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기의 HR 이야기] '직장인' 아닌 '직업인'으로 구성원 의식 변화…업무 집중도 상승

한준기 솔브릿지 국제경영대학 교수 2024. 7. 8.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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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셔터스톡

이제는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오래된 추억 보따리를 풀어본다. 어느 날 대표이사가 필자를 호출한 적이 있다. 그러고는 대뜸 “얼마 전에 책 한 권 썼다며?”라고 따지듯이 물었다. 사실이기에 그렇다고 했다. 그는 “왜 사전에 말 한마디 없이 그렇게 본인 멋대로 행동했냐”며 격앙된 목소리와 불쾌한 표정으로 필자를 다그쳤다. 잠시 당황스러웠다. 내가 정말 잘못했던 것일까.

그렇다. 잘못한 것이다. 취업규칙상으론 하자가 없지만, 통상적인 ‘조직 생활’의 관례나 규범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잘못한 것이다. 그것도 임원이라는 사람이 말이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주관적 관점에서는 크게 잘못한 게 없다고 판단했다. 대한민국 국민은 창작의 자유를 갖고 있다.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피해를 주는 내용이 아니었다. 회사에 해가 되는 내용, 기밀 사항, 부정적인 이미지를 줄 수 있는 내용은 저술에 포함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전에 몇 차례 출간했을 때도 기존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사전 허락을 받지는 않았다. 오히려 차후에 그들이 긍정적 시각으로 격려해 줬던 개인적인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시시비비 논쟁보다 필자를 더 힘들게 한 일은 그다음에 벌어졌다. 대표이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책 쓸 정도로 여유 있는 것을 보니 진짜 회사 일은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를 점검해 봐야겠어!” 그래서 계획에도 없던 전 직원 대상 인사부 업무 성과 만족도 설문 조사가 급작스레 진행됐다. 다행히 설문 조사 결과는 대체로 양호했고, 문제 될 코멘트도 전혀 없었기에 한동안 대표이사는 이 집필 문제로 시비를 걸지는 않았다.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 발전 필요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기업과 구성원 간 동상이몽의 정도는 심화됐다. 경영자와 일반 직원은 서로 아주 많이 다른 생각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절대다수의 리더는 전통적 조직 관리 마인드에 머물러 있는 듯 보인다. 이끄는 ‘리더’가 아닌 관리· 감독하는 ‘관리자’ 역할에 더 함몰돼 있어서다. 팬데믹 상황이 극에 달해서 절대다수 기업이 재택근무를 할 수밖에 없었던 시기, 기업의 ‘관리자’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애로 사항 중 하나는 ‘직원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불안해서 미치겠다’였다. 도대체 농땡이를 치는 것은 아닌가, 일은 제대로 하는 것인지 못 믿겠다는 것이었다.

그럼, 눈에 잘 띄는 곳에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으면 일을 잘하는 것인가. 이러한 생각은 참으로 전략적이지 못한 게 아닌가. 상호 간 명확히 동의한 핵심성과지표(KPI·Key Performance In-dicator)와 일하는 방식에 대한 거버넌스만 투명하면 성과를 내지 못했을 때 질책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필자는 10년 가까이 글로벌 본사에 있는 직속 상사와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일하지 못하는 환경에 있었다. 매트릭스 조직 특성상 일하는 나라가 서로 달랐고 1년에 기껏해야 4~5번 정도만 대면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큰 불만도, 불안도 없었고, 일도 잘 돌아갔다.

“당신 커리어의 꿈은 무엇이고, 다음 단계 커리어 목표는 무엇인가요.” “내일 당신이 이 일(포지션)을 그만둔다면, 누가 당신 자리를 승계할 수 있을까요.” 필자가 자타가 공인하는 글로벌 톱 클래스 다국적기업의 임원으로 일할 때 본부의 빅 보스는 잊을 만하면 이런 질문을 하곤 했다. 이 질문에 대한 투명하고 구체적인 답변을 못 할 경우에는 뭔가 부족한 리더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한술 더 떠서 우리는 외부 전문가와 함께 이런 주제로 몇 시간짜리 워크숍이나 특강도 이따금 진행했다. 커리어를 추진해 나가는 원칙, 외부 시장과 연결하는 방법, 외부 전문가와 네트워킹하는 방법 등이 특강에서 단골 소재로 등장했다.

이런 주제에 대해 근거를 갖고 자신 있게 답변할 수 있다면, 우리는 ‘직장인’이 아닌 ‘직업인’ 반열에 들어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직업인은 필자가 좋아하는 용어로, 문제 해결사이고 조직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사람을 뜻한다.

한준기 솔브릿지 국제경영대학 교수고려대, 한국외국어대 경영학 박사, 전 IGM 세계경영연구원 전임교수, 전 성균관대 글로벌 MBA 스쿨 겸임교수, 전 한국 마이크로소프트 인사총괄임원

'직업인'의 세 가지 공통점

직업인은 공통점이 세 가지 있다. 우선, 자기가 하는 일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앉으나 서나 거의 일 생각뿐이다. 한마디로 일에 남다른 열정이 있다. 둘째, 다른 사람보다 그 일을 훨씬 잘 해낸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성과가 좋을 수밖에 없다. 끝으로, 자신이 하는 일에 늘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일이 가치 있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가끔 회사를 원망할지언정 자기 일을 미워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다수의 전통적 샐러리맨에게선 이런 점을 발견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그냥 직장인이다. 어제도 출근했기 때문에 오늘도 출근하고, 힘들고 재미없지만 가장으로서 먹고살기 위해 일터에 나타난 성실하고 고분고분한 ‘직장인’. 그들이 가득한 조직의 미래는 그렇게 밝지도 않고 역동적일 수도 없다.

그러면 관성화된 직장인을 줄이고 주도적인 직업인을 양성하기 위해 실천해야 할 원칙은 무엇일까.

첫째, 변화를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필자가 이전에 숱하게 경험한 미국이나 서유럽 회사처럼 완전 개방된 경력직 중심의 노동시장으로 급속하게 개편됐다. 공채 문화, 기수 문화가 사라지고 실력과 경험 중심으로 인재를 확보해 나가고 있다. 외인부대 같다고나 할까. 외인부대에는 검증된 실력이 우선이다.

둘째, 새로운 환경에 맞는 상시적인 비즈니스 운영의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물론 외인부대는 실력이 우선이지만, 서로 작업하면서 지켜야 할 룰과 팀워크가 무너지면 성과는 고사하고 조직이 와해할 수 있다. 새로운 환경에 맞게 일하는 방식에 대한 공감대가 확립돼야 하고, 관리자의 성숙한 리더십도 함께 따라와야 한다.

셋째, 전향적인 성장 중심의 상시적 성과 관리와 커리어 역량 개발 프로그램 제공이 필요하다. 직업인은 대개가 외부와 연결돼 있고, 상대적으로 유동성이 높다. 시장 가치가 높은 사람이라는 말이다. 현재의 조직에서 성장이 막혀버리고 자꾸 감시와 족쇄만 채워진다면 외부로 눈을 돌리게 된다. 이는 결국 조직의 손해로 연결된다. 성장 중심의 상시적 성과 관리 시스템과 그들의 커리어 역량 개발 프로그램을 디자인해 줄 필요가 있다. 조직 안에서도 충분히 상호 윈윈할 수 있는 여건이 돼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된다.

마지막으로, 경영자와 리더는 비현실적 꿈을 접어두자. 고분고분하고 말 잘 들어주는 실력 있는 직업인이 분명히 많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 불과하다. 이미 관성화된 직장인도 언젠가 어떻게든 탁월한 직업인이 될 것이라는 전략적이지 못한 접근은 하지 말자.

조직 성장할 '길' 조성이 중요

이러한 변화의 궁극적 지향점은 결국 ‘길’ 을 만드는 것이다. 조직이 현재에 머물지 않고 더 탄탄하게 성장할 수 있는 길 말이다. 더 좋은 시장의 인재가 회사로 들어올 수 있는 길, 기존 구성원이, 또 선배들이 새로운 도전을 찾아 건강하게 외지로 떠나는 것도 응원해 줄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진입한 경력직 중심의 개방화된 노동시장 구조에서 핵심 인재와 비핵심 인재 그룹 간 역량과 몸값의 간극은 더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기업의 핵심 인재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밀레니얼세대(1981~96년생)나 진짜 ‘직업인’은 직장 선택의 중요한 기준으로 자신의 역량을 얼마나 성장시킬 수 있고, 회사라는 틀 속에서도이전보다 더 많은 자유와 운신의 폭이 있는지를 꼭 포함한다.

중국은 성을 쌓았고, 로마는 길을 만들었다. 이제 기업은 더 늦기 전에 뛰어난 인재가 오갈 길을 만들고 플랫폼을 구축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런 문화가 축적되고 철학이 뿌리를 내리면 실력 있는 ‘직업인’이 계속 제 발로 찾아와 오래 그곳에 머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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