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의 기업, 삼진 두려워 말고 홈런을 노려라"

황순민 기자(smhwang@mk.co.kr) 2024. 7. 8.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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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캐피털 세계적 석학 일리야 스트레불라예프 스탠퍼드대 교수
패러다임 변하는 혼란의 시기
'벤처 마인드셋' 무장할 필요
한국 대기업, 규모 크단 이유로
보호받을수 있지만 이는 일시적
파괴적 혁신 안하면 생존 못해
실패는 더 잃을 것 없는 상태라
위험 감당할수있는 원동력 되고
발상 전환하면 새로운 성공 가능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산업의 모든 규칙을 바꿔놓는 '게임체인저'가 되면서 기업의 생존 키워드로 '파괴적 혁신'이 떠오르고 있다. 파괴적 혁신이란 대기업들이 집중하기 어려운 소수 고객층부터 '급격하게 성장하는 파괴적 기술'로 침투해 들어가는 스타트업이 종종 시장 전체 구도를 바꿀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최근에는 AI가 거의 모든 영역에 적용되는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면서 이익을 잘 내던 큰 기업들이 순식간에 신생 스타트업 앞에 무릎을 꿇는 시대가 본격화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 시가총액 순위에 지각변동이 발생하고 테크 투자 업계에서 극심한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최근 방한해 매일경제와 만난 벤처캐피털(VC) 분야 세계적 석학 일리야 스트레불라예프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새로운 혁신기 기존 대기업의 사고방식과 차별화되는 '벤처 마인드셋(mindset)'의 필요성을 한국 기업가들에게 조언했다.

스트레불라예프 교수는 "삼진을 두려워하면 홈런을 칠 수 없듯, 실패를 피하려 하면 큰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면서 "전통적인 대기업, 정부, 규제기관은 과연 우리가 '삼진'을 포용하는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산업 간 경계가 무너지고 기술로 패러다임이 완전히 뒤바뀌는 시기 진짜 악몽은 실패가 아니라 홈런을 칠 기회를 놓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스트레불라예프 교수는 VC와 혁신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로 스탠퍼드대 연구팀과 함께 20년간 VC 생태계를 면밀히 분석해온 인물이다. 그는 스탠퍼드대 경영대에서 사모펀드 및 금융 교수로 재직하며 전 세계 고위급 비즈니스 리더들에게 혁신에 대해 조언하고 있다. 스탠퍼드대 MBA 출신인 김천수 파라마크벤처스 대표는 "스트레불라예프 교수의 '파이낸스385' 수업을 통해 세계를 주름잡는 수많은 VC가 배출되고 있다"고 전했다.

스트레불라예프 교수에 따르면 급변하는 비즈니스 생태계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기업들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예컨대 이러한 기업들은 △실패를 회피하거나 △예측이 어려운 것은 버리고 △한 가지에만 베팅하며 △다양한 아이디어를 방치하고 △실패 사례를 꼭꼭 감추고 △모든 의사결정에 지나치게 긴 시간을 들이다가 기회를 놓치고 △반대 의견을 껄끄러워하는 등의 특징이 있다는 분석이다.

흥미로운 점은 대부분의 리더는 자신의 산업에서 모든 것이 뒤바뀔 파괴적 혁신을 '예상'하지만 올바르게 행동하는 이는 드물다는 점이다. 하지만 후속 행동(action)은 모든 것을 바꾸는 요소가 된다. 누군가는 다음 스텝을 위해 움직이지만 다른 누군가는 알고도 모르는 척 넘어가기도 한다.

스트레불라예프 교수는 실패를 두 가지로 규정하면서 사업의 실패와 창업자의 실패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스트레불라예프 교수는 '액셀 벤처스'의 투자 사례를 예로 들었다.

그는 "액셀 벤처스가 한 온라인 게임 개발 업체에 투자했는데 게임은 성공하지 못했다. 창업자들은 자신들이 완전히 망했고 남은 투자금 50만달러를 투자자들에게 돌려주겠다고 했지만 투자자들은 새로운 아이템을 찾아보라고 했다. 24시간 일하는 게임 개발자인 창업팀은 의사소통에 문제의식이 있었고 관련 서비스를 내놨다. 그렇게 나온 것이 세계적인 업무용 메신저 슬랙(Slack)"이라고 말했다. 일의 실패를 사람의 실패와 구분하고 제대로 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스트레불라예프 교수는 "실패는 때로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지만 이미 실패했다는 뜻이기도 해서 잃을 것이 더 이상 없는 상태라는 의미도 있다"면서 "이는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실패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피벗(전환)을 하면 새로운 성공에 이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스트레불라예프 교수는 한국 경영자들에게 VC에서 통용되는 '벤처 마인드셋'을 기업 경영에 적용할 것을 조언했다. 특히 VC가 위험에 대처하는 자세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예컨대 "효과가 없는 회사에 투자하면 1배의 손실을 입지만 구글을 놓치면 1만배의 돈을 잃는다"는 것이 투자업계의 오랜 사고방식이다. AI로 모든 것이 뒤바뀌는 요즘과 같은 패러다임 전환기에는 이처럼 '작위의 오류'보다 '부작위의 오류'에 더 큰 타격을 받는 현상이 비단 VC 업계에만 해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새로운 기회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혼란(disruption)이 우리를 앞으로 밀어내고 있다"며 "이 같은 역사적 시기에 기업의 리더들에게 끊임없이 강조하는 메시지는 놀라운 성장을 이룰 수 있는 벤처 마인드셋으로 무장하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트레불라예프 교수는 혁신을 위해서는 조직문화를 바꾸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모든 조직은 문화를 갖고 있고, 이를 바꾸는 것은 사실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하다"면서 "결국 조직을 바꾸기 위해서는 최고경영자(CEO)나 창업자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조직 내 의사결정 과정에서 '악마의 변호인'에 해당하는 레드 팀이 최악의 시나리오를 점검하고 토론의 장을 여는 것을 하나의 방법으로 제안했다.

한국에 대해 스트레불라예프 교수는 "혼란의 시대에 국가 간 경쟁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그는 "한국은 몇몇 기업이 규모가 크다는 이유로 규제의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이는 일시적일 뿐"이라면서 "모든 대기업은 파괴적 혁신을 해야 하며 여기에 몇 년이 걸릴 수도 있고 거대한 베팅을 요구할 수도 있지만 이를 추구하지 않는 기업들은 생존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덧붙였다.

최근 스트레불라예프 교수가 VC가 가진 마인드셋 가운데 일반 기업에서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을 정리해 펴낸 책 '벤처 마인드셋'은 에릭 슈밋 전 구글 CEO가 추천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스트레불라예프 교수는 "조직의 규모에 상관없이 벤처 마인드셋이 기업가들의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고 말했다.

[황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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