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는 왜 ‘독이 든 성배’를 마셨나…축구대표팀 감독 선임 비하인드
클린스만 경질 이후 줄곧 축구협회 '1순위 카드'
선임 과정서 쌓인 축구팬 불신…홍명보 감독이 풀 과제
"거론되고 있는 외국인 감독들보다 내가 못한 평가를 받는 건 사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지난달 하순, 홍명보 감독은 가까운 지인에게 이와 같은 속내를 털어놓은 일이 있었다. 당시는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회가 12명의 대표팀 사령탑 후보를 선정한 직후였다. 이 명단에는 홍명보, 김도훈 감독 외에 10명의 외인 감독이 있었는데 알려진 면면은 최종 협상 후보 2인까지 남았던 다비드 바그너, 거스 포옛 외에 모라이스 전 전북 현대 감독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홍명보 감독이 언급한 '자존심'은 이 대목에서 드러난다. 바그너(독일)와 포옛(우루과이), 모라이스(포르투갈) 수준의 외국인 사령탑이 과연 한국 축구가 '모셔와야' 할 정도의 인물들인가. 바그너 감독의 주요 경력은 샬케(독일), 영보이스(스위스), 노리치 시티(잉글랜드 2부) 등의 사령탑이었고, 포옛 역시 선덜랜드(잉글랜드)와 그리스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경력이 있다.
■홍명보 감독 "나보다 더 뛰어난 외국인 감독 데려올 수 없다면…"
이들 외국인 감독 후보들은 사실 전력 강화위원회가 5월 초 1차로 압축했던 인물들보다 무게감이 현저히 떨어진다. 최종 협상 과정에서 영입에 실패한 제시 마시 현 캐나다 감독이나 헤수스 카사스(스페인) 이라크 감독에 미치지 못한다. K리그 울산의 사령탑으로 리그 2연패를 달성했고,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축구 사상 최초의 동메달 획득, 그리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본선 경험이 있는 홍명보 감독이 이들보다 못한 평가를 받을 이유는 없어 보인다.
국내파 감독으로써 자존심을 강조한 홍 감독의 소신은 지난달 30일 포항전 직전 사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드러났다. 홍 감독은 "나보다 더 좋은 경험, 경력, 성과를 낸 사람을 데리고 오면 자연스럽게 내 이름은 나오지 않을 거로 생각한다"고 말했는데,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홍 감독이 대표팀을 맡을 생각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됐지만, 역으로 말하자면 '자신보다 더 뛰어난 외국인 감독을 데려오지 못한다면 감독직을 맡을 수도 있다'는 뉘앙스로 해석될 여지가 있었다.
■홍명보 감독, 축구협회 부동의 '1순위 카드'
엄밀히 말해 지난 2월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중도 경질된 이후 홍명보 감독은 대표팀 사령탑 후보 1순위를 놓친 적이 없다.
다만 K리그 개막이란 시점에 맞물려 축구팬들의 반발로 홍명보 카드를 자의 반 타의 반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은 4월, 11명의 사령탑 후보에 4명의 국내파 사령탑을 올려놨는데 이 역시 홍명보-황선홍-김기동-이정효였다. 4월 말 올림픽 본선행 실패로 황선홍 카드가 낙마하자, 외국인 사령탑으로 선회했다가 협상 실패로 원점에 돌아왔을 때도 국내파 감독 후보 2인으로 홍명보 감독은 김도훈 감독과 함께 이름을 올렸다.
결국, 축구협회와 전력 강화위원회는 클린스만 경질 이후부터 차기 사령탑 후보로 홍명보 감독 카드를 내내 놓지 않고 있었고, 예산의 한계 속 명성과 뛰어난 실력을 갖춘 외국인 사령탑을 현 시점 영입하는 것이 불가능한 현실을 확인하게 되면서, 홍명보 감독 외에 대안 불가라는 최종 결론에 이르렀던 것으로 보인다.
축구계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홍 감독은 5일 저녁 리그 경기가 끝난 뒤 이임생 기술 이사와 면담을 했고, 이튿날 축구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원로와 대화를 나눈 끝에 대표팀 지휘봉을 잡기로 결정했다.
■'역대 최악의 감독 선임 행정'…홍명보 신임 감독이 풀어야 할 숙제
돌고 돌아 홍명보였고, 결국 축구협회는 약 5개월간 헛심만 쓴 채 애초 1순위 카드로 점찍었던 홍명보 감독을 대표팀 사령탑에 선임했다. 이 과정에서 아쉬운 건 크게 두 가지다. 협회의 협상 능력과 전력 강화위원회의 보안 유지 실패. 협회는 전임 클린스만 감독에 대한 위약금 부담으로 인해 유명 외국인 사령탑을 상대로 제대로 된 협상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전력 강화위원회는 걸핏하면 후보자 면면을 언론에 유출해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혔다. 게다가 전력 강화위원회와 축구협회가 관심을 보인 후보자 중 상당수는 같은 월드컵 아시아 예선을 치르는 상대 국가인 이라크와 호주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경쟁국가의 감독을 빼오는 상식 밖의 행위여서 두고두고 축구팬들의 질타를 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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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범 기자 (kikiholic@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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