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아무것도 놓치지 않는 '연기고수' 김희애

아이즈 ize 조성경(칼럼니스트) 2024. 7. 8.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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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조성경(칼럼니스트)

사진=넷플릭스

"놓치지 않을 거예요."

배우 김희애가 모델로 나서 공전의 히트를 친 화장품 광고 카피 문구다. 김희애가 해당 제품의 전속 모델로 십수 년을 활동해서 뇌리에 박힌 탓에 그 말이 그냥 김희애와 등식화된다. 그런데 너무 오래되다 보니 심드렁해진 나머지 그 말의 진짜 위력을 몰랐던 것 같다.

흐트러짐 없이 단정한 여성미를 뽐내는 김희애는 빼어난 미모도 미모지만, 그의 연기력을 논함에 있어서도 이견이 없는 실력자다. 그래서 시대를 풍미했고, 지금껏 안방과 스크린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미모나 연기력, 무엇 하나 놓치지 않고 지켜온 덕분이다. 1982년 CF모델로 연예계에 입문해 이듬해 영화 '스무해 첫째날'로 데뷔했으니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뀐 시간이다. 결혼 후 출산과 육아 등 가정을 돌보느라 공백이 있던 시기도 있지만, 큰 부침 없이 꾸준했다.

그 긴 세월 동안 얼마나 치열했을까.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돌풍'(극본 박경수, 연출 김용완)에서 흑색선전에 능한 맹렬한 정치인 정수진 역으로 활약한 모습을 보다 보면 새삼 깨닫게 된다. 김희애가 최근 대표작인 '밀회'(2014)나 '부부의 세계'(2020)로 센세이션을 일으켰을 때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내밀한 치열함이 정수진을 통해 보인 것이다.

사진=넷플릭스

'돌풍'은 추잡한 정·재계를 향한 주인공의 분노가 정치판에 걷잡을 수 없는 회오리 바람을 일으키는 정치 드라마다. 더러운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분연히 일어난 국무총리 박동호(설경구)가 폭주 끝에 돌풍을 일으키는 전개인데, 그 폭주 기관차에 기름을 붓는 게 바로 박동호의 정적(政敵) 정수진이다.

박동호가 정권의 부정부패를 끊어내겠다고 장일준(김홍파) 대통령을 시해하는 충격적인 이야기로 드라마의 포문이 열리면 정권을 찬탈하려는 박동호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를 저지하려는 정수진의 맞대결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휘몰아친다. 둘 중 누구도 '적당히' 하는 게 없이 몰아붙이니 시선을 뗄 틈 없이 몰입감이 엄청나다.

그러나 끝끝내 박동호가 돌풍을 일으킬 수 있는 건 그를 벼랑 끝까지 몰고 간 정수진이 있어서다. 죄지은 자들이 부끄러워하는 세상을 꿈꾸는 박동호에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뻔뻔함에도 염치라고는 없는 정수진은 최고의 명분이다.

사진=넷플릭스

박동호 역시 완전무결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가 비장하게 설파하는 정의라는 명분에 시청자들이 조금이라도 공감할 수 있게 되는 이유도 정수진이 더 극악무도하기 때문이다. 정수진의 패악에 기함하며 박동호를 두둔하게 되는 것이다.

민주 투사에서 킹메이커로 경제부총리에까지 오른 정수진은 장일준이라는 정치적 아버지의 허물을 덮기 위해, 그리고 남편 한민호(이해영)의 과오를 감추기 위해 온갖 중상모략을 서슴지 않는다. 박동호를 막기 위해 그보다 더한 짓도 한다.

그런 정수진을 김희애가 촘촘하고 섬세하게 그려내며 감탄사를 터뜨리게 한다. 김희애의 흡인력이야 두말하면 잔소리일 만큼 늘 대단했지만, 이번 '돌풍'을 통해서 또 한 번 다시 보게 만들었다. 김희애는 정수진에게 숨을 불어넣어 시청자들도 정수진의 감각 하나하나 다 느낄 수 있게 했다. 

사진=넷플릭스

'돌풍'의 김희애는 정수진을 통해 추악하고 치졸한 인간의 민낯을 보게 하는 뛰어난 흡인력을 확인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본성을 관찰하게 하는 재미까지 선사한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리고 살기 위해 집요하고 맹렬하게 달리는 정수진을 진짜 살아있는 인물로 구현해내 보는 이로 하여금 욕하게 만들면서도, 공감은 아니지만 인간 정수진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놀라운 설득력이다.

그러니 '돌풍'은 정수진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일지 않았을 바람이고, 김희애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드라마다. 설경구가 끌었지만, 김희애가 밀어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화제성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설경구의 비장한 대사들이 시청자들의 폐부를 찌를 수 있었던 건, 김희애가 선동과 선전의 정치로 패악을 저지르는 모습을 너무도 실감 나게 그려준 덕분이다.

그럼에도 김희애는 며칠 전 인터뷰에서는 발연기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고 각오하고, 딕션만 잘 전달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연기했다고 털어놨다. 정수진의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표현해내느라, 시청자들에게 하나하나 꼼꼼히 잘 전달하느라 얼마나 애썼는지 알게 하는 말들이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편안한 연기도 하고 싶다고. 자신은 다 잘한다고. 김희애는 감독들이 그 사실을 잊은 것 같다고 일부러 한 말이었지만, 아니다. 많은 감독을 비롯해 제작진들은 다 잘 안다. 김희애는 뭐든 놓치지 않고 잘 해낸다는 걸. 아마 기회가 있었다면 답했을 것이다. "암요, 알죠, 당신이 다 잘하는 거. 그래서 놓치지 않을 거예요. 좋은 작품일수록, 어려운 역할일수록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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