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국방부 '5천 명 증언록' 60년 비밀 뚫다
뉴스타파가 국방부를 상대로 낸 한국전쟁 참전자 5,000명 증언록 공개 행정소송에서 승소했다. 지난 6월 27일 서울행정법원은 국방부에 60년가량 비공개 대상이던 한국전쟁 참전자 증언록 전체를 공개하라고 결정했다.
‘6·25전쟁 참전자 증언록’은 국방부 산하 군사편찬연구소의 전신인 전사편찬위원회가 1960년대 중반부터 약 10년간 한국전쟁에 참전한 육군 1사단장 김석원, 해병 사령관 신현준, 해군 참모총장 손원일, 육본 정보국장 장도영 등 한국전쟁 당시 국군 지휘부와 위관급 이상 장교 등을 포함해 참전자 5,000여 명의 증언을 채록한 자료다.
뉴스타파 vs. 국방부
지난해 10월 뉴스타파 취재진은 ‘6·25전쟁 참전자 증언록’의 존재를 확인하고 국방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 당시 국방부가 내세운 비공개 이유는 “개인 사생활 침해”였다. 또한 국방부는 “증언자의 요청에 따라 비공개를 전제로 작성된 자료”라고 주장했다.
뉴스타파는 국방부의 비공개 결정에 맞서 ‘정보공개 거부 처분을 취소하라’는 행정소송을 지난해 11월 27일 제기했다. 심리 과정에서 국방부 산하 군사편찬연구소는 해당 기록을 공개할 수 없는 이유로 구술 자료의 부정확성 등을 들었다. “개인의 주관적 기억에 의해 작성된 내용으로 증언 자료 자체는 개인의 주장일 뿐 역사적 사실로 단정하기 어렵고, 사실 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내용들이 기술되어 있기 때문에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안병욱 가톨릭대학교 국사학과 명예교수는 “그런 설명이야말로 비밀주의에 빠지려고 하는 변명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사람들의 증언에는 왜곡, 본인의 착각 또는 의도적인 변형도 있을 수 있다. (증언이) 하나만 있을 때는 왜곡될 수 있지만, 이 경우 5,000여 명의 방대한 자료이기 때문에 서로 교차해서 검증하고 또 이미 알려진 한국전쟁에 관련된 여러 사실을 대비해서 살펴보게 되면 그 자료의 정확성이나 부정확성은 크게 문제 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뉴스타파 1심 승소
7개월간의 심리 끝에 서울행정법원(5부 재판부, 판사 김순열)은 뉴스타파의 청구를 인용해 ‘증언록을 전체 공개하되, 진술자의 인적 사항은 비공개하라’고 판결했다. 비공개에 해당하는 정보는 “진술자의 성명, 당시 소속, 계급, 직책, 출생지, 현직 및 주소”다.
또한 재판부는 “지휘관의 행적, 명령 등 공적 활동과 관련된 내용은 지휘관의 사생활의 비밀이나 자유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번 정보공개 행정소송에서 뉴스타파를 대리한 하승수 변호사는 “진술자들의 인적 사항만 비공개로 하고, 진술 내용 자체는 다 공개하고, 그 진술 내용에 나오는 지휘관들과 관련된 부분들은 공개 대상이다.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중요한 역사적 자료인데 6·25 전쟁 참전자 증언록이 공개 대상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6·25전쟁은 이미 74년 전의 사건이고 이에 관한 참전자들의 증언 역시 50년이나 전에 이루어진 것으로서 역사적 평가가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고 봤다.
재판부는 심리 과정에서 국방부 측으로부터 증언록 샘플을 30개가량 받아 검토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하승수 변호사는 “국방부가 비공개 결정을 남발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재판부가 (증언록을) 샘플로 직접 봤는데 내용을 보니 전부 비공개할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안병욱 교수는 이번 행정소송 결과와 관련해 “국방부가 자료를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불필요하게 재판까지 간 것 아니냐”고 말하며 “국방부가 숨겨놓거나, 무심하게 방치하고 있는 자료들에 대해 재점검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역사 법정의 증언과 같은 증언록
앞서 뉴스타파는 한국전쟁 70주년 다큐멘터리 <당신이 보지 못한 한국전쟁>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 증언록의 존재를 확인했고, 군사편찬연구소가 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은 채 은폐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증언록 관련 정보를 수집하던 뉴스타파 취재진은 군사편찬연구소가 2003년 12월 펴낸 <6·25 전쟁 참전자 증언록 1 -북한의 남침과 서전기>를 찾아냈다. 그리고 이 책의 발간사에서 증언록이 “1960년대 중반에서 1970년대까지 참전자 약 5,000명을 대상으로 수집된 자료”라는 구체적인 정보를 얻었다.
안병욱 교수는 증언록은 “다양한 사람들의 기억을 담아낸 현장의 생생한 기록이고 역사 법정의 증언과 같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6·25 전쟁 참전자 증언록이 “은폐되고 누락된 진실에 크게 기여할 것”이고 “이 분야를 연구하는 연구자 및 학회 그리고 역사의 주체인 시민에게 공개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판결문을 검토한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타파 이명주 silk@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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