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송이 단순해졌다…멜로디도 가사도

곽노필 기자 2024. 7. 8.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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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필의 미래창
빌보드 차트 상위권 등 분석 결과
1975·1996·2000년 변곡점
미국 빌보드 음악 차트 상위곡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지난 70여년간 인기곡들의 멜로디는 계속해서 단순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픽사베이

멜로디와 가사는 대중음악을 구성하는 두 핵심 축이다.

멜로디는 리듬(소리의 길고 짧음)과 피치(소리의 높낮이)의 조합을 통해 완성된다. 음악가들의 손을 거친 수많은 리듬과 피치, 단어의 조합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음악적 서사다. 특히 멜로디는 귀에 가장 잘 박히는 음악 요소다. 우리 뇌는 주로 멜로디를 통해 음악을 기억한다. 예컨대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떠올릴 때 자연스럽게 이 음악의 대표적인 멜로디 ‘솔솔솔미’를 읊조리게 되는 식이다.

멜로디와 가사는 음악가와 청중의 교감 속에서 어떻게 변해왔을까?

미국 빌보드 음악 차트 상위곡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지난 70여년간 인기곡들의 멜로디는 계속해서 단순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영어권 노래 가사도 지난 50년 사이 단순해진 것으로 분석됐다.

영국 런던퀸메리대 연구진은 1950년대부터 2023년까지 빌보드 연말 싱글 1~5위 곡들은 리듬과 피치가 모두 꾸준히 단순해져왔다는 연구 결과를 공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보수적으로 따져 봐도 리듬과 피치의 복잡성이 둘 다 30% 감소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우선 2022년까지의 곡 1131개는 빌보드 멜로디 음악 데이터세트를 통해, 2023년치는 직접 곡을 확보했다. 이어 각 노래의 멜로디 중 리듬과 관련한 4개, 피치와 관련한 4개를 합쳐 총 8개의 특징적 멜로디를 뽑아냈다. 그런 다음 언어학자들이 언어 사용 변화를 연구하는 데 사용하는 알고리즘을 빌려 대중음악의 진화에서 변곡점이 되는 시점을 추적했다.

그 결과 대중음악의 멜로디 복잡성이 크게 변화하는 세 가지 지점이 드러났다. 변화의 정도가 두 차례는 컸고, 한 차례는 작았다. 첫째는 1975년으로, 이 시기는 춤으로 유명한 디스코와 상업성이 강한 스타디움 록(아레나 록)이 확산될 때였다. 둘째는 1996년으로 힙합이 빠른 속도로 부상하는 가운데 특정 구절을 쉽게 반복할 수 있게 해주는 디지털 오디오 워크스테이션이 등장했던 시기다. 이때는 1970년대보다 멜로디 단순화 정도가 덜했다. 이어 2000년에 세번째로 다시 큰 변곡점을 만들었다.

연구진은 대신 단위시간당 음표 수는 시간이 흐를수록 증가했다는 걸 발견했다. 특히 2000년 이후 증가 폭이 컸다.

디지털 악기에서 낼 수 있는 소리가 매우 다양해지면서 음악적 복잡성의 주축이 멜로디가 아닌 음색으로 넘어갔을 수도 있다. 픽사베이

멜로디의 입지가 줄어든 이유

연구진은 멜로디가 단순해진 원인을 두 가지로 추정했다.

하나는 단위시간당 음표 수, 즉 음표 밀도의 증가처럼 다른 음악 요소의 복잡성이 증가하면서 이에 대한 상쇄 작용으로 멜로디가 단순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 로체스터대 이스트만음대의 데이비드 템펄리 교수(작곡가 겸 음악이론가)의 ‘소통압력 이론’에 따르면 음악에서 한 측면이 복잡해지면 다른 측면은 단순해져야 음악 청취자가 음악을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예컨대 1초당 음이 많을 경우 음의 높낮이 간격이 크면 같이 따라하기가 어렵다.

다른 하나는 디지털 악기에서 낼 수 있는 소리가 매우 다양해지면서 음악적 복잡성의 주축이 멜로디가 아닌 음색으로 넘어갔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전엔 악기를 통해서만 소리를 낼 수 있었으나 이제는 디지털 음악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사운드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멜로디의 단순화가 이번에 처음 주목을 받은 것은 아니다. 10년 전인 2014년 미국의 영화감독 겸 작곡가 유발 슈렘은 음악잡지 키보드에 게재한 기고 ‘멜로디는 어디로 갔나’에서 “음악의 기본 요소 가운데 하나인 멜로디의 입지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연구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논증인 셈이다.

당시 슈렘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포함한 디지털 문화 확산을 한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키보드 기고문에서 “우리 뇌가 다양한 디지털 글자수 제한 폭에 맞게 짧은 문장을 읽고 쓰는 데 익숙해지면서 음악적으로든 아니든 완전한 문장을 기대하거나 요구하지 않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런 변화는 합리적 선택의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뉴질랜드 오클랜드대 패트릭 새비지 박사(음악학)는 뉴욕타임스에 “너무 복잡한 것은 이해하고 기억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멜로디의 복잡성이 음악의 질을 말해주는 지표는 아니다”라며 멜로디의 단순화에 대한 가치 판단을 경고했다. 멜로디가 단순해진다고 해서 음악이 덜 복잡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새비지 박사는 “서양 음표법으로는 랩에서 하는 말과 같은 미세한 음조를 포착할 수 없다”며 “어떤 면에선 랩 음악이 전형적인 멜로디 음악보다 더 복잡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중가요의 가사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간단하고 같은 단어가 반복되는 경향을 보였다. 사진은 비욘세 공연 장면. 위키미디어 코먼스

어휘 수 줄고 같은 단어 반복

앞서 지난 3월 독일 뉘른베르크대와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 공동연구진은 1970~2020년에 발매된 영어 랩, 컨트리, 팝, 아르앤비(R&B), 록 1만2천곡(장르당 2400곡)의 가사를 분석한 결과, 가사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간단하고 같은 단어가 반복되는 등 이해하기 쉬운 쪽으로 바뀌었다고 공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특히 랩과 록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다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랩은 가사가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장르이지만, 사용된 어휘 수가 갈수록 줄어들었다”며 “이는 같은 구절과 운율을 반복하는 경향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그러나 랩의 경우 3음절 이상의 단어 수가 증가하는 등 가사에 사용된 단어의 길이는 길어졌다고 덧붙였다.

가사 내용에선 자기 자신과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의 사용이 늘었다. 대부분의 장르에서 부정적인 감정의 단어가 늘었고, 랩에선 긍정과 부정의 단어가 같이 늘어났다. 또 모든 장르에서 분노와 관련한 단어가 증가했다.

연구진은 단순한 가사를 선호하는 추세는 배경음악으로 쓰는 노래가 늘어나는 등 음악 소비 유형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논문 정보
DOI: 10.1038/s41598-024-64571-x
More information: Madeline Hamilton, Trajectories and revolutions in popular melody based on U.S. charts from 1950 to 2023.

DOI: 10.1038/s41598-024-55742-x
Eva Zangerle, Song lyrics have been became simply and more repetitive over the past five decade.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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