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과반 정당 없는 ‘헝의회’…정부 구성 안갯속
아탈 총리, 범여권 참패 책임 6개월 만에 사의
씨티 “의회 교착 상태, 佛 주식평가 5~20%↓ ”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프랑스 총선 결선 투표 결과 원내 과반을 확보한 정당이 나오지 않으면서 향후 정부 운영 시나리오가 복잡하게 됐다. 8일(현지시간) 프랑스 내무부 집계 결과 예상을 뒤엎고 좌파연합 신민중전선(NFP)이 전체 의석 577석 가운데 182석,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범여권은 163석, 극우 국민연합(RN)은 143석을 확보했다.
이로써 프랑스 의회는 어느 진영도 과반인 289석에 미치지 못한 ‘헝 의회(Hung Parliament)’를 맞이하게 됐다. 전문가들은 프랑스 정책에 불확실성이 상당 기간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헝 의회’란 의원내각제 정부 체제에서 의회 내 과반을 차지한 정당이 없어 불안하게 매달려 있는 상태(Hung)의 의회를 뜻한다.
2022년 대선 직후 치러진 총선에서도 마크롱 대통령의 범여권은 과반에 미달한 245석을 얻었다. 프랑스 집권 세력이 하원에서 과반 의석을 장악하지 못한 것은 20년 만에 처음이다.
애초 1차 투표 당시만 해도 RN은 지지율 1위를 달렸으나 2차 투표를 앞두고 좌파 진영과 범여권이 RN 후보 당선을 저지하기 위해 대거 후보 단일화를 이루면서 예상 밖의 결과가 나왔다.
가브리엘 아탈 총리는 범여권 참패에 책임을 지고 마크롱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하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아탈 총리는 6개월 만에 총리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절대 과반을 확보한 정당이 안 나오면서 총리 인선 절차는 안갯속에 빠지게 됐다. 프랑스에서는 대통령이 총리를 임명하고, 정부 운영을 책임지는 총리는 함께 일할 장관들을 대통령에게 제청해 내각을 꾸린다.
문제는 하원에서 총리를 비롯한 내각 불신임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집권 여당이 다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통령이 총리를 낙점해도 바로 의회에서 거부 당할 위험이 크다. 이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대통령이 통상 하원 다수당의 지지를 얻는 인물을 총리로 임명해 왔다.
과거 프랑스 정치사에서 여당이 총선에서 패배한 후 대통령과 총리의 정당이 다른 ‘동거 정부’가 탄생한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번 총선으로 1당에 오를 것으로 전망되는 NFP는 마크롱 대통령이 자신들에게 정부 구성권을 줘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당장 좌파 연합 내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의 장뤼크 멜랑숑 대표는 출구조사 결과 발표 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은 NFP에 국가 운영을 요청할 의무가 있다”며 “좌파 연합은 집권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NFP 소속 사회당의 올리비에 포르 대표도 “NFP가 역사의 새로운 장을 책임져야 한다”며 “우리는 반대되는 세력과의 연합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NFP 중심의 정부 구성에 나설 뜻을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은 극좌 정당 LFI에는 정부 운영을 맡기지 않겠다는 입장을 누차 밝힌 터라 향후 총리 임명 과정에서 NFP 측과의 갈등이 예상된다. 마크롱 대통령이 실제 야권의 반발을 무릅쓰고 원내 2당이 된 범여권 내에서 총리를 임명할 가능성도 아예 배제할 수 없다. 우파 공화당과 세를 규합하면 아예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범여권의 제랄드 다르마냉 내무 장관은 “오늘 선거 결과를 보면 누구도 승리했다고 말할 수 없다. 장뤼크 멜랑숑은 더더욱 아니다”라며 향후 의회에서 공화당과 더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NFP에 견제구를 날렸다.
정부 구성과 관련해 엘리제궁은 이날 “마크롱 대통령은 의회에서 전체 그림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필요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며 “마크롱 대통령은 국민의 선택을 존중할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만 밝혔다.
한편 이번 프랑스 총선 결과가 미칠 영향을 분석하느라 시장은 분주하다.
CNBC는 이번 총선 결과에 따른 의회 교착 상태가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했다. 씨티은행은 “과반을 차지한 정당이 없는 교착 상태는 프랑스 주식 시장에 대한 평가를 5~20% 정도로 낮출 수 있다”며 “총선 전후로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다른 나라보다 컸는데, 변동성이 추가로 확대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다이와 캐피털 마켓은 “프랑스 정부는 대연정, 연립 정부, 소수 정부 등 어떠한 형태로도 가능하다”며 “프랑스 정책 결정의 불확실성은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의회를 끌고 갈 중심 세력이 없는 만큼 재정 지출에 대한 우려는 이어질 것으로 분석됐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잭 앨런 레이놀즈 이코노미스트는 “의회가 분열됐기에 어떤 정부도 유럽연합(EU)의 재정 규칙을 준수하고 공공부채를 지속가능한 경로로 옮기는 예산 삭감을 통과시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프랑스 정부의 재정 정책을 두고 EU와 충돌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mokiy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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