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견제’ 한뜻으로…필리핀·일본, 합동훈련·파병 길 열어
필리핀과 일본이 태평양에서 중국을 견제한다는 공통분모를 바탕으로 상호접근협정(RAA·일본명 ‘원활화 협정’)을 맺었다. 양국 간 파병과 합동 훈련이 용이해지며 군사 협력의 범위도 늘어날 전망이다.
8일(현지시간) AP통신·래플러에 따르면, 이날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이 마닐라 대통령궁에서 협정 서명식을 열어 필리핀과 일본 간 RAA 체결을 주재했다. 일본 측에선 가미카와 요코 외무상이 일본을 대표해 서명했으며, 필리핀에선 길버트 테오도로 국방장관이 서명했다.
RAA가 체결되며 양국은 군사 분야 협력의 길을 폭넓게 열었다. RAA를 체결하면 공동 훈련 등을 위해 상대국에 일시적으로 군대를 보낼 때 입국 심사가 면제되고 무기와 탄약 반입 절차가 간소해진다. 이전까지 양국의 군사적 교류는 전문가 파견과 인도적 지원 및 재해구호 작전에 국한됐으나, 이제는 실제 양자·다자간 군사훈련까지도 수행할 수 있다. 또한 필리핀의 억제력 강화를 위해 일본은 필리핀에 연안 감시 레이더를 제공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미국·필리핀의 연례 대규모 합동훈련인 ‘발리카탄’에 일본 자위대도 참관국 자격이 아닌 정식 참가국으로 참여할 수 있다. 협정 체결에 앞서 로미오 브라우너 주니어 필리핀군 사령관은 “일본이 훈련을 위해 필리핀에 들어오는 것을 허용할 것이다. 필리핀군과 자위대는 실제 군사작전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양국은 지난해 11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마닐라를 방문하면서 RAA 논의를 시작하기로 합의했으며 지난달 협상 주요 내용을 마련했다. 이날 서명한 RAA는 필리핀 상원의 승인을 받고 일본 의회의 비준을 받으면 발효된다.
이번 RAA에는 태평양에서 중국 견제라는 목표가 깔렸다. 필리핀은 남중국해(서필리핀해)에서 세컨드 토마스 암초(필리핀명 ‘아융인’·중국명 ‘런아이자오’)를 둘러싸고 중국과 충돌하고 있으며, 일본은 동중국해에서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두고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4월 미국·필리핀·일본 정상회의에서 3국은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중국의 행동을 두고 “심각한 우려”를 공동 표명하기도 했다.
마닐라 소재 싱크탱크 국제개발안보협력의 조슈아 에스페냐 부대표는 “RAA는 일본이 인도·태평양에서 더 적극적으로 안보를 수행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래플러에 밝혔다. 그는 “중국의 광범위한 능력이 일본에 도전이 될 수 있다. 일본이 오키나와-대만해협-루손해협-서필리핀해까지 이어지는 벨트에서 작전을 유지하려면 필리핀에 접근할 필요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필리핀으로서도 “스스로 보장할 수 없는 경계를 일본이 지켜준다면 안전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일본이 RAA를 체결한 건 호주와 영국에 이어 필리핀이 세 번째다. 필리핀은 미국 및 호주와 방문군협정(VFA)를 맺고 있다. 이번 RAA를 통해 필리핀은 필리핀·미국·일본·호주 4자 안보 협력체인 스쿼드(SQUAD)의 3개국 모두와 군사 협정을 맺게 됐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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