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무과실책임 전환, 배상은 보험(공제)으로 해결 검토 필요 [알아야 보이는 법(法)]
정부는 지난 2월 ‘의료개혁 4대 패키지’ 중 하나로 의료사고 안전망을 구축하겠다고 제시했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의료인의 형사처벌 부담 완화를 위해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을 제정하고, 환자에 대해서는 소송 전 조정, 중재 및 선제적 보상 활성화를 들었다.
의료계에서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에 대해 사망 부분이 특례에서 제외되었다는 점을 들어, 환자 측에서는 의료인을 위한 특례를 제정하는 것 자체나 입증 책임 전환에 관한 규정이 없다는 점을 들어 각각 반대하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의료사고를 둘러싼 문제점을 살펴보면 먼저 발생 책임을 현재처럼 과실이 있는지를 가지고 결정하는 ‘과실책임’을 들 수 있다. 의사와 환자가 당사자로서 대립해 자신의 주장을 증명해야 하는 ‘대립당사자 구조’도 지적된다. 이 두가지 구조적 문제에 대한 대안 없이는 갈등을 해결하기 어렵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러한 구조는 무엇보다 의사가 ‘방어진료’를 할 수밖에 없도록 한다. 환자 입장에서도 누구의 과실도 없다고 하면 현재의 제도 아래에서는 피해를 보상받을 방법이 없으므로 일반적인 법리상 책임을 부담하는 주체가 될 수 있는 의사나 의료기관에 책임을 물으려고 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의사나 의료기관은 그러한 주장이 제기됐다는 이유만으로 책임을 모두 부담할 수도 없으므로 최대한 부인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결국 의사·의료기관과 환자 사이에 불신만 조장될 뿐이다.
의료인은 민사소송으로 피고가 되거나 형사고소로 피고소인이 되는 것 자체를 막을 방법은 없고, 그 절차가 끝날 때까지 대응해야 한다. 최근에는 그 기간이 매우 길어져 소송으로 이어지면 설령 전부 승소하더라도 3~4년 가는 사례는 흔하고, 길게는 10년까지 가는 사건도 볼 수 있다. 환자도 소송을 제기하면 그 정도의 기간이 걸리는 것은 마찬가지다. 의료인 과실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도 환자에게 있으며, 승소하더라도 인정받는 손해액이 만족스럽지 못하기 일쑤다.
증명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환자 입장에선 의료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상대 과실을 주장해야 하는 만큼 어려움이 크다.
과실 책임이 과연 의료인에게 적정한 주의 의무를 부담하도록 하는 것인지와 그 책임이 인정됐을 때 배상해야 하는 금액이 적정하게 배분되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의료행위는 늘 안 좋은 결과가 뒤따를 수 있다.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한 책임을 부담해야 하는지는 의료와 관련된 사실상 모든 상황에서 문제가 된다. 현재의 구조에서는 의료인이 이에 대처하려면 항상 주의 의무를 다해 과실이 없도록 해야 한다. 또 이를 입증하기 위한 자료도 갖춰놓아야 한다. 그렇게 하더라도 분쟁이 제기되면 결과를 떠나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것 자체를 피할 수 없다. 차트에 기재돼 있지 않으면 실제 했던 사실관계도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 기재돼 있더라도 사실과 다르게 기재됐다는 취지의 주장에까지 대응하려면 차트 외 다른 증명방법도 갖춰놔야 할 수도 있다. 이것이 과연 의료인이 갖춰야 할 적정한 주의 의무의 모습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책임이 인정되었을 때의 배상액 또한 향후 치료비, 개호비(육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온전치 않은 이를 곁에서 보살피는 데에 드는 돈), 일실수익(사고로 잃어버린 장래 수익), 위자료 등은 문제가 된 의료행위 자체의 가액과는 무관하게 결정되므로 경우에 따라선 의료인이 감당하기 힘든 정도의 금액을 부담하게 될 수 있다.
책임 제한 등을 이유로 실제 입은 손해를 모두 보전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는 환자 또한 많다. 이런 탓에 상대에 민사가 아닌 형사적인 책임을 물으면서 합의를 통해 해결하려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비극적 전개는 현재의 제도가 유발한 측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택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의료사고와 관련해 무과실책임으로 전환하고, 배상 문제는 보험이나 공제로 해결하는 방안이다. 현재 의료 분야에서는 분만 관련 사망사고와 예방 접종으로 인한 부작용이 무과실책임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이를 전면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학교 안전사고에 대한 공제제도가 무과실책임인데, 이에 대한 대법원 판례(2016다208389)의 내용을 의료사고에 관한 것으로 바꿔보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제도는 의료사고를 예방하고, 의료인과 환자가 이로 인해 입은 피해를 신속·적정하게 보상하기 위한 사업의 실시에 관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또 의료인 등에게 의료사고의 예방에 관한 책무를 부과하고, 의료사고가 발생했으면 의료인 등에게 그 책임이 있는지 묻지 않고 피해를 본 환자 등에게 보상을 지급한다. 부득이 피해를 봤다면 이를 신속하고 적정하게 보상해 실질적인 의료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을 취지로 한다.
학교안전법에서는 학교안전공제중앙회를 설립해 학교배상책임공제가 운영되고 있다.
만약 위와 같은 제도가 의료계에도 도입된다면 이른바 ‘의료기관안전공제회’를 설립해 의료배상책임공제를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배상책임공제는 법에 규정한 것 외에는 과실책임이나 과실상계, 책임 제한의 법리가 적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점도 같이 도입되면 환자가 의료인의 과실을 증명할 필요가 없게 되고, 손해액도 특별한 규정이 없는 이상 감액되지 않으므로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의료인은 항상 자신의 과실이 없다는 점에 관한 근거자료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무과실책임으로 전환되면 민사 절차는 자동차 사고에서와 같이 기관이나 보험사가 주도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보상액이 적정하게 결정된다면 형사 절차가 제기될 확률은 상대적으로 낮아지며, 제기되더라도 합의 등으로 종결될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최종 결정된 금액의 지급도 기관이나 보험사가 하게 되므로 의사나 의료기관이 거액을 지급하게 될 위험도 회피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의료인의 형사책임을 완화하는 방향의 입법이 환자의 피해를 전보하는 것과 상충하는 것처럼 보여 반대하는 의견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의료사고에서 수사나 형사재판으로 진행된 여파로 많은 의료인이 떠나거나 지원하지 않는 일이 없지 않았다. 현재대로 가면 앞으로도 그러한 추세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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