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트라우마’로 갈린 극우 열풍…자극 선동에 싫증 느끼기도[유럽 휩쓰는 극우]
英 총선서 노동당 압승…“브렉시트 등 이전 정부 정책 심판”
전문가들 “극우 정당들, 장기간 국민적 지지 유지하긴 어려워”
[헤럴드경제=김영철·김빛나·정목희 기자] 지난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나타난 강경우파 정당들의 득세는 주요국들 사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극우 돌풍이 최다 득표를 기록한 것은 물론 독일에서도 최초로 극우 정당이 유럽의회에 진출했다.
반면 북유럽 등 일부 국가에선 극우 정당이 약세를 보이는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자극적인 선동과 국가 우선주의에 유권자들이 싫증을 느낀 나머지 우파 정당에 표가 몰리지 않았다.
특히 지난 5일(현지시간) 영국 총선에서 노동당이 집권당인 보수당과 극우 성향의 개혁당을 상대로 압승을 거둔 것에 대해서도 유궈자들이 과거 브렉시트(Brexit)라는 ‘정치 트라우마’로 집권당에 등을 돌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럽 주요국에서 극우 정당들의 득세는 단순 자극적인 선동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고물가 등 미래가 불안정하다고 느끼는 젊은 층을 포함한 유권자들이 입맛에 맞춰 공약을 펼친 것이 지지 확보에 도움이 됐다는 평가다.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의 득표율은 올해 유럽의회 선거와 함께 조기 31.37%로, 프랑스 정당 중 최초로 유럽의회 선거에서 30%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나아가 지난 30일 치러진 조기 총선 1차 투표에서 RN은 33%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다.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강경 우파의 이탈리아형제당도 지난 2019년 유럽의회 선거 득표율이 8.98%에 불과했지만, 이번 선거에서 3배 이상의 득표율(28.76%)을 얻어 1위를 기록했다. 우익극단주의 성향의 독일대안당(AfD) 역시 집권여당인 기민당·기사당 연합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득표율(15.90%)을 보였다. 2019년 유럽의회 선거 득표율(11%)과 비교했을 때 독일의 다른 정당들보다 가장 높은 상승세다.
오정은 한성대 국제이주협력학과 교수는 “정당은 고정불변의 지지층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지지층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이러한 노력을 성공으로 이끄는데는 정당의 지도자의 역량이 중요하다”며 “RN은 단순하게 강경 발언을 반복하지 않고 지지층 확대를 위해 때로는 유연하고 온화한 이미지 전략을 적절히 구사해왔다”고 설명했다.
반면 북유럽 등 일부 국가에서도 극우 정당의 영향력은 점차 커지고 있었지만 올해 유럽의회 선거에선 오히려 퇴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짚었다.
극우 성향의 스웨덴민주당(SD)은 지난 201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15.3%의 득표율을 얻으면서 스웨덴 내 영향력을 넓히고 있었지만, 올해 선거에선 13.2%를 얻고 자국 주요 정당 내에서 4위의 성적을 거뒀다.
르몽드는 “SD는 스웨덴 국민 대다수의 반대에도 ‘유럽연합 탈퇴’(Swexit)를 배제하지 않고 있으며, 친러시아 성향을 보이는 정치그룹 ‘정체성과민주주의’(ID)와 함께 유럽의회에서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힌 바 있다”며 “북유럽 국가의 많은 유권자들에게 이 같은 행보는 ‘레드라인’이다”고 전했다.
덴마크에서도 반이민 정책을 내세우는 덴마크 인민당(DF)은 6.4%의 득표율을 얻으며 하락세를 걷고 있다.
특히 영국은 키어 스타머가 이끄는 노동당이 총선에서 압승, 14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뤘다. 브렉시트가 실패한 정책이었다고 생각해 포퓰리즘 정책을 내놓지 않은 노동당에 표심이 몰렸다는 평가다.
BBC와 ITV, 스카이 뉴스 등 방송 3사에 따르면 4일 오후 10시 투표 마감 직후 노동당이 하원 650석 중 410석으로 과반 의석 확보에 성공할 것으로 전망됐다. 극우 성향의 개혁당은 이번 총선에서 13석을 얻었다.
영국 유권자들은 코로나19 및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고물가, 영국해협을 통한 불법 이민 급증, 공공의료체계인 국민보건서비스(NHS) 마비 등에 보수당이 대처가 부족했던 것이 선거 결과로 이어졌다고 봤다. 영국 온라인 여론조사업체 유고브에 따르면 영국인 73%는 “14년 전보다 영국 상황이 나빠졌다”고 답했다.
노동당이 과격한 언행이나 정치적 수사보다는 진지한 태도와 실용적인 모습으로 국민적 신뢰를 쌓아 선거에 승리할 수 있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 3일 스타머 대표는 자신을 ‘국가의 하인’으로 칭하며 유권자를 향해 “변화를 원하면 변화에 투표하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우파 정당들의 약진에도 장기간 국민적 지지를 유지하기 어려운 나머지 약세를 보였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극우 정당이 장기 집권까지 이어지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앙헬 알론소 아로바 스페인 IE대 국제문제 교수는 헤럴드경제에 “일부 회원국에선 국민들이 극우파가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 잘못된 답을 내놓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고 평가했다.유럽정치센터장이자 코펜하겐 대학 교수인 마를렌 윈드는 북유럽 국가들의 극우정당들에 대해 “그들은 권력을 잡은 뒤로 추진력을 잃었다”고 분석했다.
오정은 교수도 “자극적인 언사가 지속될수록 사람들은 부담스러워하고 싫증을 느끼게 된다”며 “극우가 한동안 강세를 보일 수는 있지만, 민주주의가 발전한 다양성의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득세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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