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이어 佛도…극우 돌풍·우향우에 견제구, 유럽지형 다시 출렁
정책 급격변화 제동, 우크라 지원 등 서방 동맹 결속 일단 강화
美 트럼프 재집권 가능성은 국제정치 질서 재편 또 하나의 변수
(서울=연합뉴스) 박성민 기자 = 영국에서 보수당 집권세력에 대한 심판론으로 14년만의 정권교체가 이뤄진 데 이어 프랑스 총선 결선에서도 예상을 뒤엎고 좌파 연합이 1위를 차지하는 등 유럽에 거세게 불던 극우 돌풍 내지 우향우 바람에 일견 제동이 걸린 모양새다.
지난달 6∼9일 유럽의회 선거와 지난달 30일 치러진 프랑스 총선 1차 선거 등에서 연달아 확연하게 드러난 극우 득세로 정치·경제 연합체인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질서의 새판짜기 및 정책의 대변화가 예고됐던 상황에서 유럽 정치지형이 다시 한번 요동치고 있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 지원 전선을 포함, 극우 대약진으로 예고됐던 서방 동맹의 균열 가능성은 일단 수면 밑으로 가라앉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러나 4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고령 리스크 블랙홀로 대혼돈에 빠진 가운데 '미국 우선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귀환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은 여전히 변수로 남아 있다. 이 경우 국제 정세는 또다시 출렁일 수밖에 없다.
7일(현지시간) 치러진 프랑스 총선 결선 투표 결과 좌파 연합인 신민중전선(NFP) 182석,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집권 여당을 포함한 범여권 168석, 극우 국민연합(RN)은 143석을 각각 차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마린 르펜 의원이 이끄는 RN은 지난달 30일 1차 투표에서 33.2%를 득표해 1위를 차지하며 의회 1당 자리를 예약하는 듯했지만 결선 투표를 앞두고 좌파 연합과 범여권이 강력한 반극우 전선을 형성, 대대적인 단일화를 이루면서 3위로 추락했다.
이러한 대반전은 전혀 예상되지 못한 결과라는 점에서 대내외적으로 충격파를 낳고 있다. 의회 권력 장악과 총리 배출을 눈앞에 뒀던 RN의 희망을 단 일주일 만에 꺾어버린 결과로, RN이 공언해온 자국 우선주의로의 급격한 '우클릭' 역시 불발됐다.
영국은 브렉시트(Brexit·유럽연합 탈퇴)로 EU 회원국은 아니지만 영국과 프랑스가 유럽 민주주의 진영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 내지 상징성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영국 노동당의 집권과 프랑스 극우 포퓰리즘 정당의 1당 좌절로 급변 위기에 놓였던 유럽 국제정치 질서는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영국의 키어 스타머 새 정부가 EU와의 관계 강화, 우크라이나에 대한 변함없는 지원을 천명한 가운데 프랑스에서 RN이 일단 의회 장악에는 실패함에 따라 EU나 유럽 통합에 대한 회의론에 따른 우크라이나 지원 축소 등 RN이 예고해온 정책 변화는 곧바로 탄력을 받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앞서 지난 4일 영국 총선 결과 발표 당시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선거 결과는 영국에도 중대하며 전 세계에 울림을 줄 것"이라며 "많은 국가에서 우익 포퓰리스트들이 약진한 시기에 국제적인 중도좌파 정당으로 영국 정치가 되돌아갔기 때문"이라고 촌평한 바 있다.
영국 총선에서 극우 정당인 영국개혁당은 14.3%를 득표하면서 노동당(33.8%)과 보수당(23.7%)에 이어 3위를 차지, 원내 정당 진입의 성과를 거두며 존재감을 각인했지만 각 선거구에서 1위를 차지한 후보만 당선되는 '소선거구제' 때문에 의석수 면에서는 전체 650석의 0.76%밖에 되지 않는 5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그만큼 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서 미국이 주도해온 '반(反)러시아' 서방 동맹 역시 프랑스 극우 돌풍에 따른 균열 리스크를 하나 제거함에 따라 결속 관계는 계속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스타머 총리는 취임 직후 바이든 미 대통령,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잇따라 통화해 우크라이나 지지 등을 확인했고, EU 관계 강화를 위해 데이비드 래미 외무장관을 독일과 폴란드, 스웨덴으로 급파한 바 있다.
프랑스의 경우도 야당 연합이 승리함으로써 여당과 동거정부를 꾸리는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혼란이 이어지겠지만, NFP가 각종 정책에서 극우 정당과는 명확히 대척점에 서 있다는 점에서 이민이나 환경, 우크라이나 지원 등 기존 정책에는 큰 변화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대체적이다.
당장 이날 프랑스 총선 결과가 나오자 극우 약진에 반대해온 유럽 주요 지도자들은 일제히 환영의 뜻을 표했다.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엑스(X·옛 트위터)에 "파리에선 열정, 모스크바에선 실망, 키이우에선 안도. 바르샤바에선 충분히 행복"이라고 썼다.
하지만 여전히 유럽 내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피로도와 경제난, 이민 문제 등이 큰 쟁점으로 남아 있어 극우 약진은 언제든 다시 불붙을 수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11월5일 치러지는 미국 대선은 국제 정세를 흔들 또 하나의 변수로 꼽힌다.
지난달 27일 첫 대선후보 TV 토론에서 심각한 고령 리스크를 노출한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레이스 완주 의지를 거듭 확인하고 있지만 후보 사퇴론이 좀처럼 잠재워지지 않은 상황이다. 공화당 후보인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바이든과의 격차를 벌리면서 탈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백악관 재입성은 곧 미국 대외정책의 지각변동을 의미한다. 그가 동맹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주장해온 만큼 나토 소속 유럽의 동맹국은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고, 우크라이나 지원 정책 등의 향배도 바뀔 가능성이 크다.
min2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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