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참여 6540명에 발목 잡히나”… 삼성전자, 반도체 ‘골든타임’에 예상치 못한 변수
설비관리, 유지 엔지니어 다수 참여
8인치 생산라인에 파업 피해 집중될 듯
삼성전자 “대체 인력 투입해 영향 최소화”
삼성전자는 사내 최대 노동조합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이 8일부터 사흘 간 총파업에 돌입하면서 비상이 걸렸다. 삼성전자에서 ‘무임금 무노동’ 파업이 발생한 건 창사 이래 처음이다. 이번 총파업엔 6500명 이상의 조합원이 참여해 생산 차질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전삼노는 이날 오전 경기 화성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앞에서 총파업 결의대회를 열고 이번 파업에 조합원 6540명이 참가했다고 밝혔다. 직군별로는 설비·제조·개발공정에서 5211명, 사업장별로는 반도체 생산라인이 있는 평택·화성·기흥사업장에서 4477명이 참여했다고 전삼노는 전했다. 이현국 전삼노 부위원장은 “설비 관리·유지 엔지니어들이 파업에 많이 참여한 만큼 생산 차질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극심한 부진을 겪었던 메모리 반도체 시황이 정상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총파업이 삼성전자의 상승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은 TSMC와 2나노 선단 공정 경쟁을 벌이고 있고, 차세대 메모리 격전지인 고대역폭메모리(HBM) 부문에서 SK하이닉스와 격차를 좁혀야 하는 등 갈 길이 먼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한 것이다. 파운드리는 파업 여파로 고객사 납기 일정을 맞추지 못할 경우 신뢰도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게 된다.
◇ 반도체 인력 9%가량 이탈… ”사측 반응 없으면 무기한 파업”
한국노총 산하 전삼노 조합원 규모는 전체 직원의 25% 수준인 3만657명으로, 조합원의 90%가 DS(반도체)부문 직원들이다. 이날 오전까지 총파업 의사를 밝힌 조합원 6540명은 전체 DS 직원 7만명 중 9.3% 규모다. 다만 현장에 참석한 조합원은 경찰 추산 3000여명으로 집계됐다.
전삼노가 사측에 요구하고 있는 건 ▲2024년도 기본인상률(5.1%)을 거부한 조합원 855명에게 더 높은 임금 인상률 적용 ▲경제적 부가가치(EVA) 방식의 초과 이익성과급(OPI) 제도 개선 ▲유급휴가 약속 이행 ▲무임금 파업으로 발생한 조합원들의 경제적 손실 보상 등이다.
노조는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총파업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앞서 전삼노는 이번 총파업의 목적을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차질’로 규정한 바 있다. 전삼노 측은 “당장 사흘 간 연속 총파업을 진행한 뒤, 계속 총파업을 이어갈지, 기간을 두고 15일부터 다시 총파업을 시작할지 논의 중”이라며 “사측이 이번 사흘 간의 파업 기간 동안 안건을 가져오지 않으면 계속 총파업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까지는 이날 결의대회를 시작으로 10일까지 총파업에 돌입, 9~10일엔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 갈 길 바쁜 삼성전자, 생산라인 곳곳서 대응책 마련 고심
삼성전자는 올 1분기에 이어 2분기에 ‘깜짝 실적’을 기록하며 반도체 호황기 국면에 접어든 상황이다. 범용 D램, 낸드플래시 등 주력 사업 부문이 견조한 시장 수요에 힘입어 호황기 수준의 수익성을 되찾아가고 있다. HBM의 경우 아직 대형 고객사인 엔비디아 수주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8~9월쯤 인증을 따내고 올 하반기 대규모 공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삼성 반도체 관계자는 “올 하반기가 삼성 반도체가 다시 도약하는데 중대한 골든타임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파업 리스크가 불거진 것에 대해 전영현 부회장(DS부문장)을 비롯한 삼성전자 경영진은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까지는 생산 차질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총파업이 길어질 경우 대체 인력이 부족해 생산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사업장이 평택, 기흥, 화성, 온양 등으로 나뉘어져 있는 데다 24시간 교대 근무조가 연달아 계속 구멍이 생길 경우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24시간 가동되는 반도체 생산라인이 한번 멈추면 손실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난다. 6년 전 삼성전자 평택사업장에서 28분 간 발생한 정전으로 500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측은 “대체 인력을 투입해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서는 파업 규모로 봤을 때 악영향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우선 당장 멈춰있는 설비를 가동할 엔지니어, 오퍼레이터 등이 장비를 정상화하는 데 시간이 필요할 뿐 아니라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지속적으로 교대 근무자를 투입하기가 어려워진다.
노조 조합원 사이에서는 자동화 비율이 가장 낮은 구형 8인치 웨이퍼 생산라인에서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한 조합원은 “현재 사람이 없어서 8인치 라인은 정지된 상태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손우목 전삼노 위원장은 “설비가 멈추면 안정화하는 데까지 최소 하루 이상 걸리는 설비들도 많다”며 “오는 10일까지 파업을 한 뒤 생산이 정상 상태로 복귀하는 데까지만 해도 며칠이 더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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