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의 사진집 이야기 <77> 바바라 마르스트란드(Barbara Marstrand)의 '10대들의 정물(Still Life of Teenagers)'] 덴마크 청소년의 방으로 본 10대들의 삶

2024. 7. 8.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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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저자가 덴마크 전역에서 만난 10대 청소년들의 60개 방을 촬영한 사진이 담겼다. 청소년들에게 있어 방이라는 공간은 비록 작지만, 이들의 물건을 담고 있고 각자의 문화적 취향을 전시하는 공간이다. 작가는 이들의 공간과 그 안에 담긴 물건을 통해, 이들이 세상과 어떻게 소통하는지 그리고 현재를 어떠한 방식으로 살아가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사진 김진영

스틸라이프(Still Life)는 미술에서 정물을 주제로 한 그림이나 사진을 의미한다. 정물화 혹은 정물 사진이라고도 불리며 과일, 꽃, 식기, 책, 악기 등 다양한 사물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가장 대표적인 스틸라이프 작품으로는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 사이에서 발전한 그림을 떠올릴 수 있다. 17세기 네덜란드 스틸라이프 회화는 정교하게 선택되고 배치된 물체의 형태, 색채, 질감 등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또한 해골은 죽음을, 시든 꽃은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등 풍부한 상징성을 특징으로 한다.

전통적인 정물 사진 역시 고전 회화의 영향을 받아 정교하고 세밀한 구성을 중시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면서 정물 사진은 전통적인 틀에서 벗어나 더 자유롭고 창의적인 접근 방식을 통해 다양한 형식과 주제로 발전되었다. 사물의 배열과 구성이 자유로워지고, 일상적인 물건부터 공산품, 버려진 물건, 자연물 등 다양한 소재로 확장됐다.

예술의 소재로 잘 다뤄지지 않는 사람, 장소, 사물을 통해 동시대 문화를 탐구하는 덴마크 사진가 바바라 마르스트란드(Barbara Marstrand)가 주목한 것은 10대 청소년들이 가지고 있는 물건이었다.

각자의 취향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개인적인 추억이 가득하면서도 동시대의 다양한 문화적 요소가 담겨있는 이들의 물건은 그간 우리가 주목하지 않았지만 정물 사진의 훌륭한 소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김진영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마르스트란드는 자신의 네트워크와 입소문을 통해 그리고 때때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이용해 도시, 작은 시골 마을, 심지어 가장 작은 섬에 이르기까지 덴마크 전역에서 10대 청소년들을 만나 총 60개의 방을 촬영해 ‘10대들의 정물(Still Life of Teenagers)’ 을 완성했다.

청소년들에게 있어 방이라는 공간은 비록 작지만, 이들의 물건을 담고 있고 각자의 문화적 취향을 전시하는 공간이다. 작가는 이들의 공간과 그 안에 담긴 물건을 통해, 이들이 세상과 어떻게 소통하는지 그리고 현재를어떠한 방식으로 살아가는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10대들의 방은 사진이나 포스터가 벽을 가득 메우고 있고, 인형이나 소품이 책상이나 침실 한편에 놓여 있으며, 바닥에는 물건이 흩어져 있고, 옷장에는 옷부터 온갖 종류의 장신구가 가득하다. 대체로 정돈되어 있지 않은 침대 위에는 이런저런 물건들이 놓여 있고, 창턱에는 빈 병 컬렉션이 늘어서 있으며, 책상 의자 위에는 세탁물 더미가 쌓여 있다. 화장품이나 미용 제품, 악기나 스포츠 장비, 컴퓨터나 비디오 게임기 등 각자의 취향이 반영된 물건부터 빈 접시나 수많은 케이블 등 일상의 잡동사니가 방을 채우고 있다. 일상에 남겨진 임의적인 흔적들이지만 여기에는 각자의 삶에 대한 정보와 이야기의 단서들이 숨겨져 있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나를 가장 매료시켰던 것은 개별 방에 나타난 많은 세부 사항과 다양한 미학이었다. 나는 이들의 방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지 못했기에 항상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여러 번 방문한 후 몇 가지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지만 항상 계속해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바바라 마르스트란드(Barbara Marstrand)의 ‘10대들의 정물(Still Life of Teenagers)’ 표지. 사진 김진영

이 책에 인물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독자는 방의 주인이 어떤 음악 취향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취미가 있는지, 어떤 종류의 옷을 좋아하는지 사진 속 사물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오히려 인물이 등장하지 않기에 방 안의 온갖 사물에 집중하여 사진을 보게 만든다. 우리가 가볍게 여기거나 간과하는 방이라는 공간과 그 안의 물건들이 사실 방 안팎에서 펼쳐지는 한 사람의 삶에 대한 정보와 이야기로 가득 차 있음을 이 사진들은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사진 속 공간은 아무도 없이 비어있지만, 활기로 가득 차 있다.

마르스트란드가 덴마크 10대 청소년들의 삶을 드러내기 위해 택한 방식은 이처럼 인물을 직접 보여주기보다 사물을 통한 정보로 인물에 관해 생각하고 추론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일상생활에서 우리 주변에 있는 사물에 관심을 갖고, 그것들이 어떤 생각을 불러일으키는지 관찰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직 추론할 수 있는 것을 통해서만 인물에 대해 알 수 있는데, 이는 사람을 묘사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이는 독자에게 다양한 생각의 가능성을 제공하고 상상할 여지를 많이 남긴다.”

이러한 시선으로 일상에 놓여 있는 주변 사물을 둘러보면, 그 사물들이 단순히 물건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각 물건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일상과 개성을 반영하며, 그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마르스트란드의 시선은 이처럼 사물을 통해 인물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또한 이 책이 고전적인 정물 사진의 전통과 달리 10대들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사물을 보여준 것에 걸맞게, 이 책은 전형적인 책의 형태를 탈피했다. 부드러운 보라색 표지와 위아래로 빠져나온 제본실은 이들의 방 어딘가에서 발견된 일기장을 연상하게 한다.

이 책은 청소년기라는 특별한 시기에 대한향수와 함께, 현재 청소년들이 만들어 가는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어린 시절은 지났지만, 성인이 되기 전인 그 중간 단계에서, 우리는 각자의 작은 방 안에서 그리고 수많은 나의 물건 틈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방은 나만의 안식처이자, 나를 표현하는 공간이 된다. 벽에 무언가를 붙이고, 물건을 여기저기에 배치하는 몸짓에는 그 시기만의 특별한 창의성과 장난기가 발산된다. 10대들의 방과 물건에는 이들의 일상이 미학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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