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풍' 김희애, 연기를 대하는 법 "날 증명하는 힘"[TF인터뷰]
'돌풍' 정수진 役 맡아 열연
"일은 날 증명할 수단이자 건강할 수 있는 힘"
[더팩트ㅣ김샛별 기자] 김희애가 인터뷰 말미 기자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전했다. 이는 자기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기도 했다. '일'을 단지 생활의 수단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계속 해야 한다는 당부였다.
김희애는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돌풍'(극본 박경수, 연출 김용완)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다. 극 중 정수진 역을 맡은 그는 이날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지난달 28일 12회 전편 공개된 '돌풍'은 세상을 뒤엎기 위해 대통령 시해를 결심한 국무총리와 그를 막아 권력을 손에 쥐려는 경제부총리 사이의 대결을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다. '추적자 THE CHASER(더 체이서)' '황금의 제국' '펀치'로 '권력 3부작'을 선보인 박경수 작가가 7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김희애는 세상을 바꾸고 싶어 정치를 시작했지만, 권력의 유혹 앞에 무너져 결국 대통령과 함께 부패의 고리 속으로 걸어 들어간 정수진을 연기했다.
'돌풍'은 공개 직후 넷플릭스 대한민국의 TOP 10 시리즈 부문 1위를 기록했다. 이에 소감을 묻자 김희애는 "너무 좋다. 내가 봤던 느낌대로 시청자들도 같이 공감을 해줬다는 것 자체로 행복하다"고 밝혔다.
김희애는 공개 전부터 '돌풍'을 세 번이나 봤다고 밝힐 정도로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그는 "사실 내가 나온 걸 잘 안 본다. '돌풍'은 대사도 어렵고 속도감도 빠르다 보니 대본을 많이 봐야 했다. 그런데 볼 때마다 새롭더라. 그래서 세 번이나 보게 됐다"고 전했다.
어려운 대본은 역설적으로 김희애가 출연을 결정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도 했다. 오래 전부터 박경수 작가의 팬이었다고 밝힌 그는 "그분의 작품을 보면 가슴이 뛰었다. 때문에 처음 책을 받았을 때도 박경수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만으로도 반가웠다. 읽어 보니 이전 작품 이상으로 재밌는 책이었고 매력적인 캐릭터였다"고 돌이켰다.
"요리사가 신선한 생선을 받아들이면 이걸 어떻게 요리할지 설레서 가슴이 뛰잖아요. 배우도 마찬가지예요. 좋은 책을 받고 심지어 매력적인 역할이 저한테 왔다고 하니까 무척 떨리고 설레는 마음이더라고요. 안 할 이유가 없었죠."
이로써 김희애는 최근 공개된 '퀸메이커' '데드맨'에 이어 또 한 번 정치물을 선택하며 연달아 비슷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이게 됐다. '정치'라는 장르가 다소 강한 색채인 만큼 배우로서는 우려가 뒤따를 법도 했다. 이에 김희애는 "정치는 음식의 한 재료일 뿐이지 메인은 아니다. 이번 작품도 현실의 여러 요소를 섞어서 새로운 극이 탄생한 것뿐"이라며 "논란이나 타락한 신념 등이 작품에 녹아든 거지 이를 강조해서 보여주고자 한 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또한 정치 장르의 특성상 대사를 소화해야 하는 면에서도 쉽지 않았던 작품들이었다. 특히 김희애는 유독 대사가 많은 캐릭터를 맡기도 했다. 이에 그는 "정치와 행정 관련 용어 등이 많다 보니 어려웠다. 그래서 처음에는 연기고 뭐고 대사 전달만 잘 되게 하자는 마음으로 했다. 발 연기 소리 들을 각오까지 했었다"고 털어놨다.
극 중 정수진은 처음부터 악역이 된 인물은 아니다. 김희애는 정수진의 과거와 서사를 보며 그의 뒤틀린 신념을 이해할 수 있었단다. 때문에 빠져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에 빠진 정수진의 서사를 시청자들에게도 보여주는 데 집중하고자 했다.
김희애는 "처음엔 악역이라고 생각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정수진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후반부에 한민호(이해영 분)이 안 좋게 되면서 정수진도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관차처럼 폭주하고 이성을 잃게 된다. 때문에 전후반을 다르게 구별해 보여주고자 했다"고 밝혔다.
앞서 제작발표회나 설경구의 인터뷰를 통해 김희애가 설경구에게 이번 작품을 강력 추천했다는 사실이 공개된 바 있다. 앞서 두 번이나 호흡을 맞췄던 설경구를 '돌풍'을 통해 다시 재회하고 싶었던 이유가 궁금했다.
김희애는 "사실 배우들 중에 설경구랑 연기를 안 하고 싶은 배우가 있겠나. 더군다나 마침 좋은 작품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 있게 추천했다. 그리고 설경구는 역시 자신이 왜 설경구인가를 제대로 보여줬다"며 "설경구 또한 과정과 결과에 모두 만족하는 것 같아서 나 역시 뿌듯하다"고 전했다.
"좋은 배우가 좋은 작품을 만나면 더 빛이 난다고 생각해요. '돌풍'이 재밌기 때문에 박동호와 정수진이 빛을 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박동호라는 인물에 설경구가 아닌 다른 배우가 떠오르지 않을 정도였어요. 앞서 두 번이나 호흡을 맞췄다고는 하지만 두 작품 모두 마주하는 장면은 별로 없어서 아쉬웠었는데 이번 계기로 제대로 된 호흡을 맞춘 것 같아 너무 좋았죠."
어느덧 데뷔 42년 차가 된 김희애다. 한 직업을 꾸준하고 성실하게 오랜 시간 이어온다는 건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매번 도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궁금했다. 이에 김희애는 "어떤 작품이든 큰 의미를 두려고 하진 않는다"며 "이번에도 내 작품들 중 하나이자 일부였고 잘 해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좋게 봐준 것만으로도 다행이고 감사하다"고 전했다.
그는 "연기를 잘하는 것보다 매력적인 연기가 하고 싶다"며 "인간으로서도 배우로서도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나의 일이고 일상적인 이 삶을 즐기면서 살고 싶다. 그래야 좋은 연기가 나오지 않겠나. 나는 일을 그만둘 수는 없다. 그렇다면 또 다른 다음을 위해 비워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인터뷰 말미 김희애는 기자들에게 자신이 겪으며 느낀 조언을 건네기도 했다.
"예전에는 일이 생활의 수단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일은 자기 자신을 증명하는 힘이자 건강하게 삶을 나아갈 수 있는 수단인 것 같아요. 증명이라는 게 단순히 '내가 누구다'라는 걸 보여주라는 게 아니에요. 삶의 모든 순간에서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라는 거죠. 물론 살다 보면 이 일이 싫고 힘들 때가 분명히 있겠죠. 그럴 때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채우고 돌아오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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