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는 왜 마음을 돌렸나…축구협회가 제안한 계약 조건은
집 찾아간 이임생의 간곡한 설득…"한국 축구를 위해 헌신해달라"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전국민적 관심을 불러 모은 차기 한국 축구대표팀 사령탑으로 내정된 홍명보 K리그1 울산 HD 감독은 꾸준하고, 완강하게 거절의 뜻을 밝혀왔다.
지난달 30일 포항 스틸러스와 경기 전 취재진과 만나서도 "내 입장은 항상 같으니 팬들께서는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난 5일 오후 11시 자택 앞에서 기다리던 이임생 대한축구협회 기술총괄이사를 만난 홍 감독은 돌연 입장을 뒤집고 대표팀 감독직 제안을 수락했다.
무엇이 홍 감독의 단호한 마음을 흔들었을까.
아직 홍 감독의 공식 입장이 나오지 않은 가운데 이 이사는 8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열린 브리핑을 통해 홍 감독과 최종 협상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를 밝혔다.
다비드 바그너, 거스 포옛 등 외국인 감독과 면담하러 유럽으로 떠났던 이 이사는 지난 5일 귀국해 홍 감독의 자택을 찾아갔다.
오후 11시에 약식으로 열린 '심야 회담'은 사실상 이 이사가 간곡하게 설득하고 홍 감독이 이를 듣는 자리였다.
이 이사가 제안한 조건은 파격적이었다. 한국 축구의 당면 과제는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이다. 오는 9월부터 이 대회 본선행을 결정하는 3차 예선이 열린다.
하지만 이 이사는 이를 넘어 2027년 1∼2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개최되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까지 임기를 보장하겠다고 제안했다.
이 이사는 "단기간 결과에 대해 평가하는 것보다 A대표팀과 연령별 대표팀의 연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드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또, 홍 감독의 전술을 보완하기 위해 세계 축구의 중심 유럽 출신의 코치를 적어도 2명 붙여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이 이사는 "(이런 조건을) 홍 감독님도 받아들였다. 홍 감독님의 풍부한 경험과 지식이 유럽 코치들과 조화가 이뤄진다면 A대표팀과 연령별 대표팀 간 연계성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연봉도 외국인 지도자 수준으로 크게 올렸다.
홍 감독은 프로축구 K리그1에서 최고 수준의 연봉을 받는 걸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홍 감독조차도 유럽 등에서 활약하는 지도자에 비하면 처우가 떨어진다.
이 이사는 "외국인 감독과 한국 감독의 연봉 차이가 있는데 이 부분도 당당하게 요구했다. 액수를 밝힐 수 없으나 이제 한국 감독들도 외국 감독 못지않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같은 객관적 조건 외 단호했던 홍 감독의 마음을 어지럽힌 건 바로 한국 축구에 대한 '책임'이었다.
홍 감독은 선수로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에 앞장섰고, 지도자로서는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 신화를 쓴 한국 축구의 '영웅'이다.
한일 월드컵의 성공은 홍 감독과 같은 '2002 영웅'을 여럿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 가운데 지금까지도 지도자로서 현장의 일선에서 한국 축구에 이바지하려 애쓰는 인물은 많지 않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1승도 거두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며 지도자로서 최악의 시기를 겪은 홍 감독은 이후에도 축구 현장을 떠나지 않고 여러 방식으로 책임을 다하려 했다.
대한축구협회 전무로 파울루 벤투 전 감독의 선임 작업을 지원하는 등 행정가로 활약했고, 이후에는 울산 지휘봉을 쥐고 구단의 17년 만의 우승과 2연패를 이끌며 팬들에게 기쁨을 안겼다.
한일 월드컵 이후 한국 축구의 영욕을 함께한 홍 감독으로서는 대표팀이 마땅한 수장을 구하지 못해 마냥 흔들리기만 하는 상황을 계속 지켜보기 어려웠을 터다.
이 이사는 "홍 감독님이 나를 만나주실까. 내가 만날 수 있을까, 이런 고민과 두려움이 있었다"면서 "홍 감독님을 처음 만났을 때 내가 평가하고 결정한 부분을 설명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왜 홍 감독님이 한국 축구를 위해 헌신해야 하는지 말씀드렸다. A대표팀뿐 아니라 연령별 대표와 연계성을 확보해서 대한축구협회 철학과 경기 모델을 확립한 걸 홍 감독님이 이끌어주십사 몇 차례 부탁드렸다"고 덧붙였다.
이 이사는 우리나라 대표 선수들이 월드컵을 목표로 빠르게 적응할 만한 축구 철학을 지닌 사령탑 후보가 현재로서는 홍 감독뿐임을 강조하며 설득했던 걸로 보인다.
이 이사는 "여러분은 울산 HD 축구를 보지 않았나. 빌드업, 기회 창출 K리그 1위"라며 "우리 한국 축구 대표 선수들이 (지금까지) 해온 스타일을 어떻게든 끌어올려 3차 예선을 통과해 월드컵으로 나가야 하는 그런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pual0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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