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교제살인' 유가족, 가해자 보복 두려워 떨고있다

박상혁 기자 2024. 7. 8.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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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제폭력 피해자 유가족 "수사·재판과정에서 교제폭력 특수성 고려해야"

이별을 통보한 전 여자친구의 집에 찾아가 머리를 때리고 목을 졸라 숨지게 한 '거제 교제살인사건.' 피해자의 유가족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 유족들의 집 주소를 전부 알고 있는 가해자가 처벌을 받더라도 훗날 어떤 보복을 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여자친구를 감금한 뒤 바리깡으로 머리를 밀고 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바리깡 폭행 사건.' 피해자는 사건 발생 1년이 지난 지금도 약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하지만, 가해자 측은 '결혼을 약속했을 만큼 가까운 사이의 젊은 남녀 사이에 발생한 일'이었다며 재판부에 선처를 구하고 있다.

여성의당 주최로 7일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교제 폭력처벌법 정책간담회에 모인 교제 폭력 피해자 유가족들은 각자가 겪은 수사·재판 과정에서의 2차 피해를 공유하며 "우리 가족과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위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호소했다.

▲여성의당이 7일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교제폭력처벌법 정책 간담회를 열었다.ⓒ여성의당

유가족들은 교제 폭력이 발생했을 때 경찰의 미흡한 초동 대처가 사건을 키운다고 지적했다. 거제 교제 살인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사망 전까지 총 11번 신고했으나 경찰은 사건을 쌍방폭행으로 보거나 피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말에 매번 수사를 종결했다. 폭행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사건을 종결하는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한다.

이를 두고 유족들은 "피해자는 가해자와 연인이라는 관계성이 있고, 가해자가 자신의 집주소와 연락처를 다 알고 있기에 보복이 두려워 처벌을 원한다고 말할 수 없다"라며 "신고가 반복되면 경찰은 최소한 둘 사이를 분리해 조사했어야 하는데, 우리 딸의 경우 한 번도 조사를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를 죽일 의도가 없었다'는 가해자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점도 유족들을 괴롭게 한다. 거제 교제살인 가해자에게는 살인죄가 아닌 상해치사가 적용됐다. 피해자의 아버지 A씨는 "가해자는 징역 5~7년형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러면 가해자는 출소 뒤에도 20대에 불과하다."라며 "가해자가 우리 집 주소를 다 알고 있어 보복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재판 과정에서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2차 가해성 주장을 들어야 한다는 점이 큰 문제로 꼽혔다. 바리깡 폭행 사건 피해자 가족에 따르면, 가해자 측 변호사는 법원에 출석한 피해자에게 성생활과 같이 사건과 관계없는 질문을 반복했으며, 결혼을 약속한 사이인데 피해자가 바람을 피웠다는 등 피해자가 사건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식의 발언을 이어갔다.

바리깡 폭행 사건 피해자의 가족들은 "재판 초기에 법정에 선 피해자는 기절해 병원에 실려가기까지 했다"라며 "가해자 측에서 사전 질의문서를 제출하면 피해자가 지원센터 및 수사관들과 함께 답변을 준비하고, 사건과 관계없는 내용은 미리 차단하는 등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가 2차 피해를 입지 않도록 지원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복되는 교제 폭력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가해자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패턴을 분석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접근금지 명령을 어기고 전 연인을 찾아가 죽인 '인천 스토킹 살인 사건' 피해자의 유가족은 "최근 발생하는 교제 폭력 사건을 보면 사전에 폭행, 협박이 있었다거나 접근금지 명령을 받는 등 가해자에게 나타나는 공통점들이 있다"라며 "친밀한관계였기에 당사자 간 해결이 어려운 만큼 경찰이 미리 가해자의 행동을 분석하고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여성의당이 7일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교제폭력처벌법 정책 간담회를 열었다.ⓒ여성의당

우리나라보다 먼저 교제폭력의 심각성을 파악한 해외 주요 국가들에서는 수사·재판 과정에서 교제 폭력의 특수성을 고려해 더욱 강력한 규제를 마련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은 교제 폭력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는지 묻지 말아야 하고, 피해자가 가해자의 체포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혀도 이와 무관하게 가해자를 체포해야 한다. 또한 검찰은 교제 폭력을 포함한 가정폭력 가해자를 의무적으로 기소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영국은 단순 폭행죄에 최대 6개월의 가벼운 징역형을 부과한다. 반면 친밀한 관계에 있는 피해자에게 곧 폭력이 사용될 것이라는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거나,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있어 상당한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 중범죄로 보고 신체적 손상이 없더라도 최대 5년형의 징역형을 부과할 수 있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또한 단순 폭행죄에는 최대 2년의 징역형을 부과할 수 있지만 (전)배우자, (전)파트너 등 친밀한관계에 있는 파트너에 의한 학대는 최대 7년형을 부과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교제 폭력에 대해 폭행, 상해, 주거침입, 스토킹처벌법 등으로 처벌할 뿐, 법체계가 친밀한관계에서 발생하는 범죄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에 따라 각 정당에서는 교제 폭력 대응 방안에 대한 토론회 및 법안 발의가 이뤄지고 있다.

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은 지난 5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전부 개정한 '가정폭력 및 친밀한관계 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발의한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도 각각 교제 폭력 토론회를 열고 관련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박상혁 기자(mijeong@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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