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새 60대 이상 ‘급발진 주장’ 사고 3건…급발진 인정은 0건
한국 연구진 “50대 이상 운전자가 전체의 63%”
일주일 새 서울 도심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는 크게 지난 1일 일어난 시청역 역주행 참사, 3일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실 택시 돌진, 7일 용산구 이촌동 택시 4중 추돌이 있다. 이 사고 운전자들에게는 공통분모가 있다. 이들 모두 60대 이상이고, ‘급발진 사고’를 경찰에 주장하고 있는 점이다. 다만 지난 6일 서울역 앞 주유소 앞에서 행인 2명을 친 사고의 운전자 80대 A씨는 경찰에 급발진 사고를 주장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경찰도 “현재까지 급발진 정황은 없어 보인다”고 했다.
시청역 역주행 참사의 가해자 차모(68)씨는 경찰 수사에서 “브레이크가 딱딱했다”며 급발진을 주장했고,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실 돌진 사고의 가해자 B씨도 급발진을 주장했다. B씨는 마약 간이 시약 검사 결과에서 모르핀 양성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일각에선 “급발진의 뜻이 급할 때 막 지르는 단어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급발진 의심은 1년에 30여 건, 하지만 인정 건수는 0건
지난 5월 경기 수원시 영통구에서도 SUV 차량을 몰다 50대 행인을 쳐 사망케 한 60대 운전자도 경찰에 급발진을 주장하고, 지난 4월 경남 함안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도 운전자 60대 여성이 급발진이 의심된다고 해 경찰이 조사에 착수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지난 2010년~2022년 사이 급발진 의심 사고는 766건 발생했지만 급발진으로 인정받은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급발진 추정 혹은 의심되는 교통사고 신고를 받고 소방이 출동한 건수는 2017년~2021년 사이에만 791건에 달한다. 하지만 경찰청은 급발진 사고 관련 통계를 남기지는 않고 있다.
윤종군 민주당 의원이 한국교통안전공단으로 받은 자료에서도 2017년부터 올해까지 연평균 30건의 급발진 신고가 들어왔지만 결함 인정은 한 건도 없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도 급발진 사고로 의뢰받은 사건들 중 엔진 출력 이상 급등과 같은 급발진 인정 사례는 없었다.
한국소비자원이 분석한 급발진 연령대별 운전자 현황에서도 20~30대에서는 낮다가, 40대부터 오르는 추세였다. 20대가 6명(2.6%), 30대 46명(19.7%)에서 40대가 75명(32.2%), 50대가 78명(33.5%), 60대 26명(11.1%)로 전체 급발진 의심 운전자 중 76% 이상이 40대 이상이었다. 운전 경력으로는 10년 이상~20년 미만이 82명(35.2%), 20년 이상이 58명(24.9%)이다.
서울과학수사연구소 교통사고분석실의 2019년 연구에서도 “급발진 추정사고에 대한 연령별 통계에서 50대 이상 운전자가 전체의 63%를 차지했다”며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 비율을 감소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행정 및 제도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급발진인줄 알았는데…“대부분 운전자 착오”
미국에서는 1989년, 일본 1990년, 한국은 1999년 급발진을 ‘운전자의 오조작 및 착각’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건으로 결론 내렸다. 실제 차량 구조 상 기계 이상으로 인한 급발진은 절대 불가능하고, 대부분 인간의 착각과 기억조작으로 ‘나는 브레이크를 밟았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가속 페달을 밟는 경우라는 것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급발진과 교통사고 등을 연구해 온 박성지 대전보건대 교수(과학수사과)도 “가속 페달을 밟아 놓고 브레이크를 밟았다고 오해하는 일이 종종 있다”며 “갑자기 차가 빠른 속도로 끼어 들거나, 사람이 도로로 나오는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운전자가 이런 오해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전에 있었던 급발진 의심 사고도 대부분 이런 경우”라고도 했다.
자동차 바닥 매트로 인한 사고도 있다. 운전자석의 바닥 매트가 가속 페달에 끼어 운전자는 페달을 밟지 않았지만 자동으로 페달이 눌러지는 경우다. 전문가들은 “새 차에 붙어 있는 자동차 보호 비닐은 반드시 떼어내고, 매트는 운전석 사이즈에 맞는 정식 매트를 구매해야한다”고 조언한다. 운전 시 슬리퍼 착용도 금물이다. 운전 중 슬리퍼가 벗겨져 가속 페달에 낄 수 있기 때문이다.
◇美 연구 결과 ”급발진 의심, 40대부터 증가”…전문가 “급발진, 실체 없어”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이 급발진 현상(sudden acceleration incidents)와 운전자의 연령대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급발진 의심은 운전에 미숙한 20대 극 초반에서 자주 발생하다, 운전에 익숙해지고 신체가 건강한 20대 후반~30에서는 낮아진다.
그러다 40대부터 점점 증가하더니, 80대에 최다를 기록했다. 즉 운전 경력과 상관 없이 운전을 오래한 베테랑 운전자일수록 급발진 의심 사고 발생률이 높아지는 경향이다. 이는 한국소비자원이 집계한 급발진 의심 사고 통계 추이와도 일치한다.
급발진 유무를 떠나 60대 운전자들이 고령으로 인해 인지 능력이 떨어져 교통사고가 잦다는 분석도 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사물을 파악하는 정지시력과 동체시력은 40세부터 저하해 60대에는 30대 대비 80% 수준으로 떨어진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의 2022년 연령대별 교통사고 지표를 보면, 60대 이상 운전자가 일으킨 교통사고는 총 3만8336건으로, 2만건에 불과한 30~50대보다 높다. 사고 건수가 많은 만큼, 이로 인한 사망 건수도 394건으로, 40대(194건), 50대(197건)의 2배에 가깝다.
전문가들은 급발진이라는 현상에 대해서도 의견이 달리한다. 급발진을 20년 가까이 연구한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충분히 운전자 입장에서는 주장할 수 있다”고 하지만, 박철완 서정대 교수는 “급발진은 단순 현상이지 실제로 그것의 실체가 명확히 증명된 경우는 없다”고 일축했다. 박 교수는 “급발진 주장은 사고 가해자가 자기 방어를 위해 내세우는 단순 논리일 뿐이며, 사고에 대해 국민들만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2013년 발표한 연구 자료에서도 “급발진 의심 사례 40건을 전수 조사한 결과, 운전자의 오조작이 80%, 판단불가가 20%”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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