수 있다'는 7여단장의 수색지침을 임의로 '허리 아래까지 들아간다'고 바꿔 지시했다고 밝혔다.
최 대대장 지시가 있은 다음날 고 채 상병이 소속된 포 7대대가 '허리 높이의 수중수색'을 하다가 사고가 발생했다는게 경찰의 결론이다.
경북 지역에 집중 호우가 계속되던 지난해 7월17일 경북 북부지역(문경·영주·봉화·예천)은 육군 50사단장이 작전을 통제했다. 육군 50사단장은 해병 1사단 신속기동부대장(7여단장)에게 예천지역을 할당하고 현지 지자체와 소방과 협의해 임무를 수행하도록했다.
7여단장은 소방 등과 협조 회의 후 수중수색은 소방에서, 수변수색은 해병대에서 담당하기로 결정했다. 협조 회의에서 '수변수색'은 '물속에 들어가지 않고 수변에서 육안으로 수색'하기로 결정했다. 권역별 부대할당과 수색방법은 해병대 자체적으로 판단하기로 했다.
이튿날인 18일 오전 7시쯤 7여단장은 '해병대가 수변 아래 정찰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소방 요청을 받고 예하 부대에 "도로 정찰 위주이지만 각 제대별 판단해서 장화 깊이까지 들어가는 노력은 필요할 듯 하다"고 지시를 내렸다. 약 10분후에는 "현장에서 판단해서 위험한 구간은 도로 정찰하고 장화로 가능한 부분은 지원하라"고 추가 지시를 내렸다.
경찰은 7여단장이 '수중이 아닌 수변에서, 장화 높이까지 들어갈 수 있다'며 한계를 설정한 수색 지침을 하달했다고 봤다.
그런데 최 대대장(포 11대대장)은 이날 오후9시30분쯤 포병 여단 자체 결산회의를 하며 "내일 우리 포병은 허리 아래까지 들어간다. 다 승인받았다"라고 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은 "최 대대장이 사실상 수중수색으로 오인케 하는 지시를 임의로 했다"며 "이에 다음 날 오전 9시1분쯤 피해자 소속 포 7대대가 '허리 높이의 수중수색'을 하던 중 사고가 발생했다"고 했다.
경찰은 또 7여단장, 포 11대대장, 포 7대대장, 포 7대대 본부중대장과 본부중대 소속 수색조장과 포병여단 군수과장 등 6명을 업무상과실치사의 공동정범 혐의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경찰은 포 7대대장과 포 7대대 본부중대장, 본부중대 수색조장, 포병여단 군수과장 등 4명에 대해 "최 대대장(포 11대대장)이 변경 지시한 수색지침이 명백히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예견했다"고 밝혔다. 이어 "상부에 확인해 지침을 철회·변경하거나 그에 따른 위험성평가 및 안전대책을 마련하는 등 예상되는 위험방지 노력을 했어야 함에도 이를 소홀히 한 책임이 있다"고 했다.
7여단장에 대해선 "수색 구역, 역할, 방법 등을 정하는 소방측과 3차례 협조회의 때 포병여단 지휘관 등을 참석시키거나 그러지 못했다면 그 회의 결과를 좀 더 상세하고 정확하게 설명·지시하고, 기상 상황과 부대별 경험 등을 고려해 작전 배치하는 등 세심하게 관리 감독을 했어야 함에도 소홀히한 책임이 있다"고 했다. 이어 "특히 수색 지침에 대한 불명확한 설명과 소통의 부족, 소극적 지시 등이 종합적으로 합쳐져 최 대대장의 임의적인 수색지침 변경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임 전 사단장에 대해선 업무상 과실치사와 직권남용의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임 전 사단장에 대해 △7여단장으로부터 보고받은 수색지침을 변경하거나 새로운 내용의 지시를 한 사실이 없는 점 △7여단장과 달리 포 11대대장과 직접 소통하고 지시하는 관계가 아니었고 그런 사실도 확인되지 않는 점 △포병 부대의 수색지침 변경이나 그 징후, 일부 수중수색 사실 등을 보고받거나 인식한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 점 등을 종합해 업무상 과실치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최종 판단했다.
또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선 작전통제권이 없는 임 전 사단장의 작전 관련 지시들은 '월권행위'에 해당해 형법상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직권남용 혐의 적용을 위해선 공무원이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해 권한을 위법·부당하게 행사해야하는데 판례에 따라 일반적 직무권한을 넘는 '월권행위'에 대해선 적용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채 상병은 지난해 7월19일 오전 9시3분쯤 경북 예천군 내성천 보문교 인근에서 실종자를 수색하다가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다. 실종 14시간만에 약 7㎞ 떨어진 고평교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정세진 기자 sej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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