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못 낳는다고…수컷 병아리 매년 5000만마리 학살
동물자유연대 ‘수평아리 도태 문제점과 개선 방안’ 보고서 발간
* 이 기사에는 동물 사체 사진, 잔인한 장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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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산란계 농장에서 부화하자마자 도태(도살)되는 수평아리가 해마다 5000만 마리에 달한다는 추정이 처음으로 나왔다.
동물자유연대 산하 한국동물복지연구소는 5일 ‘수평아리 도태 문제점과 개선 방안’ 보고서를 발간해 이같이 밝혔다. 지금껏 국내에서는 수평아리 도태 규모나 방법에 대한 조사가 전혀 이뤄진 바 없는데 해당 보고서에는 국내 수평아리 도태 현황과 도태 방법 및 문제점, 외국의 정책·입법 동향 등이 담겼다.
보고서를 보면, 전 세계적으로 해마다 도태되는 수평아리는 65~70억 마리에 달한다. 국내 공식 통계는 없지만, 연구소가 산란계 농장 현황을 종합해 추산한 결과, 국내에서는 해마다 약 5000만 마리가 도태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산란계 농장에서 수평아리들은 경제적 이용 가치가 낮아 부화한 지 며칠 만에 대부분 죽임을 당한다. 암컷과 달리 알을 낳을 수 없고, 육계 품종에 견줘 사료 효율이 떨어져 육계로 사육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일반적으로 성 감별 직후 수평아리를 산 채로 분쇄기에 파쇄하거나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질식시킨다고 한다. 이러한 시설조차 갖추지 못한 곳에서는 마대 자루에 그대로 담아 압사시키거나 물속에 던져 익사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승태 작가가 축산업계에서의 노동 경험을 쓴 책 ‘고기로 태어나서’(2018년)에서도 수평아리가 “(쓰고 버린) 화장실 휴지나 자신이 깨고 나온 알껍질”처럼 폐기되는 현실을 그린 바 있다. 그가 일한 산란계 농장에서도 수평아리들은 마대 자루에 담겨 압사당했다.
보고서는 수평아리 도태 문제가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동물보호법 제13조(동물의 도살방법)는 동물을 잔인한 방법으로 도살하거나 도살 과정에서 불필요한 고통이나 공포, 스트레스를 줘서는 안 된다고 정하고 있다. 살아있는 상태에서 분쇄기에 넣는 등 잔인한 도태 방식을 고려하면 동물보호법 위반을 문제삼을 수 있지만, 정부가 실태 조사조차 하지 않아 불법 여부를 따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축산법, 축산물위생관리법, 가축전염병예방법 등 농장동물의 사육·도살과 관련한 법률에도 수평아리의 도태 기준이나 방법을 정하는 내용이 없어 현재로서는 어떠한 법적 근거도 없는 상태다.
유럽에서는 수평아리의 잔인한 도태 관행을 바꾸기 위한 입법, 과학적 연구, 시민 인식 개선 캠페인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보고서는 유럽연합(EU),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의 사례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독일은 병아리가 부화하기 전 배아 13일령부터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뒤, 2022년 1월1일부터 수평아리의 도태를 금지했다. 프랑스 역시 2023년 1월1일부터 수평아리 도태를 금지했으며, 오스트리아는 2022년 7월28일 살아있는 병아리를 분쇄하는 행위를 금지했다.
대신 이들 국가에서는 병아리 부화 전 성 감별 기술 연구, 육용과 산란용 두 가지 목적을 모두 충족시키는 품종으로의 개량 등에 정부가 수백억 원을 지원하고 있다. 독일은 일찌감치 이 같은 연구를 정부 차원에서 지원해 현재 상용화된 부화 전 성 감별 기술 5개 가운데 4개를 보유하고 있다. 부화 전 성 감별은 달걀 외형 계측, 호르몬 검사 등을 통해 이뤄진다. 이밖에 유전자 변형 등을 통해 수평아리의 배아 생성을 차단하는 기술도 국외에서는 연구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관련 논문이나 연구가 단 한 건도 확인되지 않았다.
보고서는 수평아리 도태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서 정부 실태조사부터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정부는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축산법에 따라 허가된 부화장을 대상으로 해마다 도태되고 있는 수평아리 규모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며 “사용 중인 분쇄기나 가스 질식 장치 등 도태 관련 설비, 도태 방법, 도태된 수평아리의 처리 등에 대한 전반적 실태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수평아리를 포함한 가축의 도태 관행은 동물복지를 심각하게 침해할 뿐 아니라 현행법 위반 소지도 있다”며 “도태 대상 및 방법, 절차 등을 정비하면서 동시에 불필요한 도태를 줄이기 위한 기술 개발 지원 등의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고서 전문은 동물자유연대 누리집에서 볼 수 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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